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게 이런곳] 진주 오방리 오방재와 하륜 무덤

진주를 대표하는 성씨는 강씨·하씨·정씨다. 이 가운데 진주 하씨를 대표하는 옛 어른 흔적은 미천면 오방리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진주 오방리 오방재'라고 불리는 재실이다.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륜(1347~1416)과 아버지 하윤린, 조부 하시원을 모신 곳이다.

하륜은 조선 개국 공신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다. 정몽주·남은·권근 등과 신진사대부를 형성했으며 처음에는 조선 건국을 반대하다가 뒤에 참여하게 된다. 시문에 능했고 음양·의술·지리에도 밝았다. 개국 초기에는 정도전(1337~1398)과 경쟁에서 밀리면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정도전과 이방원이 갈라서게 된 게 하륜에게는 기회가 된다. 특히 1398년 충청도관찰사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든든하게 지원하면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 실세가 된다. 그리고 결국 영의정까지 오르게 된다.

하륜 무덤.

오방재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오방재 뒤 언덕에 있는 하륜 일가 묘이다. 오방재 정문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담을 따라 돌아가면 산길이 나오는데 길대로 200m 정도 가면 하륜 일가 묘가 나온다. 하씨 문중 묘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무덤 양식을 한눈에 살필 수 있어 귀한 자료로 친다. 특히 이 일가 묘가 재밌는 것은 하륜이 풍수에 나름 조예가 깊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하륜은 조선 초기 왕실이 계룡산 아래로 도읍을 옮기려던 것을 풍수이론을 들어 막았다고 한다. 왕실이 추진하는 천도 사업을 이론만으로 막을 정도로 실력자였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하륜 일가 무덤은 그 위치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풍수 실력자인 그가 조상과 자신이 쉴 터를 스스로 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다르다는 인상은 받을 수 있다.

먼저 처음 마주치는 일가 묘는 하륜 조부모와 부모 묘 4기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줄로 조성돼 있다. 제일 아래쪽에는 어머니, 그 위에는 아버지, 그 위에는 할머니, 가장 위에는 할아버지 묘가 있다. 무덤은 직사각형 모양이며 무덤 사이 간격은 15m 정도로 거의 일직선을 맞췄다. 무덤마다 돌판으로 아래쪽을 감쌌고, 무덤 주위에는 돌담을 쌓아뒀다. 여기 한 장소에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 무덤 양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여기 무덤은 이 시기 이후 조선 무덤 양식에서도 잘 볼 수 없는 형태라 학술적 가치가 높다. 묘가 늘어선 위쪽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다 보면 시야가 트이면서 오방리를 둘러싼 능선도 훤히 볼 수 있다.

진주 오방리 오방재. /이승환 기자

하륜 묘는 이곳에서 50m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 따로 조성돼 있다. 일가 묘에서 하륜 묘까지는 나무가 우거진 산길이지만, 묘에 도착하면 다시 마을 아래쪽으로 시야가 넓게 트인다. 그리고 나무 숲이 다소곳하게 무덤을 감싸안고 있다. 특히 하륜 묘는 직사각형 모양인 다른 무덤과 달리 석판이 팔각형 모양으로 묘를 감싸고 있다. 팔각형 봉분 모양은 나라 안에서도 그렇게 흔한 게 아니라고 한다. 무덤 주위는 역시 돌로 쌓은 담이 둘러싸고 있다. 무덤 앞에는 석등과 석상이 서 있다.

오방재에서 하륜 묘까지는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언덕길이다. 이 길을 조금만 걸으면 큰 품을 들이지 않고 고려 말과 조선 말 권력가 집안이 누리던 옛멋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소득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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