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딴에 역사체험단] 자연 속에서 놀며 즐긴 6개월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의 어린이·청소년 대상 역사체험단 활동이 마무리됐다. 2012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여섯 달 동안 모두 다섯 차례 운영했다.

◇8월 25일 거창 황산마을~수승대~동계 정온 선생 옛집~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거창박물관 = 창원과 진주에서 30명 남짓이 참여한 역사체험단의 첫 탐방지는 거창이었다.

당산나무가 우람한 황산 마을은 옛날 집과 돌담장이 그대로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기와집은 원학고가(猿鶴古家)다. 들어갈 때는 돌담길, 나올 때는 벽화거리를 걸었다. 아이들은 벽화거리를 더 좋아했다.

수승대서는 시내 옆 구연서원 들머리 정문 관수루에서 도시락을 먹은 다음 2층 누각에 올랐다. 3행시 짓기 등 글쓰기를 하면서 다들 바닥에 앉거나 누웠다. 물놀이는 기본. 관수(觀水)는 물처럼 낮은 데부터 스며들어 채우는 선비의 자세가 담겼다 한다. 거창 대표 인물 동계 정온 옛집도 들러 사랑채 두 줄로 낸 겹처마와 높게 세운 툇마루를 눈에 담았다.

금원산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은 우리나라 가장 큰 바위인 문바위 위쪽 벼랑에 있다. 산골에 불상을 새기며 고려 시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위해 기도했을까? 아니면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을까?

거창박물관. 산골인데도 들이 너른 거창답게 농경 유물이 많다. 고려 호족의 것인 둔마리 고분에서 나온 벽화도 전시하는데 다른 자랑은 김정호 선생이 만든 대동여지도 진본이다. 펼치면 가로 3m 세로 7m 정도다.

◇9월 8일 하동·구례 최참판댁~고소산성 들머리~쌍계사~구례 오미마을~매천사당 = 역사체험단은 ①한 군데서 하나씩은 확실하게 익히기 ②즐겁게 놀기와 열심히 공부하기와 배운 만큼 기록하기의 조화 둘이 원칙이다.

하동 평사리가 무대인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와 절간 부처님의 차림새와 그를 일컫는 용어들을 이날 확실하게 익혔다. 버스 타고 가면서 〈토지〉 줄거리를 읽게 한 다음 퀴즈를 낸다. 집중력이 놀라웠다. 출제한 13문제 모두를 맞힌 친구도 있었다. 현장서도 퀴즈는 이어졌다. '서희 아버지 최치수가 하인이던 귀녀 일당한테 불에 타 죽은 장소를 알아오세요.' 의논도 하고 묻기도 해서 답을 찾았다. 초가로 지붕을 이은 유일한 집인 '초당'이란다.

점심을 먹고 섬진강이 보이는 고소산성 들머리에 올랐는데, 아이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풍경이 예술이에요!", "마음이 절로 좋아져요!" 쌍계사 가는 버스서는 부처 꼬불꼬불한 머리는 '나발', 손모양은 '수인', 이마에 있는 점은 '백호', 뒤에 번쩍거리는 배경은 '두광', 입은 '통견'이며 목에 난 줄을 '삼도'라 한다는 등을 익혔다. 이런 조그만 앎만으로도 크게 달라졌다. 대웅전 부처 앞에 모였을 때 떠들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불상을 보면서 명칭을 실감나게 익혔다.

전남 구례 오미마을 운조루로 떠난다. 솟을대문 위쪽에는 호랑이 뼈가 걸려 있다. 운조루는 굴뚝이 없다. 양반집에서 밥한다고 연기를 피우면 가난한 이웃이 힘들어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렇다고 한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자리에 쌀뒤주를 갖다 놓고 여닫는 마개에 적어넣은 他人能解(타인능해)도 남다르다.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으로, 얻어가는 사람 자존심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배려다.

같은 구례의 매천 황현 사당. 1910년 경술국치 때 목숨을 끊은 자리가 여기라는데 아이들은 실감이 크지 않은 모양이다. 힘든 구석도 있지만 새롭게 알아가는 바가 즐겁다고 했다. 나름 선택과 집중이 잘 돼서인지, 놀 때와 공부할 때가 절로 구분이 됐다.

◇10월 20일 함양 학사루~느티나무~상림~정여창 고택~화림동 정자 = 함양서는 상림을 만든 신라 시대 최치원, 조선 사림의 시조 김종직과 일두 정여창 등 인물에 먼저 집중했다. 정자와 누각도 알아봤다. 함양에는 학사루 같은 누각도 있고 군자정·동호정·거연정 같은 정자도 많다. 정자는 사적인 공간이고, 누각은 공적인 공간이며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닦는 데라는 것은 공통점이다. 누각은 마루를 높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정자는 낮은 마루 양식이 많다.

아이들은 상림숲에서 역사 인물이 모두 몇인지와 상림에서 가장 이름난 것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찾는 과제를 풀었다. 일두 정여창 옛집에서는 한옥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모두 포함되는데 지금은 어째서 초가집은 한옥 취급을 받지 못하는지 생각해 봤다.

함양 화림동 골짜기 동호정 앞 너럭바위에서 맘껏 뛰놀다!!!

◇11월 17일 고성 옥천사~마암면 석마~송학동 고분군~상족암~공룡박물관 = 옥천사는 닥종이를 진상했다. 공양만 먹으면 닥나무 껍질을 벗겨 끓인 뒤 찧어 골짜기 물에 일렁거려 종이를 떠야 했다. 1800년대에는 340명 안팎이던 스님이 진상이 폐지되기 직전인 1863년에는 10명 남짓만 남았다. 노역의 고됨을 일러주는 수치다.

아이들은 이런 지식에 매이지 않았다. 옥천사 진입로의 고즈넉함을 즐겼고 1700년에 간결하면서도 튼튼하게 지어진 자방루에 올라서 굴리고 뛰며 놀았다. 절간 사람에게 지청구를 듣기는 했지만 즐거웠다.

자방루는 1888년 고쳐 지을 때 그린 단청들이 아름답다. 지금은 옛날만큼 잘할 수 없기 때문에 색을 입히지 못해 흐릿한 채 남았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흐릿한 새들과 비천상 등을 벽화에서 잘도 찾아냈다.

고성 마암면 석마…한 마리 어디갔어?

마암면 석마는 농경 한가운데 남겨진 기마 문화의 자취다. 원래 세 마리였으나 2003년 가운데 한 마리를 도둑맞았다. 사람들은 정월대보름 새벽에 석마를 수호신으로 삼아 동제를 지내왔다. 지금은 지내지 않지만 전날 밤에 콩 한 말을 바쳤다가 이튿날 거둬들이는 형태는 매우 독특하다.

송학동 고분군을 거쳐 공룡발자국이 유명한 상족암으로 옮겨갔다. 많은 사람들은 공룡박물관 아래쪽 바닷가를 상족암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바닷물에 잠겨 있기가 십상이라 건너가기 쉽지 않다. 이번에 일부러 물때에 맞춰 찾았다. 아이들은 파도 밟기 놀이도 했다. 옥녀탕·선녀탕 같이 바위홈을 둘러보고 파도가 만든 돌틈을 타고 들어가 공간의 어둑어둑함을 즐겼다.

고성 상족암에서 기념촬영 '찰칵'

◇1월 19일 통영 삼덕항~박경리기념관~세병관~문화동 돌벅수~강구항~중앙시장~동피랑 = 삼덕항을 먼저 찾아 풍어제를 지냈던 당포마을 돌벅수를 보고 1604년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의 표착을 기념하는 최초 서양인 도래비도 눈에 담았다. 아울러 1582년 제주도에 표착했던 한 외국인과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 따라 들어온 세스페데스 신부가 실은 더 앞서 왔던 도래인이라는 얘기도 곁들였다.

통영은 박경리 선생의 고향이다. 박경리기념관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다. 실은 박경리 선생 무덤 자리가 더 좋다. 아이들도 기념관보다 무덤까지 산책로와 무덤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좋아했다. 도시락을 먹고 세병관으로 떠났다. 세병(洗兵)은 무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으로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당대 사람들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겠다. 1600년대 초반 지어진 세병관은 일제강점기 초등학교 교실로도 쓰였는데, 박경리나 윤이상 같은 예술가들이 수업을 들었겠다.

아이들은 세병관 마루에 올라 굵다란 기둥을 잡고 돌거나 기둥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마루에 엎드리거나 누워 쏟아지는 햇살에 눈길을 주기도 했다. 이런 너른 공간에서 마음껏 뛰고 구르고 놀아볼 기회가 드물었던 것이다.

세병관 들머리 잘 생긴 문화동 돌벅수를 자세히 보면 색칠한 자취가 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여기 돌벅수를 숭배하면서 화려 장엄하게 꾸몄다. 이어 거북선이 있는 강구항으로 갔다. 거북선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들은 편을 나눠 준비해 간 공으로 문화마당에서 농구대에 공 넣기 놀이를 했다.

마지막은 동피랑. 고양이 발자국 찾기, 천사 날개 사진 찍기, 마친 다음 동피랑 마을 꼭대기로 찾아오기 등등 과제를 냈다. 서넛씩 팀을 이뤘다. 혼자라면 헤매기도 했을 텐데, 이날 모두 제대로 해내었다. 오후 4시 어름, 마을 구판장에서 이날 받은 상금을 헐어 군것질하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됐다.

통영 동피랑 마을 날개 벽화 앞에서 사진 찍는 아이.

해딴에는 이밖에도 마을 만들기·도랑 살리기 또는 지역밀착형 인문학 강의 같은 공익 활동을 벌인다. 지역의 관광·탐방 자원을 널리 알리는 블로거 팸투어와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같은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제작 사업도 펼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해딴에는 2012년 9월 경남도로부터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다. '해딴에'는 '해가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경상도말로 '지금 여기서 미루지 말고 누리고 즐기고 배우자'는 생각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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