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남강유등축제, 캐나다에 가다] (2) 추진 과정과 난관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캐나다에 첫 수출돼 '세계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3년여 준비와 기술자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논의가 시작된 것은 3년 전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2010년 당시 문화부 지정 최우수축제에 선정돼 대표축제 지정을 앞둔 상황이었다. 진주예술문화재단은 대표축제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목표를 잡았다. 글로벌 축제 즉 세계적인 축제로 가자는 것이며, 흔히 말하는 세계 몇 대 축제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캐나다 수출하기까지 = 남강유등축제를 주최하는 진주문화예술재단은 2010년 10월 진주에서 해외축제전문가 초청 국제세미나(글로벌 축제로 도약을 위한 성공전략)를 열고 세계 축제 흐름을 알고자 세계축제협회 간부들을 초청했다. 일행 중에 기 라프람 캐나다 NCC 부회장이 포함됐고 '캐나다 NCC 사례를 통해 본 글로벌 축제로 성공전략'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NCC는 윈터루드 축제와 캐나다데이 등 수도권 축제를 총괄하고 있다. 초청에는 세계축제협회 한국지부장인 정강환 배재대 교수의 도움이 컸다.

기 라프람은 유등축제장을 돌아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일 년 뒤 다시 한번 방문한 후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줄 메시지가 있다"는 통보를 했다. 마침 2013년이 한국과 캐나다 수교 50주년이고 한국전 종전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특히 캐나다인들은 한국전에 참전한 것에 대해 아주 특별하게 생각한다. 당시 캐나다 군인이 6만 명 정도였는데 3분의 1이 한국전에 참전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한국을 도왔다. 캐나다 전쟁박물관에 한국관이 별도로 설치될 정도다.

캐나다 축제장에서 소망등을 설치한 기술진은 전기와 추위 때문에 애를 먹었다. 현장에는 소망등 설치 작업 때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김종현 기자

수교 50주년이라는 특별한 기념일을 맞아 캐나다는 2013년을 '한국의 해'로 정했고, 한국은 '캐나다의 해'로 선포하고 윈터루드 축제를 통해 한국을 캐나다에 소개하기로 했다. 윈터루드 축제에 한국 관련 행사를 포함시켰고 하이라이트로 진주남강유등축제를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초청 전시작업을 구체화하려고 협약을 맺고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했다.

전시 작품은 기 라프람 부회장과 진주문화예술재단 관계자가 축제장을 돌아보면서 정했다. 기 라프람은 "소망등은 반드시 전시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고 한국의 전통 등을 중심으로 정했다. 다만 전쟁박물관에 전시할 작품은 의견이 엇갈렸다. 캐나다에서는 부산 유엔공원에 있는 캐나다 군인의 동상을 재현해달라고 했다. 동상은 캐나다 군인이 꽃다발을 든 한국어린이를 안고 걷게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서영수 진주문화예술재단 상임이사는 "그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캐나다가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불가 통보를 했고 30차례가 넘는 이메일과 팩스가 오간 뒤 양국 군인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전기는 처음부터 난관 = 전기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유등의 핵심은 전기고, 물속에서 전기작업을 할 만큼 유등기술진의 실력은 월등했지만 캐나다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전압이 다른데다 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기존 전시물을 그대로 가져갈 수 없었다. 캐나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서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말에 대형 컨테이너 2개에 유등과 자재를 실어 부산항을 통해 보냈다. 기술진은 개막 일주일 전에 오타와에 도착했다. 컨테이너는 일행과 함께 현지에 도착했다. 캐나다 세관이 모든 유등을 뜯어 검사를 하면서 시간이 지체됐고, 유등 상태도 좋지 않았다. 기술진은 그때부터 시간과 전쟁에 들어갔다. 일주일 만에 유등에 들어가는 전기 배선을 모두 교체하고 소망등도 설치해야 했다.

더욱이 관광객 안전을 위해 모든 등을 LED로 바꿔야 했고, 직류가 아닌 교류로 전환하면서 양국의 기술진이 애를 먹었다. 전기 작업은 기술자가 아니면 할 수도 없어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강행한 야외 설치작업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양국 기술진의 협력으로 개막 하루 전날에 겨우 불을 밝힐 수 있었다. 현장을 감독한 최태문 진주문화예술재단 국장은 "여유를 두고 컨테이너를 보냈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캐나다에서는 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국내에서 하던 방식은 쓸모가 없었다. 만약 컨테이너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불을 밝힐 수 없을 만큼 긴박했다"고 말했다.

높이가 6m 정도 되는 대형 소망등은 6개를 준비했지만 2개는 바람에 파손되고 4개만 겨우 설치했다. 바람이 강해 다리 난간에 끼우는 방식을 택했고, 4개 중에서 2개는 끝내 불을 밝히지 못했다. 소망등은 약한 재질을 쓰는 특성 때문에 예상한 기대를 거두진 못했다.

정강환 교수는 "이제 진주유등의 기술진은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적응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했다. 이런 노하우는 축제의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라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