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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엔 없다, 은행창구엔 있다 '신뢰'

[공간&공감] 은행

이승환 기자 hwan@idomin.com 2013년 02월 28일 목요일

벨 소리가 울리고 전광판에 번호가 떴다. 전광판에 뜬 번호와 손에 쥔 번호표 숫자를 확인한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나눠주면서부터 창구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일은 없어졌다. 객장에 있는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면 된다. 창구로 걸어간 어르신은 주섬주섬 통장을 꺼낸다.

창구 직원은 환한 미소로 반긴다. 최근 안부를 묻는 것으로 봐서 거래가 잦은 듯하다. 어르신은 마치 딸에게 이야기하듯 인사 대신 명절 때 찾아온 자식 얘기를 잠시 한다.

아저씨 한 명이 객장 한쪽에 있는 원형 탁자로 다가간다. 탁자 둘레에는 이체, 입금 등 거래와 관련된 종이가 있다. 필요한 종이를 꺼낸 아저씨는 탁자에 있는 볼펜으로 필요한 내용을 적는다. 그리고 다시 창구 앞에서 순서를 기다린다. 그게 어떤 거래이든 요즘은 웬만해서는 창구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객장 옆에는 자동화기기가 있다. 상당수 사람들은 굳이 창구까지 오지 않더라도 자동화기기에서 필요한 거래를 처리한다.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운 이들은 굳이 객장에서 번호표를 뽑지 않는다. 자동화기기 앞에 선 줄이 조금 길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더 빠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객장 안에는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자기 차례가 된 한 고객이 은행창구에서 거래를 하고 있다.  

"이게 와 이라노?"

자동화기기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뭔가 잘 진행되지 않는 듯 조급하게 말한다. 자동화기기에서 카드를 뽑아 이리저리 살피던 아주머니는 처음 했던 그대로 거래를 진행한다. 카드를 꽂고 다시 번호판을 누른다. 그런데도 뜻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듯하다. 비밀번호가 틀렸는지, 잔액이 부족한지 몇 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던 아주머니는 뒷사람 눈치를 보며 다시 한 번 카드를 꽂는다. 그 뒤에 줄을 선 몇몇은 다른 기기로 자리를 옮긴다.

대출 창구에서는 상담이 길게 이어진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 상태여야 하고 빌릴 수 있는 금액도 확인해야 한다. 이자는 어느 정도이며 상환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도 거래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상담직원은 가장 적절한 상품을 추천하기 위해 대출자 정보를 계속 확인한다. 서명해야 할 서류는 점점 쌓인다. 상담을 받던 이가 한참 뒤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상담만으로 끝난 것인지 필요한 돈을 빌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처음 앉았을 때보다 표정은 훨씬 홀가분하다. 온라인이나 휴대전화 문자로 들어오는 대출 도와주겠다는 메시지에서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신뢰다.

   

은행에서 일반적인 거래는 굳이 객장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 자동화기기에서 할 수도 있고 일반 전화로도 가능하다. 안내에 따라 번호만 몇 번 누르면 원하는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더욱 다양한 거래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원하는 거래를 처리한다.

하지만, 자동화 음성 안내와 시간과 공간 제약이 없는 스마트폰 거래 자체가 불편한 이들은 여전히 많다. 송금이나 출금처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거래도 창구 직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대부분 어르신이다. 무슨 거래는 몇 번, 무슨 거래는 몇 번, '우물 정자' 또는 '별표' 같은 친절한 안내는 이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다. 스마트폰 거래는커녕 스마트폰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어르신 한 분이 꼬깃꼬깃 접은 종이에 적은 계좌번호를 창구직원에게 내민다.

"50만 원만 보내줘."

창구직원은 간단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처리한다. 멀리 있는 은행까지 와서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간단한 거래를 처리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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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기자

    • 이승환 기자
  • 2017년 1월부터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 일을 맡았습니다. 상담은 010-3593-5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