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겨울 해변

여름날 그 많던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겨울 해변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발걸음 한다.

남해군을 대표하는 상주해변에는 한 무리 사람들이 모여있다. 운동복 차림이다. 겨울 훈련을 온 육상 선수들이다. 멸치쌈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이들은 곧바로 이곳 송정해수욕장에 발걸음 옮겨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선수 한 명 한 명은 해변 끝에서 끝까지 전속력으로 뛰어서 오가고 있다. 거리로 따지면 1km는 더 돼 보인다. 모래땅은 더더욱 많은 체력을 요한다. 훈련 장소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숨을 헐떡이는 선수들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져 있다. 겨울날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이들에게 소리가 들릴까도 싶지만, 코치는 한쪽 끝에서 큰 소리로 이것저것을 지시한다. 한 바퀴 돌고 온 선수는 모래에 풀썩 주저앉는다.

   

관광 온 듯한 한 무리 아줌마들은 이러한 선수들에게 시선 줄 틈 없다는 듯, 자신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여길 택한 듯, 아줌마들은 바닷바람과 모래 감촉을 한없이 즐기고 있다.

선수들이 헐떡이는 숨소리와 아줌마들 수다 소리가 뒤섞이고 있다.

시끌벅적한 이들 사이에는 또 홀로 바다를 감상하는 젊은 남자도 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단지 겨울 자연을 즐기는 것인지, 이 남자는 시선을 수평선에 고정하고 있다.

이 남자 시선 중간으로는 손잡은 젊은 남녀가 끼어든다. 바다 앞까지 갔다가 파도를 피해 뒷걸음치는 장면도 빼놓지 않고 연출한다. 해변에는 빈 조개껍데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자는 해변을 걷는 중간마다 예쁜 조개껍데기를 고르는데 열중하기도 한다.

상주해변 인근에는 송정해변이 있다. 이곳은 찾은 이가 거의 없어 적막감으로 가득하다. 바람소리만이 이 공간을 깨우고 있다. 모래는 밀가루 같이 부드럽다. 사람 발자국 아닌 새 자국이 여기저기를 수놓고 있다. 한쪽에서는 두꺼운 점퍼 입은 중년 남성이 바구니를 들고 있다. 모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며 조개를 줍는다. 별다른 소득은 없었는지, 바구니는 채 반도 차지 않았다.

거제 몽돌해변은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관광객들이 몽돌을 하나둘 들고가는 바람에 그 수가 예전에 비해 줄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 때문인지 한편에는 '몽돌 반출금지-위반시 자연공원법에 의거 과태료가 부과됩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래도 반들반들한 몽돌을 열심히 찾는 이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꽤 시간을 투자한 후 만족스러운 작은 몽돌 하나를 주머니에 살며시 넣는다.

   

가족은 몽돌을 방석 삼아 앉아 '자글자글' 거리는 파도 소리를 즐긴다. 맨땅에서도 걸음걸이가 쉽지 않은 어린 아이는 몽돌 위를 뒤뚱뒤뚱 걸어보지만, 금방 주저앉는다. 그래도 계속 걸어보려 노력한다. 이 모습이 기특한지 부모들은 옆에서 열심히 응원을 보낸다.

사람 발길 많지 않은 곳에서는 해녀 한명이 물 속을 뒤지고 있다. 물 위에 고개 내밀고 잠시 숨을 쉬다 '이히~'라는 독특한 소리를 내며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간다. 해녀는 찬 바다와 이렇게 계속 싸우고 있다.

몽돌해변 앞에는 먹을거리 파는 가게와 노점이 늘어서 있다. 쥐포 파는 아저씨는 데이트 중인 젊은 남녀에게 "안 사도 되니 먹어봐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이를 놓고 남녀는 잠시 티격태격한다.

남자는 "먹고 어떻게 안 살 수 있어"라고 하지만, 여자는 "맛만 보면 되지, 그게 뭐"라고 맞받아친다.

밤이 되면 바다 주위는 숙박업소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다. 한 중년 남성은 "뒤쪽으로는 눈 돌리지 않고 바다 쪽만 바라봐야겠다"라며 아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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