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재연)이 쓰는 어머니(이봉순) 이야기

딸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일 것이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내(이재연·31) 곁이 아니라, 식당 손님들 옆에 있는 엄마(이봉순·52)가 싫었다. 항상 바쁜 엄마를 미워하고 도와주지도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엄마도 꿈이 있었을 텐데, 엄마도 여잔데, 엄마도 나와 같은 딸인데, 장사를 너무 일찍 시작해서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내가 어렸으니까'라고 핑계를 대며 문득 엄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엄마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내가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나 부모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난 나중에 무엇이 되어야겠다'란 생각보다는 '돈 벌어서 땅을 사야겠다'는 꿈이 컸던 것 같아. 부모님은 작은 땅을 소작하셨어. 못 쓰는 땅을 경작하기까지 3년이 걸려 개간해 놓으면 주인이 가져가 버렸거든. 나는 속상한 마음에 땅 욕심이 났어. 땅 중에 논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돈을 빨리 벌어 부모님께 논을 사드리고 싶었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3년간 열심히 모아서 부모님께 작은 땅을 사드렸지. 네 외할아버지께서 너무나 좋아하시는 거야. 그런데 기쁨 뒤에 슬픔이라고, 외할아버지는 농사도 제대로 지어보지 못하고 그해 돌아가셨어."

-요리에 관심을 두게된 계기는요?

"네 외할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 외할머니 음식솜씨는 마을에서도 칭찬이 자자했거든. 들이나 산에 나가 이름도 모르는 풀을 뜯어 와서 조물조물 무치면 맛있는 반찬이 되는 게 어린 시절 참 신기했지. 물론 지금은 그때 먹었던 이름 모를 풀들이 나물이란 걸 알게 되었고. (웃음) 음식을 하시면 우리 식구 먹을 것도 모자란 데, 온 동네 나눠주러 다니는 심부름을 많이 했어. 어릴 때 욕심에 그게 참 싫어서 '난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주는 것만 하는 바보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었지. 그런데 지금 나도 그때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어. 나눠줄수록 내 배가 더 불러지는 느낌이 들어 좋아. 예전에 네가 일했던 요양원에 지금도 후원하고 있잖아? 음식을 하기 위해 재료를 장만하고 요리할 땐 힘들지만, 내가 한 음식을 먹고 '맛있어'라고 신기하게 평가해 줄 때 성취감도 얻게 되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두고 즐기게 되었어."

-식당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경기도 용인에 살다 집 근처 회사에서 직장생활 하던 네 아빠를 만나 20대 초반에 결혼했어. 양산이 고향인 남편을 따라 내려와 물려오던 김해 대나무밭에 터를 잡았고, 집을 지어 밭과 논농사를 지었지. 넓은 대나무 밭은 그늘지고 습한 곳이 많아 옛날부터 지네가 많았다 하더라고. 아이들 키우는 방에서도 지네가 나와 약을 치고 효과 있다는 갖가지 방법을 다 해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어. 그때 마을 어르신들이 닭이 지네를 잡아먹는다는 말씀을 하셔서 닭을 키우기 시작했어. 닭은 먹이를 안 줘도 습한 대나무 숲에서 땅속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건강히 자랐고, 닭들이 땅을 다지고, 배설물을 보태 대나무밭은 더 울창해졌지. 어떻게 알았는지 봄이 되니까 병아리 장사꾼이 와서 닭을 사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병아리 100마리를 키우게 되었어. 처음에는 식구끼리 보양식으로 한 마리씩 삶아 먹었는데 닭이 너무 많아 친척들과 마을 어르신들, 그리고 친구들을 불러 닭백숙을 대접했어. 그랬더니 닭고기 맛이 아니라고 신기해 하는 거야. 어떻게 했는지 레시피를 묻고 너무 맛있어 했어. 그저 대나무밭에서 키운 닭일 뿐 별다른 비결은 없었는데 말이야. 그게 계기가 되어서 '죽순농원'이라는 상호를 걸고, 음식장사를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되었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겠어요.

"20년 장사하면서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고 가셨는데 그동안을 생각해 보니 새삼 웃음이 나네. 부부싸움을 하고 마지막으로 식사하려고 온 손님이 있었어. 또 싸움이 시작되려는 걸 남편과 함께 말리고, 우리 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해하고 고맙다며 돌아갔는데, 지금 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해. 어쩌다 보니 방송출연도 많이 하고, 손님들도 많아져서 장사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예전부터 오시던 단골손님들에게 소홀해지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들어. 그런데 재미있는 게 손님들과의 관계보다는 종업원과의 관계가 더 어려웠던 것 같아. 내 마음 같은 식구를 찾기가 힘들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고선, 조리과정을 다 배워 나가버리는 직원이 몇몇 있기도 했거든. 그래서 식당을 이어서 해보겠다는 우리 딸에게 직원관리에 대한 조언을 더 많이 해주고 있는 거지. 잘 배워야 해, 알았지?"

엄마 이봉순(왼쪽) 씨와 딸 이재연 씨.

-네. 어머니!(웃음) 지금 엄마 꿈은 뭐예요?

"식당을 새롭게 단장하고 넓은 대나무 숲을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산책길을 꾸미려고 계획 중이야. 지금은 자기직장을 다니지만, 항상 장사를 도와주고, 함께 하고 싶어 하던 우리 딸이 운영하게 되면 난 뒷방 할머니처럼 도와주는 역할만 할 거야.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만 음식연구실을 하나 만들어서 예전 친정어머니에게 배운 약선 음식을 개발하고 싶어. 물론 대나무가 많은 특성을 살려 음식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이지."

-제가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할 계획이잖아요. 마지막 질문으로 나에게 바라는 점은 어떤 거예요?

"죽순농원을 물려받는 딸이 고마워.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어 안쓰럽기도 하지만…. 희망은 있는 것이기에, 우리 딸이랑 같이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딸은 경영을 잘할 것 같아. 또한, 모든 요리도 잘할 거라 믿어! 참고로 음식에서 요령은 안 돼. 정성만이 성공의 지름길이거든. 갓 시집온 새색시가 시부모 공경하듯이 하면 지금의 죽순농원보다 더 성공할 거라 믿어."

무조건 내편이라고 내 기분을 전하기만 했지, 가만히 들어준 적 없는 엄마 이야기를 들으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계획 없이 당장에 얻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만 해결하고 있는 철없는 내 모습이 죄송했다.

장사를 힘들어 하지만, 아쉬움에 손 놓지 못하는 엄마 마음과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 장사를 잇고 싶었다. 앞으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함께 한다면 더 좋은 모습의 우리가 될 거라 믿는다.

/이재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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