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게 이런곳] 창녕 옥천사지

사지(寺址)는 절이 있던 터다. 흔적은 남아 있되 형체는 볼 수 없는 곳이다. 잘 아는 사람이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가르쳐주면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는 곳. '사지'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표지판이라도 없다면 대부분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 분위기는 대체로 을씨년스럽다.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에 있는 '옥천사지' 역시 그런 곳이다. 화왕산 등산로 입구를 지나 길을 오르면 사람들이 대부분 향하는 곳은 창녕에서 이름난 '관룡사'라는 절이다. 관룡사 뒤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갈 수 있는 봉우리 '용선대'는 빼어난 창녕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명당'이다. 관룡사와 용선대 명성은 이곳을 가려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절터를 더욱 보이지 않게 한다. 가는 길에 표지판도 있지만, 높게 자란 수풀로 가려진 아무것도 없는 땅을 눈여겨보는 이들은 드물다. 그나마 고려말 승려 신돈(?~1371)이 태어난 곳이라는 설명을 들어야 조금 관심을 보이는 정도다.

   

오종식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가 길을 벗어나 수풀 사이로 들어간다. 그는 안쪽으로 조금 들어서자마자 바로 돌 구조물을 하나 가리킨다. 절집을 받쳤던 구조물로 추정한다. 예사롭게 보이는 평평한 바위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조물을 끼웠을 듯한 홈이 있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석등을 세웠을 것으로 보이는 기단도 보인다. 쌓인 눈을 털어내자 그 모양새가 더욱 분명하다.

"여기 보이는 바위들이 그냥 바위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조각한 부분도 보이고 뭔가 세웠을 구멍도 보이지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려 때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귀하지요."

오종석 창녕군 문화해설사 / 박민국 기자

오종식 해설사는 길 한쪽에 표지판만 세웠을 뿐 관리되지 않은 옛 절터를 거닐며 아쉬워했다. 그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는데 갑자기 발밑을 가리킨다. 무심코 딛고 섰던 바위에서 내려오니 오종식 해설사는 바위에 쌓인 눈을 털어낸다. 불상을 받쳤을 법한 기단이다. 몇 번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니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가 모두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는 답사를 하면 번듯한 사찰만 찾아다녔지요. 그런데 해설사 일도 10년 넘으니까 언젠가부터 이런 사지가 더 매력이 있더라고요."

형태가 온전하게 남은 사찰에서는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사찰 형태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것만 해도 일상에서는 마주칠 수 없는 귀한 경험이기도 하다. 사찰에 얽힌 옛 이야기들을 쫓아가다 보면 다른 생각이 낄 틈은 없다. 반면, 사지에서는 그런 테두리가 없다. 간신히 남아 있는 작은 돌무더기, 돌탑 흔적, 일부만 남은 기단만으로 옛 절을 상상하게 된다. 규격이 없으니 사지를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머릿속에 사찰을 새로 지을 수 있는 셈이다.

"한적한 사찰에서 옛 절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하면 눈앞에 보이는 바위 하나 나무 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한적한 분위기가 그런 상상을 더 즐겁게 하고요."

오종식 해설사가 귀띔한 사지 감상법이다. 절터를 거닐다 다시 등산로로 빠져나온다. 표지판과 함께 돌로 쌓은 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가장 눈에 띄게 남은 옥천사지 흔적이다.

"창녕은 물론 경남 곳곳에 흔적만 남은 절터들이 많이 있어요. 지역에 유명하고 훌륭한 사찰도 많지만 사지에서도 사람들이 색다른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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