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자유 억압에 침묵일관 자기들 권익옹호에만 주력


예총해체론의 뿌리가 태생적인 결함에 닿아 있음은 앞선 글에서 지적했다. 오늘은 그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논쟁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태생적인 결함을 다시 정리하면 첫째 예총의 뿌리인 문총(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이 해방 이후 양산된 좌익 문화예술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점, 둘째 정통성이 부족했던 군사정권이 문화예술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정권을 홍보하기 위해 문총을 해산하고 예총을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총해체론을 둘러싼 논쟁이 제3공화국이 몰락한 1980년에 집중됐던 것도 이와 같은 태생적 결함을 입증하고 있다. 먼저 문총의 문제를 살펴보자. 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을 지낸 박용구(88)씨는 80년 논쟁당시 “6.25 전쟁으로 문총이라는 목적단체는 그 역사적 임무가 벌써 끝났으므로 그 후신인 예총의 존립목적은 상실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폈다. 해방 이후부터 전쟁 이전까지는 좌익과 우익이 얼굴을 맞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남북이 갈라진 다음에는 남쪽에 우익만 남게 됐으므로 ‘좌익에 대응’한다는 명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 실제 문화계 내에서도 문총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단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음으로 정권과의 유착관계. 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할 당시 문학평론가인 홍사중(71)씨는 “예총이 계속 한국문화 예술계의 대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예술의 자유를 지상의 생명으로 삼는 예술가의 자긍심을 위해서나 문민정부의 명예를 위해서나 조금도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고 비판했다. 예총이 정부의 거국적인 행사 때 동원돼 꽹과리를 쳤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과 아무 관련 없는 정치적인 사건마다 정권을 옹호하는 성명을 남발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실제로 예총은 ‘한일협정’‘삼선개헌’‘10월 유신’에 대한 지지성명에 이어, 80년 봄에는 군복도 벗지 않은 전두환씨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데 서슴지 않았고, 87년 4.13호헌을 지지했으면서도 두달 후 6.29에 대해서는 “국운을 바로잡은…”으로 시작하는 자기모순적인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93년 문민정부 출범시에도 지지성명을 냈음은 물론이다.
현실적인 효용가치에 대한 비판도 있다. 예총이 정관상에 밝히고 있는 목적은 “예술문화인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그 권익을 옹호”하는 데 있다. 그러나 예총이 생긴 이래 연례적으로 벌어지는 감투싸움은 예술문화인간의 상호친목을 해쳤으면 해쳤지 강화시키지는 않았고, 군사정권 이래 계속돼온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대해서도 예총은 침묵으로 일관해온 게 사실이다. 예술인의 가장 기본적인 권익은 바로 유사성보다는 독자성이 더 강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총과 같이 예술계를 총망라한 조직은, 일부 사회주의국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하지 않고 있다.
한편 예총 옹호론으로는 “분단상황에서 북측의 통일된 문화예술계에 대응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예술인들이 심사숙고해 만든 단체이니 해체 운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 그리고 “엄연히 존재하는 단체이니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면 된다”는 입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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