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 거침없이 보궐선거로 당선되신 경상남도지사께서 설립 취지와 관계없이 경남문화재단과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경남영상위원회를 하나로 모은단다.

경남의 문화 환경을 개선하면서 도민들의 문화 활동이 진작될 수 있도록 각 기관마다 역할을 부여하고, 중앙집권적 권력의 지역 이전과 풍부하고 다양한 민간자원의 공공영역에서 활용이라는 설립 취지들은 이제 무색해지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독립된 비정부민간기관(Non-Departmental Public Bodies)들을 정책 집행의 파트너로 활용해 왔다. 문화영역에서 이러한 기관들은 일반적으로 '위원회'나 '재단'의 형식으로 나타났으며,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보다 효과적으로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그래서 이 기관들의 운영은 '행정적 관리'가 아니라 '실무적 경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정책은 일반적으로 귀납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비판을 제기하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책 이슈가 된다. 정책 이슈는 다양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경남도는 정답을 미리 정해 놓고 정책을 운영하는 연역적 논리에 더 매료되는 것 같다.

관료적 행정의 틀에 갇혀,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문화재단과 콘텐츠진흥원, 영상위원회를 구조조정 한다니! 서울에 살아오셔서 그런가. 지방의 문화향유 인프라 부족과 결핍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가? 아니면 통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일까?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하나의 법이 서면 하나의 폐도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경솔하게 법규를 만들어서는 안 되며, 특정한 일을 위해 법규를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한때 폐해가 있다고 해서 영구히 존속시킬 만한 법규를 폐하는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관료주의적 방법은 통계적 데이터에 의해 시행된다고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얘기한 바 있다. 관료주의자들은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책임'에 기초를 두고 결정을 내리지 않고, 통계적 데이터로부터 나온 고정된 규칙을 기초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만든 지 이제 3년, 혹은 겨우 1년 정도 된 문화재단과 콘텐츠진흥원, 영상위원회를 한 틀에 넣어 관리하겠다는 관료주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대착오적이다. 이들 출자·출연 기관들의 존재가 불요불급한 경비처럼 보이는 모양이지만, 당혹스러운 문화예술 불모지 경남의 한줄기 '희망의 빛'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어쩌면 '이상향적인' 목표가 오늘날 지도자들의 '현실주의'보다도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가르침을 다시 상기한다.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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