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에 오시면] (24) 3월의 풍경…노랑부리저어새·고니 중순에 떠나

약 한 달 전 한 일간지에서 <일기로 본 조선>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를 사셨던 분들이 수십 년이나 되는 오랜 기간 동안 기록했거나 특이한 경험을 가졌던 분들께서 남긴 일기(日記)가 수백 년 지나 책으로 나온 것입니다.

약 2년 전 그 책의 출판사 대표는 우포늪도 보고 저의 생태춤 책 출판에 대한 상의도 할 겸 해서 서울에서 와 우포늪생태공원에서 만난 적이 있었기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의 생태춤을 책으로 출판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 주었기에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전화로 좋은 책이 출판되어 반갑다는 인사를 한 뒤, 어떤 책이 판매가 잘 되느냐고 물으니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니 치유, 쉽게 쓰기, 그리고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의 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기에 '치유'를 먼저 말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이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또 실제로 그러하기에 막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3월에 접어들면서 겨울바람의 매서움이 약간이나마 덜해지고 있는 우포늪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제일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일기 쓰기라고 어느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쓴 분은 일기 쓰기는 자기 치유의 장은 물론이고 혹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면서 일기 쓰기를 권했습니다. 최근 저녁 식사 시간에 만난 분에게 <일기로 본 조선>이라는 책이야기를 하니 그분은 저에게 '노용호의 생태일기'라고 책 제목을 붙여주면서 당장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쓰는 이 글의 일부는 최근 시작한 일기장에 메모한 글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2013년 한 해가 시작된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3월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 날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적어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마음 치유, 크게는 인류 문화에 기여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쓰기가 편하지 않으시면 우포늪에 오셔서 가장 특이했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을 작은 메모 형태로라도 남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벌써 3월입니다. 봄이 오는 3월이라 그런지 우포늪 바람의 매서움은 약간이나마 덜해지고 있습니다. 3월 중순까지 우포늪을 찾으시면 노랑부리저어새, 큰부리큰기러기, 고니(백조)와 청둥오리 등 다양한 오리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포늪의 대표 겨울 철새 중의 하나인 큰부리큰기러기의 주요 먹이는 부드러운 매자기의 뿌리와, 돌처럼 딱딱한 마름의 씨이자 열매입니다. 우포늪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해온 정봉채 작가는 "100여 마리의 큰부리큰기러기가 와자작와자작 하면서 한꺼번에 마름을 까먹는 소리는 마치 맷돌을 가는 소리와 같다"고 합니다. 마치 화석처럼 딱딱한 마름(말밤)을 깨어 먹어버리는 그 새들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포에 오셔서 사초군락의 물가 근처를 유심히 보시면 큰부리큰기러기가 먹고 버려 반쯤 잘려나가 비어있는 마름 조각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 동안 그렇게 새들의 소리로 요란하던 우포늪은 3월 중순이 넘어서면 이들 겨울 철새들이 대부분 그들의 고향으로 떠나고 조용한 곳으로 변합니다. 3월 중순이 지나 하순이 되면 우포 천지는 힘차게 땅을 밀치고 올라오는 새싹들의 세상입니다. 4월 중순을 지나 5월이 되면 녹색의 카펫이 연상되는 우포늪. 우포늪의 주인공은 이렇게 철 따라 바뀌고 새로운 생태지도를 만들어 가면서 자연의 천연색 그림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우포늪 생명길을 걷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길 등을 걸으신 어느 분은 우리나라의 길들도 걸어보기로 했다면서 우포늪 생명길을 찾아 걸었습니다.

안정적인 교사직을 그만두고 우포늪에서 13년간 예술사진을 찍어온 정봉채 작가는 이번 3월부터 첫째 일요일마다 지인들과 함께 우포늪을 함께 걷는 우포늪 걷기 행사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운동도 하고 제가 알지 못하는 우포늪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참가하였는데, 우포늪생태공원에서 출발하여 전망대 밑, 사초군락을 지나 목포제방과 소목산과 주매제방을 걸어 사지포제방을 지나고 대대제방 방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저는 개인 사정상 같이 출발하지 못하고 사초군락에서 십여 명의 일행을 만났습니다. 평소 사진을 배우는 제자들이 많았는데 일행 중엔 엄마를 따라 온 중학생과 초등학생도 보였습니다.

사초군락이 시작하는 부분 근처에 있는 왕버들 밑에서 정 작가의 요청으로 같이 온 분들과 함께 먼저 몸을 풀기 위해 봄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으로 시작하여 습지, 봄에 새싹이 올라와 꽃이 활짝 핀 모습 그리고 마름 춤과 뿔논병아리의 사랑댄스를 다 같이 추면서 함께 운동도 하면서 웃었습니다. 습지, 마름 춤과 봄의 새싹이 올라와 꽃이 피는 모습은 TV에 여러 번 방영된 흥겹고 특이한 형태의 춤으로 외국인들도 즐거워합니다. 방문객들이 즐거워하면서 웃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저로 하여금 생태춤을 계속하도록 해줍니다.

연극과 연기를 30여 년 해온 서울예술전문대학의 장두이 교수의 추천으로 춘천 남이섬에서 8월이나 10월 열리는 공연에서 '노용호의 생태춤'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우포늪을 더욱 홍보하고자 합니다. 언젠가 생태연극과 생태체조로 발전시킬 예정입니다.

우포늪의 사초군락에 오시면 지난여름 갈대와 억새가 누워 있는 모습, 왕버들 위에 덩굴식물이 자리를 차지하여 마치 막사 같은 특이한 '자연텐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자연산 텐트는 고라니와 너구리가 겨울 추위에 떨지 않고 따뜻하게 잠을 자게 해줍니다. 작은 가시가 있는 환삼덩굴 등이 키 작은 왕버들을 덮고 또 덮었고 홍수로 떠밀려온 마름과 매자기 등은 물 밑이 아닌 3m 정도 그 자연산 텐트 위에 있으면서 낮에는 햇빛과 대화하고 밤에는 유난히 빛나는 우포늪의 별들과 함께 겨울철새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지내왔습니다.

우포늪생명길을 계속 걸어가 사지포 제방 부근 낮은 야산에 있는 150년 이상 된 팽나무에서 바라보는 우포 정경은 너무도 멋있습니다. 이 나무는 최근 '사랑나무'라고 불리기도 하는 스토리텔링 거리가 되는 아름다운 자태의 나무입니다. 그 나무가 있는 데는 연말 송년행사나 1월 1일 새해맞이 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곳으로 우포의 대표 정경 중 하나입니다. 특히 봄날에 가시면 할미꽃 등 야생화가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한 번 가본 사람들은 우포늪에서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많이 찾으면 지금처럼 보전이 잘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우포늪생명길에서 빠진 곳입니다. 그런 곳을 잘 보전하여 다른 분들도 같이 보고 영원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포늪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표 포토존(photo zone)이기도 합니다. 대대제방에서는 먹이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랑색 부리를 저어가는 노랑부리저어새들을 만납니다.

시간이 항상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듯이 겨울철새 또한 마냥 방문객들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휴일엔 겨울철새도 보면서 건강도 함께하는 이곳 우포늪생명길로 오시지 않으렵니까?

/노용호(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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