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통영시 이충환 도산면장

한 공무원의 뒷이야기다.

10년 전, 통영의 한 공원 조성 사업을 위해 그가 경남도를 찾았을 때도 담당자는 난감해 했다. 핀잔 같은 게 따라붙었다. "임업부서인 녹지과에서 관광 사업까지 하느냐"라고.

조성하는 장소가 관광지이지만 공원조성 사업이라 녹지과와 관광과 등 여러 부서와 연관된 사업이었다. 설명 자체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그의 나이 35세 때다.

며칠 후 창녕군 부곡 하와이에서 공무원 세미나가 있었다. 도 담당 계장이 그곳에 참석한다는 것을 안 그는 달려가 엎드려 하소연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딱, 5분이면 된다"고 사정했다.

"계장님 주무시는 문 앞에서 자리 깔고 자겠다. 이 사업 설명을 할 때까지 문 앞에 죽치고 앉을 테니…. 많이도 아니다. 딱 5분만 시간을 내달라."

계장은 귀찮아했고 어이없어 했다.

버티고 겨루다 "참, 이상한 사람이네"란 신경질적 반응 후에 계장은 "딱 5분"이란 단서를 달았다. 계장 앞에 시계까지 놓였다. 당시 그는 230만 원짜리 개인 노트북에 자료를 꾸미고 있었다.

"공원 앞바다는 한산대첩 승전지다. 바로 앞에 있는 섬이 한산도다. 400년 전 이순신 장군의 통제영이 보이는 곳이다. 한국 역사에서 이처럼 상징적인 장소는 없다. 이곳이 공원화되면 통영은 하나의 특별한 관광 자원까지 얻게 된다."

땀이 흐르고 침이 마르는 5분이었다.

"이거 좋은데……."

계장의 말, "이거 좋은 데"는 이 공원 사업의 본격화를 뜻했다. 이 공원이 바로 통영 이순신 공원이다.

국·도·시비 30억 원 정도가 쓰이고 30만 평 부지의 공원,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자 한국 해전사를 기념하는 역사적 공원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경남도 계장은 사업 제목을 '한산대첩 관광체험지 조성사업'으로 바꾸라고 조언했고 이 사업은 정부로 갔다.

이충환(53·사진) 도산면장은 담담하게 이런 과거를 회상했다.

통영인들은 통영시내에서 고성 쪽으로 가는 '원문고개'를 통영의 정서적 나들목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가 단독작전으로 최초 상륙했다. 이 전투 이후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으로 불렸다.

이곳을 공원화하기 위해 통영시는 경남도에 사업비 40억 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쟁 공원'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였다.

외지인이 보기에 살육전이 있었던 '전쟁공원'이지만, 통영인에게는 수백 년 '애환의 고개'였다.

그는 이를 잘 아는 토박이 통영인이었다.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심사위원 중 반대 의견을 내는 이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그는 반대의견을 낸 심사위원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착잡한 심정으로 공원화에 대한 계획서도 함께 보냈다.

이때가 2005년, 요지는 이랬다.

"전쟁 공원이 아니다. 전쟁을 기억하는 평화의 공원이다. 통영사람에겐 이곳이 전쟁만 기억되는 곳이 아니다. 나고 드는 애환이 서린 통영인의 가슴에 서린 고향 언덕이다."

며칠 뒤 심사위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류를 보내라"며 심사위원은 짧게 덧붙였다. "당신 같이 진정성이 느껴지는 공무원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숨은 이야기는 더 많다.

그는 녹지직에 있으면서 도로를 내고 남은 1평, 2평, 5평 정도의 관내 자투리땅을 집중적으로 소공원화시킨 주인공이기도 했다. 녹지직으로 있을 때 통영시 시내와 도로 곳곳에 작은 정자와 벤치가 수년 사이 수십 군데 만들어졌다. 아파트 담장을 허물었고 용남면사무소과 사량면사무소, 무전·북신동사무소 등의 담장을 헐었다. 남는 땅은 공원화했다.

그와 통영시는 이런 이유 등으로 2010년 대한민국조경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대학에서 조경을 공부한 그는 늦은 나이 30세에 공직을 시작했다. 2011년 7월 사무관이 됐고 용남면장을 거쳐 올해 도산면장이 됐다.

도산면 서쪽 앞바다 읍도와 연도라 불리는 섬이 있다. 이 섬을 연속으로 잇는 270m와 250m짜리 출렁다리 조성 계획 등으로 도산면 변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그를 아는 통영시 한 기자는 "2000년 중반, 그는 '워커(전투화) 신은 계장'으로 불렸다. 이순신 공원과 원문고개 조성 당시 그가 인부인지 공무원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현장에 살다시피 했는데, 정말 대단했다"고 기억했다.

'이런 숨은 이야기도 통영 역사'란 지적에 그는 쑥스럽고 어색해했다.

정작 그는 "나는 나를 믿어주는 많은 분과 같이 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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