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동물원

할머니가 앞장서고 손자가 뒤따른다. 그 뒤로 아이 엄마가 따라온다. 앞장서던 할머니는 옆에 지나치는 철장 안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다가 표지판을 보고서야 뒤에서 따라오는 손자에게 급하게 손짓한다.

"사자다. 빨리 온나. 호랑이도 있네."

걸음이 능숙하지 않은 손자는 뒤뚱뒤뚱 걸어온다. 철장 안에는 사자가 심드렁하게 누워 있다. 사람들은 철장 지붕 높이에서 사자를 내려다볼 수 있다. 할머니는 사자를 불러보지만 사자는 위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도 않는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등밖에 볼 수 없는 사자가 아이는 야속하다. 바로 옆 호랑이가 있는 철장으로 향한다.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는 호랑이는 그래도 얼굴을 볼 수 있다. 할머니는 "호랑이네, 호랑이 봐라"라며 계속 손자를 부른다. 뒤따라온 엄마도 아이에게 호랑이를 조곤조곤 소개한다.

   

그림책이나 TV로만 봤을 무서운 호랑이는 계속 누워있다. 아이는 어설픈 발음으로 호랑이를 도발한다. 하지만, 맹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호랑이를 부르는 아이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가족을 데리고 온 아빠들은 얼마 만에 동물원을 찾는지 모른다. 아이들 좋아하라고 온 동물원에 어른도 곧 빠져든다. 특히 머릿속 동물에 대한 인상과 실물이 제법 차이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 듯하다.

"낙타가 원래 저렇게 컸나?"

"그렇네, 가까이 가지 마라. 전에 보니까 침 뱉더라."

   

등에 혹이 둘이든, 하나든 낙타 덩치는 상당하다. 일반적으로 동물원 밖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동물인 황소와 견줘도 1.5배 정도 클 듯했다. 아빠들은 낙타 덩치를 다시 머릿속에 재입력한다.

맹수는 철장에 단단히 가두지만, 초식동물은 그냥 울타리에 가뒀다. 애매한 것은 곰이다. 맹수인 것은 분명한데 사방을 둘러친 철장이 아니라 그냥 울타리에 가뒀다. 당장에라도 울타리를 넘어올 정도로 가까워 보인다. 다가가서 보니 사람이 구경하는 곳과 동물이 생활하는 곳 사이에 깊은 해자가 있다. 건너편에 누운 곰은 힐끗 바깥을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을 끈다. 가까이서 보는 맹수 이빨과 손톱, 덩치와 발바닥 등은 그림이나 영상과 또 다르다.

젊은 연인이 원숭이 우리 앞에 섰다.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 뒤에서 털을 고르며 벌레를 잡아준다. 다른 원숭이에게 등을 맡긴 원숭이 표정은 매우 평온하며 느긋하다. 사람과 하는 짓이 가장 닮은 이 동물은 행동과 표정이 그 의도가 분명해 많은 웃음을 준다. 원숭이들이 하는 짓을 보는 연인들 얼굴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엄마들과 아이들 여럿이 물개 앞에 선다. 엄마들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현장학습을 단단히 시키겠다는 듯 또박또박 물개를 설명한다. 우리 앞에 있는 안내판 내용을 빠짐없이 읽어주는 엄마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물개에 대한 설명보다 눈앞에서 헤엄치는 물개 움직임이 더 먼저다. 날렵하게 물속에서 헤엄쳤다가 솟았다가 하는 동작에 감탄이 이어진다. 물개 학명과 사는 곳 등은 엄마에게 중요할 뿐 아이들은 그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서로 잘 아는 아이들과 엄마들은 한꺼번에 자리를 옮긴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즐길 것이고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가르칠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원에 대한 눈길은 크게 두 가지다. '동물을 가두고 구경거리로 삼는다'는 비판과 '공존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동물을 보호하는 마지막 장치'라는 옹호다. 경남, 아니 영남권에서 매우 드문 동물원은 진주 진양호 근처에 있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처음 이곳을 찾은 어른들은 대부분 1000원 내고 들어가는 동물원에 아무 기대 없이 들어간다. 하지만, 나오면서는 1000원 값어치 이상은 한다고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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