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독 설 연휴가 짧아 어지간히 피곤하겠구나 라며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여느 때면 4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두어 시간가량 가다 서다 하는 통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가끔은 그냥 설 연휴를 고스란히 집에서 쉬면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저 생각뿐이다.

딸만 넷을 둔 친정집의 명절 아침은 휑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제사가 없어서 명절이라야 가족들끼리 모여 맛있는 음식 먹으며 새해를 축복하는 게 다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친정에서 제사를 모시면서부터는 약간의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출가한 딸 넷이 모두 시댁에 가서 명절 준비를 하느라 친정집은 명절 뒷날이나 되어야 하나둘씩 모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제사는 고스란히 어머니 혼자의 몫이 되어버렸고, 명절이라서 그 쓸쓸함은 더없이 우리 네 자매에게 상처가 되었다.

다행히 다들 멀리 살고 있지는 않아 시댁 어른들의 배려로 시댁 제사를 지내기 바쁘게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올 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명절마다 손이 많이 가는 제사 음식 준비를 친정어머니 혼자서 하시는 게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생전에 한 번도 아들 타령 없으시던 아버지셨지만 아마도 명절 준비를 하는 어머니를 보면 아들 둔 집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당신이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편해하지 않으시는데 딸들은 이유 없는 서글픔을 느낀다.

명절이면 느끼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우리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아들만 있는 집은 그 나름대로 제사만 모시고 쌩하게 친정으로 달려가는 아들 며느리가 서운할 테고, 딸만 있는 집은 명절 아침을 쓸쓸하게 보내야 함에 서운함을 느낄 테니 말이다.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라는 슬로건을 접할 때마다 명절을 맞이하는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드리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에 점점 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를 원망할 뿐이다.

저녁이 되어서야 한자리에 다 모인 네 자매는 제사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리기에 바쁘다. 그런 우리를 보며 어머니는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끼리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데, 명절이 뭐 별거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신다.

   

딱히 다른 대안도 떠오르지 않고, 없는 며느리 만들어 내 놓을 수도 없는 네 자매는 서로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을 나눌 뿐이다. 늦은 저녁에 우리 네 자매와 손자 손녀들은 올 한 해도 무탈하게 건강히 지내시라고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께 큰절을 올렸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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