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보다 도지사가 더 재밌다"

홍준표(1954년생) 경남도지사가 취임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매년 1월이 되면 언론에서는 ‘신년 대담’이란 이름으로 도지사 인터뷰를 한다. 이런 경우 관례상 미리 서면 질문을 보내고, 공보관실에서 서면으로 답변을 준비한다. 인터뷰를 하는 기자(대개 정치부장급)는 약속된 시간에 도지사를 만나 10~20분가량 차를 마시며 덕담을 나누는 걸로 인터뷰를 대신한다. 그러다 보니 신문지면에는 보도자료나 별반 다를 바 없는 홍보 일색의 도정 시책이나 인사말이 인터뷰로 포장돼 나간다.

<경남도민일보>와 <피플파워>는 오래 전부터 그런 식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게 원칙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번에 홍준표 도지사 인터뷰도 당초 약속이 두 차례나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인터뷰는 55분 동안 진행됐다. 이 시간도 평소 <피플파워> 인터뷰에 비하면 짧은 편이어서 과연 제대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히 홍 지사는 질문의 핵심을 곧바로 파악해 요점을 정리해낼 줄 아는 인터뷰이였다. 빙빙 돌려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당초 질문 내용이 뭐였는지조차 잊어버리는 부류는 아니었단 얘기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김구연 기자

덕분에 다소 짧은 시간이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곧 단행된 그의 첫 인사에서 “국장이 함께 일할 과장과 계장을 선발하도록 하고, 책임도 함께 지는 국장책임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이날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은행창구에 있는 여직원에 반했다

-지사님 만난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궁금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부인(이순삼 여사)과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 궁금하다’더군요. (부인이) 은행원이셨다고요?

“예. 군산여상 졸업하고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에 근무했습니다. 1976년도 10월에, 제가 대학 3학년 때 돈 찾으러 갔다가 눈이 맞아 가지고, 그래서 연애를 했습니다.”

-법대 선배가 도움을 주셨다는 얘기도 있던데….

“아니, 도움을 줬다기보다 법과대 저희 선배가 대리로 있었죠.”

-그러면 지사님이 직접 접근을 했단 말입니까?

“우리 친구들이 갔어요. 친구들이 다리를 놓아줬죠.”

-몇 년간 연애하고 결혼하신 건가요?

“5년이죠.”

-그 이후 부인께선 쭈욱 내조자로서만?

“그렇습니다. 지금도 관사에 함께 와 있습니다.”

-(보궐선거 당시 후보자 홈페이지에 실렸던 사진을 보여주며) 지사님이 우산을 씌워주고 있는 이 할머니는 누군가요? 광고용으로 촬영하신 건가요?

“아는 사람은 아니고요. 동대문 있을 때 우연히 비 오는 날 할머니가 비를 맞고 걸어가시기에 제가 우산을 씌워드렸더니 우리 참모가 찍은 모양이에요.”

동대문에서 할머니와 함께 우산을 쓰고 가는 홍 지사.

-그러면 연출이 아니네요?

“연출은 아니죠.”

-(태권도복을 입고 찍은 또 다른 사진을 보여주며) 이건 고등학교 때인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니 1학년 때죠. 첫 승단 기념사진으로 찍은 사진이죠.”

-몇 단을 따셨는데요?

“초단이죠. 그것 따고 그만뒀어요.”

1969년, 고1 때 태권도 초단 땄을 때 사진.

-그 인연으로 지금 대한태권도협회장도 하고 있는 거죠?

“아마 태권도협회장 중에서 초단이나마 저처럼 태권도 유단자인 경우는 제가 처음일 겁니다. 태권도협회장이라고 해서 태권도 경력자가 한 것은 아니니까.”

-그럼 이 사진은 학교가 아니라 태권도장이겠군요.

“그렇죠. 그런데 그 때와 지금은 다르죠. 지금이야 블랙벨트 따는 게 쉽지만, 그 때는 체급 무시하고 대련을 해서 세 사람을 이겨야지 블랙벨트를 줬습니다.(웃음)”

스물일곱 번 이사를 다닌 사연

-지금도 운동을 좀 하시나요?

“지금은 안 하죠.”

-건강을 위해 하시는 거라도?

“아, 그거는 등산하고, 골프하고 그러죠.”

-등산은 주로 어떤 산에 즐겨 가시나요?

“지금은 정병산 다니죠.”

-몇 번이나 가셨는데요?

“한 번 갔습니다. 정상 까지는 안 가고 사격장 쪽으로 중간쯤 올라가다가…. 꽤 높은 산입디다. 처음엔 깔보고 올라갔는데….(웃음) 우리 집사람은 끝까지 올라갔는데, 나는 중간에서 내려와 버렸어요.”

-(대학생 시절 상의를 벗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지금도 이런 식스팩이 있나요?

대학교 1학년 당시.

“식스팩이 아니고, 그게 잘 보면 얼마나 말랐습니까?(웃음) 그걸 사람들은 식스팩이라 하는데, 못 먹어서 마른 겁니다. 거기 팔 한 번 보세요. 말라 가지고, 이 때 몸무게가 48킬로그램이었어요. 그게 대학교 1학년 땐데, 아마 대구 달성공원에서 찍었을 거예요.”

-(어릴 적 누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 분은 몇 번째 누님인가요?

“큰 누님이죠. 이제 70이 넘었죠.”

-누님이 정말 달덩이 같은 얼굴이군요.

“옛날에는 음…, 참 예뻤죠.”

큰 누나와 함께.

-두 분의 누님이 다 서울에 계신가요?

“아니요. 울산에 있습니다. 우리가 74년도에 울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이사를 정말 많이 다니셨네요. 창녕에서 대구로, 대구서 창녕읍으로, 거기서 또 합천으로, 대구로….(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네 번을 옮겨 다녀야 했다.)

“합천서 울산으로…. 제 개인적으로는 주민등록을 떼어보니까 스물일곱 번 이사를 했더라고…. 허허허허!”

-나중 어른이 되어 독립하시고도 그렇게 많이 이사를?

“검사 때니까요. 1년 반에 한 번씩 옮겨 다녔으니…. 전세금이 오르면 또 나가야 하니까 또 이사를 가야하고…. 이번에도 9월초에는 창녕으로 이사를 왔다가, 나중엔 창원 의창구로 왔다가, 이번엔 또 관사로 옮겼으니까 경남에 와서도 이사를 세 번이나 했죠.”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건 언제인가요?

“이건 고 1학년 때고, 이건 2학년 때고. 이건 대구 청천에 가을소풍 갔을 때고, 이쪽은 학교(영남고)….”

고교시절 대구에서 찍은 소풍 사진.
고교시절 영남고등학교에서 찍은 사진.

여자 있는 술집엔 절대 안 간다

-지금도 술을 잘 안 하시나요? 과거 검사 시절에 조폭들과 멀리 하려고 술을 끊었다던데.

“술을 안 하는 게 아니고, 91년 3월부터 여자가 나오는 술집은 안 갑니다. 그 때 강력부 검사로 광주에 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광주엔 룸살롱을 거의 건달들이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검사가 그런 데 가서 술 마시고 무절제한 행동을 하면 건달들에게 약점을 잡히기 때문에 그 때부터 소위 호스테스가 나오는 술집은 안 갑니다.”

-그 때부터 관리를 해오신 거네요?

“관리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소신있게 수사를 못하니까….”

-그런데 요즘 후배검사들은 검사스폰서 물의도 빚고 그러는데, 선배로서 어떻게 보시나요?

“검사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죠. 우선 숫자도 많아지고…. 검사 수가 우리 때보다 세 배 이상 많아졌을 걸요? 우리가 청주지방검찰청에 근무할 때 평검사가 세 명 있었는데, 지금은 30명이 넘었으니까. 검사 수도 대폭 늘어났고, 또 수사능력이나 집념도 옛날 같지 않고, 검사들이 샐러리맨화 했다고나 할까? 사실 검사라는 직업은 정의감이 있어야 합니다. 후배 검사들을 보면 정의감이 좀 엷어지고 그냥 이걸 직장으로 생각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 보니까 자꾸 사고가 나는 거죠.”

-숫자가 늘어나니까 자질도 하향되는?

“자질문제라기보다 열정이 문제죠. 열정이 없어진다고 봐야겠죠.”

-흔히 세간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검사나 판사나 이런 분들이 워낙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직업이다 보니까, 공부밖에 모르고 커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검사나 판사들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는 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특히 검사는 1년에 자신이 직접 처리하는 사건이 2000건이 훨씬 넘습니다. 그 수사기록 속에서 모든 인생을 간접 체험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실패한 인생이 대부분 검찰청이나 법원에 옵니다. 실패한 인생에 대한 간접 경험만 2000건을 보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검사 몇 년만 거치면 세상 물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됩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김구연 기자

-그래도 임용되기 전까지, 어릴 때 공부할 때까지는 잘 몰랐을 것 아닙니까?

“판검사들은 공부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고 판단력이 정확해야 하거든요? 공부, 지식은 그 다음 문제고, 판단력이라는 게 머리 좋고 나쁘고 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어쨌든 세월이 흐를수록 좀 더 깨끗하고 투명한 쪽으로 가야 할 텐데, 갈수록 검사 세계가 더 혼탁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게 아까 지적한 것처럼 검사를 하나의 샐러리맨, 월급 받는 직업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직업윤리가 엷어진 탓이죠.”

모래시계 검사와 달리 나는 거칠었다

-모래시계(1995년 SBS에서 24부작으로 방영됐던 최고의 인기 드라마)의 모델이 된 검사로 알려져 있는데, 혹시 그 당시 드라마 작가가 직접 찾아와서 취재를 해갔나요?

“작가와 PD가 서너 번 찾아왔어요. 스토리텔링 때문에…. 처음엔 거절을 했는데, 당시 검찰총장님께서 검찰을 아주 정의롭게 그려준다고 하니 드라마 제작에 협조해줘라 해서 스토리텔링을 좀 해줬습니다.”

-드라마에 묘사된 박상원 씨의 모습과 본인의 모습을 비교하자면?

“많이 틀리죠. 박상원 씨는 순한 사람으로 나왔고, 저는 좀 순한 사람은 아니죠.”(웃음)

-그러면 독하고 거칠었단 말씀인가요?

“제가 했던 게 강력부입니다. 조직폭력, 살인, 납치, 마약 이런 강력사범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런 사건을 하는 검사는 배짱도 있어야 했지만 순하면 그건 못하죠. 원래 제가 참 순한 사람이었는데 검사로 들어가서 순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검사를 못해요.”

-여자 있는 술집엔 안 가신다고 했지만, 보통 검사들이 폭탄주 잘 드시잖아요. 폭탄주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검사 시절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폭탄주 좀 하십니까?

“저는 폭탄주를, 제 기억에는 두 잔 이상 해본 적이 없습니다. 두 잔 이상은 안 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술이라는 건 많이 마시면 실수를 하게 되잖아요. 실수를 하고 이튿날 아침 일어나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래서 술은 자제를 합니다.”

-그러면 주량은 소주로?

“양주 한 병 먹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양주는 두 잔, 소주도 두 잔, 폭탄주도 두 잔, 맥주도 두 잔, 어느 술이든 두 잔 이상은 잘 안 먹습니다.”

-요즘도 저녁에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신다고요?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나자는 사람이 없네요.”

-왜 그렇죠?

“여기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겠죠.(웃음) 사실 공식적인 만남, 그러니까 도단위 기관장 모임이나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 우리 도청 직원들과 소주 한 잔하는 것 이런 것 외에는 저녁모임에 잘 안 갔습니다. 그건 서울에서도 그랬습니다. 가능하면 맘 편하게 살고 싶어서 꼭 필요한 사람은 낮에 사무실에서 만나려고 하죠.”

-취임 직후 저희 신문사 다녀가시면서 ‘토호세력과 거리를 두겠다’는 말이 화제가 됐는데….

“토호라는 말보다 정확하게는 토착비리세력이 맞는 말이죠. 사실상 이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이래 자치단체장의 위상이라는 게 과거와 달리 거의 제왕적 위치에 있습니다. 선출직은 주민에 의해 뽑혔기 때문에 누가 해임할 수도 없고 제왕이나 마찬가지예요. 어느 지역이나 토착비리세력이 있는데, 그들이 자치단체장과 결합을 하게 되면 그 부패고리는 사법기관 말고는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사법기관도 모든 부패고리를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열 건 중 한두 건만 드러날 수 있는데, 그것도 그나마 수사가 제대로 안 돼요. 그래서 토착비리세력과는 연결이 되면 안 되죠. 국회의원은 또 다른 문제예요. 그 분들은 실질적인 인·허가권이 없으니까. 그러나 자치단체장은 인·허가권을 갖고 기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물론 지역에 계신 유지들과는 만나야죠. 그러나 밝은 눈으로 보면 토착비리세력이 보입니다.”

-지금 그런 세력에 대해 파악을 하셨습니까?

“(단호하게) 그렇습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김구연 기자

판표(判杓)에서 준표(準杓)로 개명한 이유

-토호세력도 그렇지만, 예년에 보면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단체장에게 인사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청탁을 많이 했잖아요. 요즘은 없습니까?

“당연히 하죠. 국회의원은 원래 청탁하는 게 업이에요. 단지 돈을 받고 청탁을 하면 범죄가 되지만, 돈 안 받고 청탁하는 것은 아무런 죄가 안 돼요.”

-지사님이 되고 나서 지역 국회의원들이 그런 부탁을 불편해하지는 않나요?

“전혀 그런 것 없습니다. 스스럼없이 합니다. 그러나 청탁한다고 해서 다 들어주면 인사가 되나요? 제가 국회의원할 때도 부탁을 해봤지만, 합리적인 것 아니면 안 되죠.” 

-청주지검에 계실 때 이름을 판표(判杓)에서 준표(準杓)로 바꾸셨잖아요? 사실 확인 차원에서 여쭤보자면, 이주영 의원이 개명을 권유하셨다던데 맞습니까?

“이주영 의원 권고도 있었지만, 사실 윤영오 청주법원장이 개명을 해줬습니다. 개명 권한은 법원장이 쥐고 있습니다. 피송사건 절차법에 따라서 개명재판을 하는데 재판장이 법원장입니다.”

-바꾸신 이유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당시 판사도 아닌데 왜 판(判) 자를 쓰느냐? 판(判)이나 준(準)이나 한자의 뜻은 같다. 판단할 판, 법도 준이니까 그렇게 바꾸라고 했어요.”

-잘 바꿨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르기가 일단 쉽잖아요. 잘 바꿨다고 생각하죠.”

-검사와 국회의원으로 살아오시다가 지방정부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으셨는데, 국회의원과 도백(道伯), 어떻게 다른가요?

“우선 국회의원은 실수를 하더라도 바로 만회할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이라는 것은 한 번 실수를 하면 치명적이죠. 그게 본인이나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가기 때문에 국회의원 할 때보다 두서너 번 더 고민을 하죠. 이게 나중에 미칠 파급효과까지 생각을 해가면서 결정을 해야죠.”

-둘 중 어느 게 더 재미있습니까?

“음, 재미는 도지사가 더 재밌네요. 아직 얼마 하진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살림을 살 수 있어서…?

“그것보다 제가 도와줘야 할 계층을 제 힘으로도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이번에 국비예산이 대폭 증액되었는데, ‘힘 있는 도지사’의 저력으로 봐도 될까요?

“(손사래를 치며) 힘 있는 도지사라는 건 선거구홉니다.(크게 웃음) 선거가 끝났으니까 이제 그 구호는 잊어버려야죠. 이번에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습니다. 복지예산이 파격적으로 증대하고 다른 예산들은 다 축소되는 상황에서 경남도에 다른 예산들이 많이 배정이 되었다는 게 의미가 있죠. 특히 3억, 5억, 10억 이런 잔잔한 예산들, 정부 제출예산에는 없었던 것들, SOC 예산의 경우 3억 예산이 나중엔 수조 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처음에 고리를 걸 때 제대로 딱 걸어버리면 나중에 계속 사업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로 건설이나 주로 그런 쪽이죠. 숙원사업 중에 미뤄져 왔던 것이 새로 반영된 거죠. 실시설계비라고…. 그게 반영되면 본예산이 따라올 수밖에 없죠.”

이 대목에서 정장수 공보특보가 건네준 ‘국회 증액 주요사업’이라는 목록을 보니 ‘제2 안민터널(국대도 25호선) 건설 42억원’, ‘장승포항 친수시설 조성 20억 원’, ‘죽계~진전(국도 14호선) 건설 20억 원’, ‘산청구간 터널(국도 59호, 삼장-산청) 20억 원’ 등에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김구연 기자

재정건전화 목적은 복지예산 확대

-도청에 들어 와보니 가장 시급히 바꿔야겠다, 또는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게 뭔가요?

“부채문제죠. 그 다음에 재정 정상화죠. 부채가 1조 2000억에 달하기 때문에 이 부채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가장 큰 목적은 복지 예산의 확대에 있습니다. 도정방침을 보신 분들 중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복지예산이 없다고들 하는데, 도정방침 다섯 개가 다 복지예산 확충을 위한 겁니다. 복지 확충을 위해서 재정도 건전화해야 하고, 도정도 깨끗해야 하고, 성장 동력도 확충해야 하고 그런 방침을 걸어놓은 겁니다.”

-재정 건전화와 함께 균형발전도 강조하셨는데요. 경남에서 균형발전이 필요한, 제일 낙후된 지역이 어디라고 보십니까?

“북부와 서부 쪽이죠.”

-거기를 발전시킬 복안이 있나요?

“서부경남 쪽은 도청 제2청사와 사천 진주 우주항공산단 유치가 가장 핵심적인 주력분야가 될 것이고, 북부경남 쪽은 재정을 확충시켜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합천의 경우 재산세 전액이 1년에 124억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런 군 재정으로는 버텨내기 어렵죠. 군 재정을 확충해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예컨대 진행 중에 있습니다만, 작년에 현대캐피탈 리스회사가 창원에 있을 때 1000억 이상 도에 세입이 들어오고 시에도 아마 340억 씩 세가 들어왔는데, 그 회사가 제주도로 가버렸습니다. 등록지가 제주도로 가버리니 그 세입이 줄었죠. 그래서 그 현대캐피탈 회사에 요청을 했습니다. 제주와 똑 같은 대접을 해줄 테니까 다시 경남으로 돌아와라. 합천으로 돌아와라. 합천 재정자립도가 10.4%밖에 안 됩니다. 만일 그 회사가 합천으로 돌아와 리스차량 등록지를 합천으로 하게 되면 재정자립도는 24%로 쑥 올라가게 됩니다. 정상적으로만 하면 1년에 340억 원씩 세수가 들어오니까 합천으로는 허리를 펴게 되는 거죠.”

-성사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요?

“성사가 되도록 해야죠. 그런 식으로 각 시·군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곳은 그 기반을 도지사나 도에서 나서서 마련해주는 것이 옳지 매년 도에서 100억 주고 200억 주고 그런 식으로 하면 그게 소모성 경비가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지역에 재정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을 시·군마다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인사를 앞두고 공무원들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을 것 같은데, 인사 원칙이나 방향을 살짝 말씀해주신다면?

“여기 와서 인사자료를 보니까 경상남도가 지난 10년 간 중앙부처와 전혀 교류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폐쇄적인 인적 체제를 갖추고 있다 보니 경남에서 무슨 일을 해보려고 해도 중앙부처에 인적 네트워크가 없어요. 그래서 국책사업 지원을 받거나 예산 확보를 위해 중앙정부의 협조를 받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이번에는 우선 중앙정부와 인사교류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그게 첫째고, 두 번째는 빈약한 인재풀이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국장책임제를 한 번 만들어보려고 해요. 국장을 먼저 임명하고, 계장 과장은 국장 책임 하에 직접 함께 일할 팀을 만들라는 거죠. 그렇게 만들어서 잘못하거나 문제 또는 비위가 발생하면 공동책임을 지우는 겁니다. 그래서 국장이 계장 과장을 선발하는 그런 체제를 갖춰보려고 합니다.”

-상당히 획기적이네요?

“네, 그래서 국장과 과장 계장이 서로 마음에 안 들면 업무효율도 오르지 않으니까, 먼저 국장을 임명하고, 그 다음에 협의를 해서 인원을 배치시키는 방안을 도입할 겁니다. 다음으로는 비위가 있는 사람은 물론 안 되겠지만, 이번에는 승진의 기회가 많을 걸로 봅니다. 발탁 승진도 좀 있고, 발탁 전보도 있을 겁니다.”

-아까 인재풀을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개방형 직위를 늘리겠다는 건가요?

“그것도 있지만, 무작정 확대를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하면 기존의 직원이 갈 데가 없으니까, 가급적이면 개방형 직위를 한두 개라도 만들어보고…. 예컨대 투자유치단 같은 경우에는 외부에서 기업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단장을 맡아야 하지 않겠어요? 고용대책단장도 그런 방향에서 검토를 해볼 만하고…. 그렇게 좀 더 광범위하게 인재풀을 확대하면 좋겠습니다마는 기존 공무원 정원 체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출자·출연기관장 인사 때 도의회 사전 평가를 거치도록 하셨는데, 사실상 지방정부에선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인사권을 개방한 조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를 수용하신 취지는 뭔가요?

“정책 검증이죠. 도의회의 의견을 미리 듣고 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지방공기업법상 청문회는 안 되고, 임명권을 제한하는 것도 아니고, 내정을 한 뒤 도의회에서 정책 검증을 해보고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거고, 의회와 협력 차원에서도 한 번 도입을 해보려 합니다.”

-도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라던데, 배경과 취지는? 그로 인한 재원 조달 방안은?

“예산이 한 150억 원 정도 더 드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인터뷰 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왼쪽)./김구연 기자

부자에겐 자유를, 가난한 자에게는 기회를

-페이스북 프로필에 보니까 스스로의 성향을 ‘보수주의자’라고 적어놓으셨던데.

“그건 내가 적은 게 아닐 거예요. 아마 선거 때 캠프에서 적어놓은 거겠지.”

-2010년 한겨레와 대담에서 ‘부자에게 자유를, 가난한 자에게 기회를!’이란 말을 하셨더군요. 그 말이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은 부자에게 ‘책임’을 좀 더 강조할 때가 아닌가요?

“부자에게 자유라고 했지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겁니다.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부자를 너무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예컨대 부자가 좀 호화주택에 살면 어떻습니까? 해외여행 자유롭게 좀 다니면 어떻습니까? 월화수목금토일 골프 치러 다니면 어떻습니까? 외제차 좀 타면 또 어떻습니까? 세금만 제대로 다 내면 되지. 그런데 한국의 부자들은 눈치 보며 살거든. 그게 나는 마뜩치 않다는 거죠. 세금 내고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주자는 거지. 그러나 가난한 자에게 자유라는 것은 굶어죽을 자유를 뜻하는 것이거든요. 가난한 사람에게는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의 부자들이 탈세라든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지금은 탈세하고 하면 견디기 어렵죠. 그물망처럼 세금체계가 되어 있는데…. 그런데 과거에 그런 관행이 있었다고 해서 계속 부자들을 증오하는 것은 마뜩치 않다는 거죠.”

-같은 인터뷰에서 한국 좌파의 종류를 촐랑대는 좌파, 비아냥거리는 좌파, 얼치기 좌파, 당당한 좌파, 합리적인 좌파로 다섯 가지 분류를 하셨던데, 본인은 어떤 보수로 분류할 수 있을지?

“저는 이념적인 지표를 놓고 보수·진보를 따진다면, 지난 번 어떤 신문에서 분류를 했던데, 저는 10을 기준으로 4.6이 나왔더라고요. 또 어떤 신문은 5.3으로 매긴 것도 있고…. 5가 중도고, 5를 넘어서면 보수에 가까운데…. 저는 경제정책을 놓고 보면 진보성향이 좀 강합니다. 토지임대부, 반값아파트 등 지향점이 진보에 가깝죠. 그러나 정치분야는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최근에 SNS가 발달하면서 보수나 진보나 한국사회 전체를 비아냥대는 풍토가 많아졌어요. 당당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비웃고 비아냥대고 시니컬하게 해야 SNS에서 받아주는 그런 풍토가 문제예요.”

-말하자면 ‘나꼼수’도 그런 데에 해당한다고 보시나요?

“나꼼수도 말하자면 비아냥대는 거죠. 김어준 총수와는 개인적으로 안 지 10여 년 됐습니다만, 내가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마 이것(나꼼수)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일과성일 것이다고…. 결국 당시엔 그렇게 뜨더니 대선 끝나고 나서는 경향성이 확 달라졌죠.”

-역시 한겨레 대담에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많이 말씀하셨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던데, 지사님이 지향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아까 말한 그대로입니다. 부자에게 자유를, 가난한 자에게 기회를.”

경남도지사 오래하고 싶다

-내년 지방선거 때 당연히 재출마하시겠죠?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나? 재출마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경남지사를 좀 오래 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웃음)

-취미라든지, 특별히 재미있어 하는 게 있나요?

“저는 바둑 좋아하죠.”

-어느 정도?

“아마 2단 정도 됩니다.”

-누구와 주로 두시는데요?

“내 아들 아이디로 컴퓨터에서 합니다. 함께 둘 사람이 없으니까.”

-아들이 둘이죠? 둘 다 결혼은?

“아직 안 했습니다. 장가를 보내야 할 텐데….”

-직장은 다니죠?

“둘 다 한국에서는 최고 가는 직장에 다닙니다.”

-어느 회산데요?

“에이~. 하여튼 한국 재계순위 1~2위 기업 해외영업부 쪽에 다 있습니다. 능력이 있어요.”

-아들 중 한 분은 아버지가 권유해서 해병대에 입대했다는 말도 있던데.

“난 권유한 적 없습니다. 본인이 알아서 갔죠. 와전된 말입니다.”

-특별히 아끼는 물건은 뭔가요?

(옆에 놓여있던 만년필을 집어들며) “물건이라면 만년필 하나 있지.”

홍 지사의 만년필./김구연 기자

-좋아하는 글귀나 고사성어가 있다면?

“척당불기입니다. (뒷면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가리키며) 저겁니다. 당 대표 시절에 내 방에 걸어뒀던 걸 갖고 온 겁니다.”

-누가 쓴 글씨인가요?

“제 고등학교 동기입니다. 한국 추사체의 대가입니다.”

‘척당불기(倜儻不羈)’를 찾아보니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서 남에게 얽매이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였다. 액자의 낙관 옆에는 유곡 이남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척당불기의 뜻 그대로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표정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일어서면서 그는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이 되어 경남도정을 수행하는 게 편하게 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되었다면 나는 정치도지사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판 뜨는 도지사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민들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도정 슬로건은 ‘당당한 경남시대’다. 취임사에서 그는 “관행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길, 가보지 않은 길을 함께 개척해나가자”고 말했다. 또한 취임 직후부터 비리 혐의 공무원을 잇따라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개혁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민 도지사’를 강조하는 그답게 취임 후 거의 매일 구내식당에서 2500원 짜리 점심을 고수하고 있다.

집무실에 걸려 있는 '척당불기'.

출발은 좋은 편이다. 공무원들은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도민들의 기대는 오히려 높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경남도지사를 오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년 5개월 후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그의 정치적 미래는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그가 호언한대로 ‘부패 척결’ ‘서민 챙기기’ ‘토호세력 멀리하기’만 제대로 보여줘도 성공한 도지사가 되기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왜? 그 세 가지야말로 국정이든, 도정이든 가장 절실하고도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그 때를 위해 홍준표라는 사람을 좀 더 탐구해보기로 했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그의 저서 <변방>(형설라이프, 2009), <나 돌아가고 싶다>(행복한집, 2005), <이 시대는 그대로 흘러가는가>(문예당, 2000) 등 세 권을 주문했다. 1996년에 나온 <홍 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둥지)도 중고서점에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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