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변함없는 후덕한 할머니 인심...너나없이 말동무가 되는 곳

어시장 맞은편 남성동 지하도 어귀는 부림시장이 시작되는 곳이다. 백화점을 옆에 두고도 늘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 비록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시장을 찾는 손님들 발길은 잦다.

버스정류장이 있고 지하도가 있는 골목에서 10m쯤 위로 가다보면 왼편에 간판이라곤 붙어있지도 않고 달랑 호박죽이라고 적힌 널판때기 하나가 호박죽과 팥죽을 먹을 수 있는 곳임을 알린다.

널판때기에는 이것저것 분식종류가 적혀있긴 하지만 분식을 먹으려고 배숙희(66.마산시 남성동 182-5) 할머니 가게를 찾는 사람은 없다. 이곳은 늘 호박죽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좁은 식당이 꽉 찬다.

분식집을 오랫동안 하다가 4년 전부터 호박죽 전문집으로 나섰다. 호박죽은 그때나 지금이나 2000원으로 큰 대접에 한 그릇을 내주는데 설탕을 따로 넣지 않았는데도 달콤한 맛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여름에는 녹두죽을 호박죽과 함께 한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면 녹두죽은 잠깐 자취를 감추고 동지를 앞뒤로 팥죽을 쑤어 낸다. 팥죽은 호박죽보다 쌀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3000원이다.

이곳의 호박죽맛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시장을 보러왔다가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멀리 진해와 진영.부산, 심지어 서울까지 죽을 싸 가는 손님도 있다. 요즘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젊은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

호박죽과 팥죽은 가게 앞에 꾸며진 조리대에서 만들어낸다. 직접 호박을 깎고 삶아 으깨서 찹쌀반죽과 팥을 약간 넣고 한시간을 끓여야 한다. 끓는 동안 내내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밑바닥까지 휘~휘 저어줘야 한다.

별다른 양념을 넣지도 않는다. 간을 맞추려고 소금을 넣는 것을 제외하면 천연식품이다. 호박이라는 놈이 아예 농약을 뿌리지 않고도 잘 자라는 것이라 그야말로 자연식인 셈이다. 팥도 마찬가지다.

팥죽이나 호박죽이나 할 것 없이 겨울에는 시원한 동치미가 딸려 나온다. 열 사람이 가나 한 사람이 가나 늘 죽 한 그릇에 동치미 한 그릇이 전부다. 양이 모자라 더 달라고 하면 인심후한 할머니가 한 그릇을 더 퍼주긴 하지만 워낙 한 그릇이 푸짐한지라 다 먹어내지도 못한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모르는 사람끼리도 한 식탁에 앉아 먹는다. 가게가 좁아서이기도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먹어야 맛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가게 안에는 120개가 넘는 호박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할머니가 직접 숫자를 세지도 않았는데 자주 들르는 손님이 호박개수를 세어 알려주더란다. 동짓날 팥죽을 먹을 길이 없다면 이곳에서 구수한 할머니가 해주는 팥죽 한 그릇을 맛볼 일이다. 간판이 없어 혹시 찾지 못하면 전화를 해도 된다. (055)223-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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