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느닷없이 '혈통'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의아했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Stoker) 이야기다. 감독 자신은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지만 얼마 전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가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가문의 어두운 핏빛 과거. 가혹한 폭력과 죽음. 처벌과 응징. 대통령 취임에 즈음해 개봉(2월 28일)한 것도 묘하다.

영화는 차갑지만 매력적인 소녀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브스카 분)가 자신의 18번째 생일날 아버지를 잃고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 스토커(매튜 구드 분)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찰리는 예의 많은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다. 스토커가의 끔찍한 비밀. 인디아는 낯선 존재를 경계하지만 이내 점점 끌리게 되고, 심지어 찰리의 악마적 습성에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영화 〈스토커〉 한 장면. 주인공 인디아가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나는 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어. 꽃의 색을 꽃이 선택할 수 없듯 이건 내 책임이 아니야." 만일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혈통이라는 게 진짜 있다면, 특히 그것이 인간세계에서 금하는 반윤리적인 무엇이라면 이제 우리는 감독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스토커〉의 경우는 폭력성이다. '생존을 위해선 살상도 서슴지 않는' 자연의 법칙에 충실한 포식자의 폭력성.

박찬욱의 선택은 당혹스럽다. 한 개인(인디아)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비극적인 운명에 놓였는데 정면 대결을 피한다. 구원할 생각도 의지도 없다. 인디아는 처음엔 다소 혼란스러워 하지만 자연스레 자기 안의 광기를 받아들이고 끝내는 즐.긴.다. 박찬욱 특유의 섬세하고 세련된 표현력이 어우러지며 심지어 그 과정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영화 전체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스크린을 수놓는다. 누군가의 피로 물든 붉은 꽃. 물론 인디아가 '즐기듯' 저지른 살인의 흔적이다.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인디아의 한쪽 눈은 살육, 폭력, 죄악을 보고, 다른 쪽 눈은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심미적인 매혹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장기 소녀의 모순된 욕망을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인데, 근데 그래서 어쨌다는 걸까. 인디아는 '닥치고 살육'을 한 대가로 성년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게 생겼는데.

삼촌 찰리는 인디아의 수십 년 뒤 미래 모습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 주체할 수 없는 집착과 시기로 역시 누군가를 '즐기듯' 생매장한 찰리는 그 길로 곧바로 정신병동에 갇혀 수십 년을 보낸다.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찰리에게 가해진 '가혹한 응징'은 과연 정당했는가?

응징의 주체는 다름 아닌 형, 즉 인디아의 아버지였다. 만약 끔찍한 사건의 한복판에 용기있게 서서 외면하거나 단절하지 않았다면, 왜 10살 남짓한 아이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어떻게든 피할 방법이 없었는지 성찰하고 대화했다면, 최소한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적대하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설득하고 교감했다면 찰리와 인디아, 그리고 형과 아버지의 비극은 조금이나마 다른 모습일 수 있지 않았을까.

인디아는 꽃이 스스로 색깔을 선택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하얀 꽃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떤 경우엔 우리의 의지가 꽃의 색을 바꿀 수도 있음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핏빛 폭력은 어떻게 해서든 멈추어야 한다. 최소한 꽃이 자기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고민하고 또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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