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도 취업준비생도 아니면서 이맘때만 되면 '결과'를 맘 졸이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블로그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파워블로그 선정 결과 발표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2003년 이라크전 당시, '살람팍스'라는 블로거가 전쟁의 한복판에서 바그다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할 때만 하더라도 블로그는 '1인미디어'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언론과 학자들은 저마다 이 가능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 정착한 블로그는 공공적 성격을 가진 미디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개된 일기장'과 같은 사적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블로그는 나의 일상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나르시시즘적 욕망과 남의 일상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적 욕망을 유감없이 충족시켜 주는 도구였다.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강한 블로거는 적극적인 필자가 되었고, 관음증적 성향이 강한 블로거는 열성적인 독자가 되었다. 블로그는 조회·덧글·스크랩·엮인글을 통해 더 많은 독자와 연결됨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2011년 '파워블로그' 선정 안내문.

발전 단계에 접어든 블로그는 '공개된 일기장'에서 벗어나 테마를 모색하게 된다. 그렇다고 어느날 갑자기 거대 담론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연스레 요리, 맛집, 여행, 영화, 패션, 미용 등 일상 혹은 여가 관련 테마가 중심이 되었다.

블로그가 테마를 갖게 되자 방문자가 급증하면서 스타블로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페이지뷰가 곧 시장점유율이고 광고비 산정의 기준인 상황에서 블로그 서비스 제공자(포털)가 이를 그냥 둘 리 없었다. 영향력 있는 블로그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파워블로그 혹은 우수블로그 제도다.

파워블로그 제도는 2007년 다음· 티스토리·올블로그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시행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다지 파급력은 없었다. 블로그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네이버가 꿈쩍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워블로그는 더 많은 사용자 확보에 주력했던 네이버의 정책과는 배치되는 제도였다.

그러나 네이버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불과 1년 후인 2008년 파워블로그를 선정, 발표하기에 이른다. 시장 지배자답게 그 숫자 역시 기존 포털의 파워블로그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1200명 수준이었다. 이후 파워블로그는 블로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이자 많은 블로거의 지향점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파워블로그는 그 명칭에 걸맞게 사회적 이슈를 발굴하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능력에서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뒷돈을 받고 노골적인 홍보성 글을 쓴다든가, 공동구매를 알선한 대가로 수수료를 챙기는 등의 행태로 사회적 지탄을 받기 일쑤다. 영향력에 부합하는 전문성·도덕성·사회적 책임의 결여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다.

파워블로그에 대한 환상은 걷어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블로그를 꾸준히 관리해 온 성실성만큼은 인정해 주되, '파워'라는 수식어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 줄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저 다른 블로그들보다 조금 더 성실하고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강한 블로그일 뿐이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굳이 사족을 달자면, 필자는 지난 2008년 이후 4년 연속 네이버 파워블로그(blog.naver.com/landy)로 선정됐으며 2011년에는 '대한민국 100대 블로그'에 선정된 바 있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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