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 아들(임종윤)이 쓰는 아버지(임기준) 이야기

26년 동안 가족을 위해 묵묵히 집과 회사를 오가는 등 전형적인 한국의 가장으로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 임기준(55) 씨. 2년 전 "아버님 기타 한번 배워보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예비며느리 말에 당장 실행에 옮기며 그동안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아버지. 그의 지난 삶을 아들 임종윤(28)이 함께 돌아봤다.

-남자들은 고등학교 때 추억이 많은데 생각나는 것들이 있나요?

"고3 때 반장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었다. (웃음) 영·수 빼고 다 잘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공부하기로 했는데, 출출해서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다가 교감 선생님 순찰에 걸려 친구들과 함께 혼났던 기억이 있네."

-아버지는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마산까지 오게 되셨어요?

"너무나도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어.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지. 그때 마침 한국중공업이 마산에 만들어져 취직하게 되면서 혼자 내려 온 거야."

-어머니(김경년 창동상인회 간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죠? 어머니께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는데, 아버지께서 직접 들려주신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나는 그때 당시 한국중공업에서 직장을 옮겨서 지금의 LG인 럭키에 근무하고 있었지. 엄마는 같은 건물 생활건강에서 일하고 있었고. 어느 비 오는 날이었는데, 네 엄마가 우산이 없어서 관리실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 지나가는 총각 붙들어서 우산 얻어 쓰고 가려고 했던 모양이야. 그때 마침 내가 지나간 거지. 그래서 우산을 씌워주었는데, 네 엄마가 그냥 보내기 미안하니까 칵테일 한잔하고 가라는 거야. 지금도 있는 창동 '해거름'에서 말이지. 그래서 그날 첫 데이트가 이뤄졌지. 그러고 며칠이 지났나? 네 엄마가 간염으로 마산성모병원에 입원했어. 나랑 같이 있던 부서에 네 엄마 고등학교 동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통해 병문안 오라고 이야기했다는 거라. 그래서 병문안 가서 간호도 해주고 그랬지."

   

-아빠도 엄마가 싫지는 않았나 보네요?

"네 엄마가 나 좋다고 쫓아다닌 거지."

-기타에 푹 빠지셨는데…. 기타를 선택한 이유와 이후 달라진 점을 말씀해 주세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조용필이지만, 송창식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도 아주 멋진 거야. 구수한 목소리에 빠져서 나도 한번 해볼까 싶었던 거지.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그날이 기다려지고 재미있는 시간인 것 같아. 어떤 사람은 당구를 배울 때 누우면 천장에 당구 치는 모습이 그려진다고 하잖아? 나는 매일 기타 코드가 생각나서 아침저녁으로 치는 거야. 나는 재미있는데, 같이 기타 배우던 사람들은 그만둬 버리고 혼자만 남았어. 예전에 서울 출장이 있어서 가는 길에 네 할머니 댁에서 하루 자고 갔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기타를 자랑했지. 자세 잡고 딱 한 곡 했는데, 할머니가 '쟤가 미쳤나' 그러시더라고. 생전 안 그러던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 좋아 하시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데, 머쓱하셨던 것 같더라고."

-에이, 제 여자친구 은경이가 '어머님께서 하시니까 아버님도 같이 배워보시라'면서 권했었잖아요.

"그런 것도 있고, 집에 기타 연습하러 사람들이 오니까 나도 해본 거지."

-세월이 흘러 아들인 제 나이가 28살 됐는데, 솔직히 그동안 대화가 매우 없었잖아요? 아들을 바라보면 드는 생각이라든지, 그 밖에 하고 싶은 말 한번 해주세요.

"예전에는 아침 일찍 나가고 밤에 늦게 들어오니 얼굴 볼 시간도 잘 없었지.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셨어. 밥 먹을 때 이야기하면 혼내셨고, 밥 먹는 도중 TV도 못 보게 하시는 등 엄청나게 가부장적이셨어. 그런 엄격한 아버지 속에 엄하게 자라서 형제들 간 정이 별로 없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그런 아빠가 되면 안 되겠거니 했는데, 생각처럼은 안 되더라. 관심을 많이 못 둬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유로움 속에서 잘 커 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가장으로서 우리 집안 자랑거리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단 우리 집은 한 빌라에 네 엄마 친정집도 있고, 네 이모네도 있고, 다 모여 사니까 정말 좋은 거 같아. 매일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쯤 다 같이 모여 저녁 먹고 하니까, 얼굴도 보고 가족애가 느껴지는 것 같아. 밥 다 먹고 나면 기타 치며 함께 노래도 부르고 하니까 정말 좋은 것 같아."

-정년이 2~3년 남으셨는데, 이후 하고 싶은 또 다른 어떤 꿈이 있나요?

"내가 면을 좋아하잖아? 그래서 칼국수집을 차리고 싶어. 기타 연습을 더 많이 해서 공연도 직접 하고 싶은 욕심도 있기에, 음악이 있는 칼국수집 어때? 그리고 책도 많이 읽고 싶고, 내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자서전도 하나 썼으면 하는 꿈이 있지."

어릴적 아버지 임기준 씨의 품에 안긴 종윤 씨(위). 종윤 씨의 졸업식 날 함께 모인 가족(아래).

그동안 여느 아버지처럼 역시 표현을 잘 못 하고 살았던 내 아버지…. 기타를 치신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종윤아' 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셨던 아버지….

사실 그동안 아버지와 대화는커녕 함께 있는 것도 어색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기타 연주에 맞춰 나도 함께 노래 부르게 된다. 인터뷰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 옛이야기와 꿈을 알게 돼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가끔 나는 술에 취해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좋다"고 한 적이 있다. 묵묵히 뒤에서 지켜주는 아버지 방식만의 사랑이 느껴졌었나 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우리 가족 행복 합시다.'

매일 밤마다 우리 집에는 기타 연주가 울려 퍼진다.

/임종윤 객원기자

경남건강가정지원센터-경남도민일보 공동기획으로 가족 이야기를 싣습니다. '건강한 가족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취지로 마련한 이 지면에 참여하고 싶은 분은 남석형 (010-3597-1595) 기자에게 연락해주십시오. 원고 보내실 곳 : nam@idomin.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