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진주] 양반님네 까칠한 혀끝 녹인 화려한 맛

통일신라는 685년에 전국을 9주로 나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진주 몫이었다. 오늘날로 따지면 도청 소재지가 들어선 것이다. 큰 관청이 있으니 이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중앙에서 온 관리·양반, 그리고 기생이 북적북적했다. 풍류가 이 고을에 꿈틀한 것이다. 이어지는 연회상을 채우기 위해 음식도 화려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교방·양반문화가 오늘날까지 뻗치고 있다. '진주의 맛'이 화려한 이유겠다.

이곳 사람들은 대표 향토음식으로 '진주비빔밥'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진주비빔밥은 '칠보화반(七寶花飯·일곱색깔 꽃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곱게 달고 있다. 황색 놋그릇, 흰 밥, 오색 나물이 어우러져 그 자태를 뽐낸다. 눈맛부터 사로잡는 데서 알 수 있듯 진주비빔밥은 기생들 손에서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힘 쓸 일 없고 술 좋아하는 한량들은 입맛이 까다로워 그 비위를 맞추느라 꽤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물에 육회 얹은 비빔밥으로 그 입맛을 녹였다고 한다.

진주비빔밥./박민국 기자

물론 제사음식에서 별도로 발전했다거나, 진주성 전투 때 여인네들이 밥에 이런저런 나물과 육회를 섞어 날랐다는 또 다른 유래도 덧붙는다.

이랬든 저랬든 이 지역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천리 길 마다치 않고 이 맛을 보러 온다"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가장 오래된 식당은 1929년 문을 열었으니 80년 넘는 세월을 잇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목조건물과 낡은 나무탁자가 지난 시간을 담고 있다.

다음은 '진주냉면'이다. 1994년 북한에서 펴낸 〈조선의 민족전통〉에 '냉면 중에서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라 기록돼 있다는 이야기는 자주 언급된다.

진주냉면./박민국 기자

1849년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진주냉면은 메밀국수에 무김치·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원료인 메밀이 이 고을 인근 산에 많이 재배돼 이 특별한 음식이 가능했던 듯하다.

두툼한 육전에서 느껴지듯 진주냉면 역시 여유 있는 자들 몫이었다. 한량들이 교방에서 밤참으로, 혹은 다음날 술 깨기 위한 음식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또한, 벼슬아치·지주들이 특식으로 이용했는데, 바깥에서 들여와 안방까지 나르는 하인까지 두기도 했단다.

1945년 시장에서 냉면을 내놓기 시작한 어느 식당은 이제 그 자녀들이 저마다 번듯한 가게를 마련해 문전성시를 누리고 있다.

어느 식당은 육수 비법을 궁금해하는 이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며 입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인기 만화에도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높였다.

'진주헛제삿밥'은 해학을 담고 있다. 유생(儒生)들이 밤에 글공부하다 배가 고프자 향 피우고 허투루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굳이 가짜 제사를 지낸 것은 주변 가난한 백성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제삿밥을 무척 좋아하는 사또가 이 고을에 부임했다. 그래서 하인들이 제사를 지낸 것처럼 해서 음식을 올렸는데, 사또는 "향 냄새가 안 나는 것 보니 헛제사를 지냈구나"라고 알아챘다는 것이다.

진주 헛제삿밥

그 옛날 교방은 궁중음식에다 지리산 주변 농산물·남해 수산물까지 더해 오색찬란한 꽃상을 내놓았다. 3∼4차례 걸쳐 상이 차려졌다는데, 술과 궁합이 맞는 해산물·국 요리가 다양하게 나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교방 폐쇄와 함께 그 화려한 상차림도 사라졌다. 그래도 몇몇 음식점에서 그 모양새를 갖춰 내놓고 있다.

1960∼70년대 들어서면서 시대에 맞는 음식들도 하나둘 더해졌다.

진주성 인근 남강 변 장어거리에는 '원조' 간판이 여럿 내걸려 있다. 1970년대 초, 남편 잃은 어느 여인이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장어구이였다. 삼천포에서 갯장어를 사와 강변에서 연탄불에 올리니, 그 냄새가 여간 구수하지 않았던가 보다. 잔술 걸치며 먹는 안주로 입소문 나자 주위에 가게가 하나 둘 들어섰다. 그 여인은 이제 손 놓기는 했지만, 아들이 이어받아 40년 세월이 끊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진주성 복원 확장이 계획돼 있어 몇 년 후면 이 명물거리도 사라질 운명이다. 어느 주인장은 찾는 이가 예전만 못한지 "이번 참에 다른 도시로 옮겨 장사할까 한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남강 변 장어구이거리.

통영다찌·마산통술에 비유되는 것이 '진주실비'다. 1980년대에 통영·마산에서 이 지역으로 스며들어, 신안동사무소 뒷골목에 '실비' 간판을 내건 집이 하나 둘 들어섰다고 한다. 지금은 통영·마산과 달리 주로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실비'라는 이름은 '실제 비용만 받고 판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안줏값 따로 없이 소주 1만 원·맥주 5000원으로 셈하는 식이다. 마산통술은 한상 5만 원에 소주 5000원·맥주 4000원, 통영다찌는 술 10병 포함한 한상 10만 원에 술 추가는 소주 1만 원·맥주 6000원 같은 식으로 값을 매긴다. 진주 인근 사천에도 실비집이 있는데, 셈하는 방식이 또 다르다.

진주 평안동 쪽에는 70년 가까이 된 허름한 빵집이 있다. 찐빵을 단팥죽에 찍어 먹는 별식을 내놓는다. 타지 간 사람들은 이 맛을 잊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단팥죽에 버무려 먹는 찐빵.

문산읍 쪽에는 '쨈국수'라는 독특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음식도 있다. 비빔국수 일종인데, 돼지고기 볶은 양념 색깔이 딸기잼을 떠올리게 한다.

수십 년 전에는 은어 낚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댐이 만들어진 이후 그 모습도 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래도 은어를 통째로 넣어 쌀과 함께 찌는 '은어밥'은 별식으로 아직 이름 올린다.

진주는 차(茶) 문화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전국 최초 차 모임이 1969년 이뤄져 차문화운동을 전국에 퍼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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