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경남문화행정을 걱정하는 토크 콘서트

경남도의 문화예술 출자·출연기관 통폐합 추진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역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데 대해 문화예술계는 물론이고, 도의원, 정치권 인사들까지 나서 성토하는 등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다.

도는 지난달 27일 산하 출자·출연기관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문화계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경남문화재단,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경남영상위원회를 가칭 경남문화예술진흥원으로 통폐합한다는 방침이다.

도는 "통폐합 대상이 된 문화 관련 3개 기관은 전체 인원 가운데 간부와 관리부서 인원이 49%나 차지하는 기형 조직인 데다 중복·유사 업무를 맡고 있어 통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 도는 "먼저 기관장 2명이 줄고 행정지원조직 가운데 3곳 모두 파견된 직원 6명을 1∼2명으로 줄일 수 있다. 기타 인원은 기존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통폐합 작업이 마무리되면 연간 약 5억 8400만 원 정도 예산 절감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통합체인 가칭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늦어도 5∼6월 조례 개정과 법인 등록, 등기를 마치고 7월에는 업무를 개시한다는 계획이다.

같은날 오후 7시 창원축구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는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남민예총이 주최한 '경남문화행정을 걱정하는 토크 콘서트'가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독단 행정의 전형이자, 통폐합을 핑계로 신자유주의 예속화를 더욱 공고화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김태호 전 지사 시절 이뤄진 분별없는 토목건설 공사로 MRG(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 관련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재정 위기가 닥치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한 고찰 없이 가뜩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문화 관련 예산 줄이기가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날 행사는 해당 기관장은 물론, 지역 문화계, 시민사회와 정치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보성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 김갑수 민주통합당 창원 의창지역위원장, 윤차원 경남문화정책연구소장, 강성훈 경남도의원, 고승하 경남민예총 회장, 하효선 ACC프로젝트 대표. /김광신

◇절차와 과정 무시한 폭력성 = 먼저 '폭력성'이 화두가 됐다. 지난달 18일 도 문화예술과장에 이어 25일에는 도 담당 주무관이 다시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을 찾아 기관장에게 거취 문제 정리를 종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식 문서를 통한 정식해산 절차 없이 6급 공무원이 전문성을 인정받아 공모를 통해 뽑힌 해당 기관장을 찾아가 사퇴 여부를 언급했다는 자체가 문제였다.

김보성 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정당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려면 정식 이사회를 열어 법인체인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해산에 대한 안건을 표결에 부치면 되는 것"이라면서 "아무런 공식문서도 가지지 않은 공무원을 보내 '협조하라', '새 술은 새 부대에'를 외친들 이야기가 먹힐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덧붙여 "출연금과 사업비 회수 등을 운운한 데 대해 이것이 과연 합당한가 법률 조언을 받아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강성훈 의원은 "도가 조례에 근거해 설립된 기관에 대한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도의회와 형식적으로라도 전혀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도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화학적 통합은 어렵다 = 다른 시·도에서 문화 관련 기관 또는 단체 통폐합이 아직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보성 원장은 "경기도는 김문수 지사 체제 출범 이후 산하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경기문화재단 총무팀으로 배속하는 통합을 했지만, 두드러진 성과는 나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경남도는 통폐합 방침을 밝히면서 경기도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경기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성과를 거뒀는지 아직 확인된 게 없는 셈이다.

김 원장은 이어 "이질적인 성격을 가진 문예진흥기관(문화재단)과 문화산업기관(콘텐츠진흥원, 영상위원회)을 통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이라면서 "문화산업 관련 기관을 통합해도 물리적인 통합은 이룰 수 있을지언정 화학적인 통합은 이뤄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갑수 민주통합당 창원 의창지역위원장 역시 "지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부처 간 통합으로 부처가 준 것은 맞지만, 이들 업무 공백을 줄이려고 공무원 수는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면서 "예산절감,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단행된 부처 통합이 실제 성과를 낸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경남문화행정을 걱정하는 토크 콘서트' 모습. /김두천 기자

◇시대 추세 역행 = 다른 시·도가 관련 단체 예산을 늘려가는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김갑수 위원장은 "전북은 전체 8개 시군에 100 석 안팎의 소규모 2D, 3D 영화관 50개를 만들어 문화적 인프라 구축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면서 "이를 배워오지 못할 망정, 통합을 통한 사업 축소를 지향하는 것은 홍준표 지사가 자존감이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김보성 원장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은 도 예산과 국비, 시비(안동시)를 합해 모두 169억 원 예산으로 사업을 수행 중이고, 경기도도 도와 부천시가 함께 출연금을 낸다"면서 "경남도도 공격적인 투자로 문화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음에도 이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나가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부작용은 이미 시작 = 경남도가 통폐합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린 후 관련 기관 내에서는 예의 동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일부는 벌써 경남도 방침에 순응하는 태도로 자리 보전에 여념이 없다. 혹시 모를 인사 후폭풍이 걱정돼 내부 분위기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이들 기관 업무가 지지부진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수십억 원대 국비 확보를 목전에 둔 콘텐츠진흥원 직원들은 통폐합으로 이번 일이 무산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콘텐츠진흥원은 콜롬비아 보고타국제도서전 참가 등을 통해 외국 전자출판 시장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한데 통합으로 폐기처분될 가능성이 커 원장이 직접 다른 광역 시·도에 사업권을 이양할 방안이 없는지 수소문 중이다. 경남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참가하는 만큼 불참으로 말미암아 국가적 신인도 하락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업무 효율성 하락이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경남영상위원회가 추진하는 로케이션 지원 사업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한 촬영현장에 적어도 2명 이상 지원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합 이후 영상위가 영상사업부로 축소되면 현 6인에서 팀장 포함 4인 체제로 바뀌게 돼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상위 업무 범위가 축소됨은 물론, 관련 사업으로 창출되는 경남도 홍보나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성과는 더는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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