[작지만 강한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37) 김종배 고성 고룡이 세상 대표

고성 '고룡이 세상' 김종배(64) 대표의 인생에서 2007년이 없었다면?

김 대표에게 6년 전인 2007년은 인생의 중대한 터닝 포인트였다. 그전까지 그는 '한량'이었다. 김 대표 스스로 표현이 그랬다. 지역 여러 단체의 직함을 맡아 농사일은 뒷전으로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런 한량이 지금은 누구보다 멋을 알고 생명을 지키는 진정한 농사꾼이 됐다.

생명환경농업을 도입한 것도, 산에 산초를 심어 가꾸기 시작한 것도, 담배를 끊은 것도 모두 6년 전이다.

과연 6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명환경농업과의 만남 = 그것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충북 괴산에서 자연농업생활학교를 운영하는 조한규 원장과의 만남이 김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농촌지도자 고성군 연합회장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성군 정대춘 인력육성계장이 괴산에 5박 6일동안 교육을 받으러 가라고 했습니다. 그땐 서로 교육을 안 가려고 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도 행사도 많고 해서 못 간다고 말했죠. 정 계장과 한참 실랑이를 했습니다."

정 계장의 부추김에 김 대표는 결국 "갈꺼마"하고 두 손 들었다.

하지만, 자연농업생활학교에 교육받으러 간 첫날 바로 후회했다.

김종배 고성 고룡이 세상 대표가 생명환경농업으로 재배한 애호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원정 기자

"첫날 정신 교육만 하는데, 괜히 왔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돌아오려고까지 했습니다. 농사짓는 법이 아니라 철학 교육을 하더군요. 밥도 하루 2끼를 줬습니다.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교육했습니다. 그런데 졸기라도 하면 강의 진행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겁니다. 교육 중 화장실에 가도 마찬가지로 진도를 안 나가고 기다렸습니다. 다른 교육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열심히 교육받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교육으로 김 대표는 '생명 환경 농업'에 눈을 떴다. 교육이 끝나갈 무렵 "집에 가서 무농약 생명환경 농업으로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고성군의 지원으로 500명이 이 교육을 받았다. 김 대표는 교육을 다녀와서 이학렬 군수에게 생명환경농업 도입을 건의했다.

"박권제 당시 부군수가 군수 설득에 도움을 많이 주고 용기도 줬습니다. 결국, 이학렬 군수가 직접 그 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결재권자가 모르면 일 진행이 안 되니까요. 그러니 어쩝니까. 군수가 가니까 과장·계장 다 교육받으러 가야죠. 아마도 지자체장이 5박 6일동안 농업 교육을 받으러 간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고성군은 2008년 우리 땅을 살려 좋은 농산물을 생산,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는 '생명환경농업'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생명환경농업이란 농약·화학비료·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농업인이 직접 천연농약, 천연비료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농업인이 농업의 주체가 되는 농업이다.

"처음에는 반대도 많았습니다. 여태까지 농사를 잘 지어 왔는데, 왜 갑자기 농법을 바꾸어야 하느냐는 거였죠. 또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던 농민들의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농업기술센터 공무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완전히 미쳤었습니다. 돈도 기술도 필요없이 무조건 가르치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게 중요했습니다. 관행 농업의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했죠."

그런 점에서 '한량'이었던 김 대표는 오히려 유리했다. 그동안 농사는 부인 김희숙(63) 씨에게만 맡겨뒀으니 김 대표에게는 관행 농업 마인드라는 게 없었다. '백지'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2007년 12월 고성군 생명환경농업연구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낸 김 대표는 2008년 자연농업생활학교 전문 연찬과정을 수료하고, 조 원장의 아들 조영상 씨가 하동에서 운영하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서 천연농약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서 친환경농업 전문 강좌를 수료하고, 경남농업마이스터대학, 고성군 농업자치대학 생명환경농업반 등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건강한 애호박 수확 = 벼농사를 짓다가 하우스 농사에 뛰어들었다.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하우스는 부지런한 사람이 하는 것인데, 그동안 농사도 제대로 짓지 않던 사람이 할 수 있겠느냐는 거였죠. 이건 장난이 아니고 진심으로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설득했습니다. 하우스 재배가 처음이라 다른 작물보다 덜 예민한 호박을 키우기로 했습니다."

김 대표는 생명환경 유류절약형 시설하우스를 독자 개발해 국내는 물론 일본 등지에서 견학 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김종배 고성 고룡이 세상 대표가 생명환경농업으로 재배한 애호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원정 기자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정확한 기존 데이터 없이 직접 연구·적용하다 보니 실패도 많았죠. 어떤 재료를 얼마나 섞어서 어느 정도 살포해야 하는지 실제 농사를 지으면서 찾아 나갔습니다."

김 대표는 3600㎡(1100평) 논에 설치한 3개 동의 수막식 단동 하우스 2800㎡(870평)에서 하루 애호박 20개 들이 상자 15개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이곳 애호박은 김 대표 연락처, 무농약 인증 등이 인쇄된 비닐에 넣어져 자란다. 일종의 '애호박 호적 초본'이다.

처음에는 생명환경농업 애호박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 농약과 비료를 쓴 일반 애호박이 모양이 더 미끈하고 커 상인들이 선호했다.

"2년을 가락시장에 내버리다시피 했습니다. 상인들에게 실컷 먹어보라고 퍼주니까 차츰 무농약 애호박을 알아주더군요. 지금은 최고 대우를 받습니다."

김 대표 애호박 하우스에는 자동화 시스템이 설치돼 온도와 습도, 차광 등을 컴퓨터가 제어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설을 갖춘 이유가 "내가 나가고 없어도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니 아직까지 '한량' 기질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 듯하다.

김 대표가 생명환경농업을 도입한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내 손녀에게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서"라고 김 대표는 밝혔다. 젊은 시절, 자식들에게는 매도 많이 든 엄한 아버지였지만,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인 손녀 민지·민정이를 위해서는 작업장 옆에 수영장을 만들고 매 주말 창원으로 데리러 갈 만큼 '손녀 바보' 할아버지이다.

◇아들 위해 심은 산초 = 산초 역시 가족들을 위해 심었다. 이것도 6년 전이다.

"산에 감나무가 많았는데, 관리와 수확이 힘들었습니다. 나무를 깡그리 베어내 버렸죠. 어느 날 공무원으로 있던 친구가 '산초를 심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군요. 그런데 당시 아들이 위장병이 나서 하동 옥종에서 산초유를 사다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럴 게 아니라 직접 나무를 심어보자 싶어 심게 됐습니다. 산초는 조상들이 가정상비약으로 사용할 정도로 좋습니다."

역시 가족들이 반대했다. 특히 반대가 심했던 아내는 한동안 김 대표가 생산한 산초유를 먹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아내와 어머니 등 온 가족이 산초유에 흠뻑 빠졌다.

현재 산초는 3만 3000㎡(1만 평) 산에 3000그루 정도가 심어져 있다. 이 산초나무도 한방영양제를 먹고 자란다.

"매일 산에 와서 전정 등 관리해야 합니다. 힘이 들어요. 남들은 나보고 매일 논다고 하는데, 절대 노는 게 아닙니다. 종자를 11월 수확해서 대형 착유기로 기름을 짭니다. 지난해 12월 위생 교육 등 관련 규정을 모두 갖춰서 보조식품으로 등록, 산초유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제품이나 개인이나 똑같은 법을 적용받으니 농민이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규정이 좀 수월하게 바뀌었으면 했지만, 반대로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니 이렇게 엄격한 게 맞다 싶습니다."

◇색소폰은 생활 활력소 = 김 대표는 10여 년 동안 하던 궁도를 그만두고 색소폰도 2년 넘게 연주하고 있다.

"나이가 드니까 근력 운동이 점점 힘들어지더군요. 그러면서 우울증도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옛날부터 아코디언을 배우고 싶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외국 농업 선진지 견학을 가서 보면 중류 사회에 속하려면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어야 하더군요. 그런데 당시 매스컴을 보니 색소폰이 대세였습니다. 색소폰을 구입해 매주 금요일 학원에 가서 배우고 있습니다. 학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습니다."

색소폰 역시 가족들은 반대했다. 안 그래도 밖으로 많이 나도는 김 대표가 더 나다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외출이 줄었다.

"매일 산에서 연습합니다. 하루라도 불지 않으면 소리가 달라져요. 한 곡을 제대로 불 수 있으려면 적어도 1000번 이상 연습해야 합니다. 낮에 못 불면 밤에라도 산에 올라옵니다. 밖으로 나다닐 틈이 없습니다. 악기가 조금 고가이긴 하지만, 이 나이에 나 자신을 위해 이 정도 투자는 해도 되지 않을까요." 

<추천 이유>

△남상회 고성군농업기술센터 채소특작담당 = 김종배 회장은 애호박 재배 6년차로 항상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실천하는 선구자입니다. 0.3ha의 시설하우스를 농업교육장으로 운영하고 농업인들의 소득창출을 위해 새로운 기술을 전수하는 등 아주 열정적인 지도자입니다.

특히 고성군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생명환경농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 소비자가 먹을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성군농촌지도자 연합회장, 생명환경농업 연구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경남 정보화농업인 연합회장으로 왕성한 활동과 농업 부가가치 창출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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