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투사의 흔적을 찾아서] (4)중국의 항일 유적 보존 실태

윤세주가 전사한 태항산 일대 조선의용대 유적지를 관리하는 이들은 모두 중국인이다. 조선의용대의 역사는 남북에서 모두 잊혔다. 이념 싸움에 민족의 항일 투쟁사는 남과 북에서 각각 왜곡되고 말았다. '빨갱이'라는 멍에를 씌우거나 언급 자체를 금기시해버렸다. 정치인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역사를 감추기 급급했다.

◇이웃이 돌보는 우리 역사 = 이웃나라 주민들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어루만져주고 있다. 태항산 유적지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관리된다. 이전에는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꾸준히 태항산 조선의용대 유적을 관리하는 이는 상영생(尙英生·58) 씨다. 그는 현재 한단시 진기로예열사능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데, 좌권 장군 일대기와 팔로군을 연구하다 조선의용대 활약상을 알게 됐다. 자신이 일하는 관리소에 제안해 60~70년 지난 유적지를 보존해왔으며, 더욱이 자발적으로 지방정부 위임을 받아 활동한다.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장도 맡고 있다. 답사 팀이 태항산 일대를 찾으면, 상 관장이 안내하고 중국동포 왕춘향(王春香·43) 씨가 우리말 통역을 돕는다.

상영생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장.

상 관장은 "이곳 일대에서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 유적지 관리 사업을 하려면, 단순한 관심과 애착심만이 아니라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리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마을에서 반대도 심해 주민들이 거친 말을 내뱉기도 했다. 비석 등을 세우면, 자리를 정하느라 의견이 충돌했다. 상 관장은 이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지역민은 긍지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과거가 현재 사회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야 한다. 주민들과 이해심을 형성하고, 소통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상 관장은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일할 생각이다. 그래서 어깨가 더 무겁다고 한다.

"석정 윤세주 열사와 같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외치면서 투쟁을 벌인 이들의 헌신과 업적, 그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역사가 있어 오늘날 잘살게 됐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한단시와 우호 협력 관계인 밀양시에서도 이를 잊지 말고 중·한 관계 발전에도 힘써주면 고맙겠다."

석정 윤세주 열사 기념사업회 주관 중국 역사탐방단(1월 4~10일)이 한단시 진기로예열사능원 윤세주 열사 묘 앞에서 밀양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윤세주는 밀양아리랑을 개사해 조선의용대 군가로 부르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사라진 발자취 = 태항산 유적은 관리와 보존이 그나마 이뤄지고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갈수록 김원봉과 윤세주,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중국 팔로군 총사령부와 129사가 있던 태항산 자락의 마전(麻田)과 적안촌에는 기념관이 들어서고 유적지가 남아 국가급으로 산시성(山西省)국에서 관리 받고 있다. 중국 공산혁명과 항일 무장투쟁을 동시에 폈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기본 구도를 짠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일대 조선의용대 유적부터 한단시 진기로예열사능원 묘소까지 조명을 받는다.

그러나 조선의용대 북상 이전 창설지와 훈련 장소 등은 그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무한에서는 조선의용대 창립지로 알려진 '호북성총공회' 자리부터 이후 축하 연회를 베풀었던 장소와 기념촬영 장소 등을 미루어 짐작해 찾아갈 수 있다.

운두저촌 남각에 쓰인 우리말 선전 문구.

기념촬영 장소는 현재 '승리가 15호'로 일본 조계지역 신사가 있던 곳이다. 무한시중심병원 옆 골목을 따라 20m 정도 걸으면 나오는데, 옷가게와 슈퍼마켓 등이 줄지어 서 있다. 인파가 운집하는 도심 거리로 옛 모습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중산대도 1112' 등이라고 적힌 건물은 조선의용대가 창립 연회를 연 곳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에 따르면 1945년 이전 지어진 건물인데, 외국인 기독교 회관으로 선교활동을 하던 장소다. 3층까지 강당으로 썼다는데, 지금은 이를 판자로 나눠 다가구주택이 돼 있다.

1932~35년 독립운동 군사 간부를 키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터로 알려진 중국 난징에 있는 천령사는 낡은 콘크리트 건물로 계곡에 숨어 찾는 이도 거의 없지만,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와 윤봉길(1908~1932)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훙커우(紅口) 공원(루쉰 공원)과 기념관, 자싱(嘉興·가흥)의 김구 피난처 등은 도심에 자리 잡아 한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가흥에 있는 김구 선생 피난처 입구.

◇항일 유적 현황 조사와 발굴 제대로 = 이처럼 독립운동사도 유적 보존은 대비되는 모습이다. 임시정부 등 한쪽으로 치우쳐 독립운동을 조명했던 정부의 잘못이기도 하다. 앞으로 제대로 된 항일 유적 조사와 관리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독립기념관은 오래전부터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복원 사업을 벌여왔다. 수백 개 독립운동 유적지 가운데 절반 넘게 있는 중국에서는 권역별로 나눠 보존을 지원한다.

독립기념관 한 연구위원은 "이미 복원된 임정 청사 등에는 전시 지원을 하고, 윤세주 열사가 순국한 태항산 일대는 지난해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을 통해 묘역과 건물 관리 등에 쓸 3000만 원 정도를 지원했다"며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매해 한 차례 지원하고 있으며, 국외 사적지 관리 기관을 초청해 중국에서 회의를 열어 문제점이 있으면 지원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사탐방단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고자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내부는 비교적 보존이 이뤄져 각종 전시물도 진열돼 있으며, 중국인 안내원이 우리말로 한국인 관광객 들을 안내한다.
역사탐방단이 상하이 훙커우공원 안 윤봉길 기념관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 기사는 석정 윤세주 열사 기념사업회 지원을 받아 중국 역사탐방 동행취재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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