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진해 해군 교육사령부

유난히 머리카락이 짧은 친구가 다른 친구들 사이에 머쓱하게 섰다. 친구들은 장난기 어린 손으로 친구 머리를 매만진다.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피해보지만, 한꺼번에 달려드는 손에 곧 머리를 맡긴다. 한 친구가 이런 친구들을 불러세우더니 단체 사진을 찍는다. 장난기 어린 친구들 표정은 밝고 머리카락이 짧은 친구 얼굴에 미소는 여전히 머쓱하다.

창원시 진해구 해군교육사령부 앞은 한 달에 한 번 북적인다. 지난 12일은 신병들이 입영하는 날이었다. 해군교육사령부 앞에 펼쳐진 천막은 입영 날짜를 가장 먼저 알리는 신호다. 천막에 건 펼침막에는 '입대 필수품'이라는 글귀를 강조했다. 상인들은 시계, 신발 깔창, 수첩, 펜 등을 천막 아래 펼쳐놓고 지나가는 신병들을 부른다. 바깥에서는 필요성에 대해 따로 고민하지 않았던 물건들이다. 바깥과 단절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이런 일상적인 물건에도 미련을 두게 한다.

"군화 안에 깔창 없으면 발바닥 다 까집니다. 훈련받으려면 무릎 보호대 있어야지요. 손목시계는 준비하셨지요?"

   

보통 때라면 대부분 쳐다보지도 않았을 물건들이다. 하지만, 상인들 말만 들으면 모두 신병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다. 이 같은 호언은 신병보다 신병 주변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부모, 친구, 애인 등은 5주 동안 훈련을 보낼 자식, 친구, 애인에게 마지막으로 해 줄 게 없나 싶어 판매대를 기웃거린다.

"깔창 하나 얼마예요?"

"1만 원짜리 있고, 1만 5000원짜리 있습니다."

"1만 5000원짜리가 더 좋은 건가요?"

"그렇죠. 1만 5000원짜리에 에어가 있어 더 푹신해요."

어머니는 '더 푹신하다'는 말에 1만 5000원짜리 밑창을 아들에게 전한다.

말끔한 차림으로 신병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는 이들은 은행 직원이다. 시중금리보다 1%포인트 높다며 적금상품을 홍보한다. 전역하고 쓸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과 보험 무료 가입이 혜택인 듯하다. 이 역시 따로 돈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먹힐 듯하다.

"대답 크게 해라."

   

나란히 걷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한다. 아들은 더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아버지가 아니라 선배 군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당부다.

척 보면 해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징물 앞에서는 기념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훈련소 안에 전시한 무기 앞에서, 해군 상징물 앞에서, 교육사령부 건물을 배경으로 친구, 가족, 연인은 신병과 함께 사진을 남긴다.

곱게 옷을 차려입은 여성이 머리를 짧게 깎은 남성에게 상자 하나를 전한다. 하트 모양을 한 상자 안에는 군것질거리가 가득하다. 훈련소 안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지는 몰라도 여성은 그렇게 마음을 전한다. 그러면서 눈가는 촉촉해진다. 그 비장한 모습이 유난스럽다고 여기는 몇몇은 주변에서 키득거린다.

연병장에서는 군악대 연주에 이어 의장대가 시범을 보였다. 총을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찰칵찰칵 단정한 소리, 절도 있는 동작과 한 몸 같은 호흡을 신병과 주변 사람들에게 뽐냈다. 그 모습에 혹한 사람들은 주변 분위기에 맞지 않게 감탄 섞인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훈련 기간은 5주, 신병 교육이 마치는 주에 신병 면회는 가능하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지인들은 신병이 어디에 배치되는지를 알 수 있다.

입영식이 열리는 시간은 오후 2시. 신병과 아쉽게 헤어진 지인들이 하나둘씩 해군교육사령부 밖으로 나온다. 신병 필수품(?)을 전시했던 상인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접는다.

"전에는 2주에 한 번씩 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 하더라고."

아쉬운 표정으로 판매대를 접은 상인이 천막도 마저 접고 자리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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