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국인은 친절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외국에서 한국인의 인상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한국인에게는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다른 외국인이 말을 걸면 매우 친절하게 대답하는 모습, 그냥 인사만 하려고 하는데 왜 알은척을 하냐는 듯 얼굴에 싫은 티를 확 내는 모습, 뭐 좀 물어보려고 말을 걸었는데 자기에게 물어보지 말라며 차갑게 대답하는 모습 등.

하지만 모든 한국인이 그렇지는 않았다. 라오스 여행 막바지에 만난 한국인 아저씨가 그랬다.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가기 전, 버스 시간 때문에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반나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너무 이른 아침이라 갈 데도 없고 해서 근처 공원에 앉아서 시간을 때웠다.

공원 곳곳에는 한국인이 기부하고 기증한 시설이 있었다. 많은 한인이 거주하는 듯했다. 때마침 '라오스한인회'라고 적힌 띠를 두른 한인들이 길거리 쓰레기를 주우며 지나갔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여태껏 만난 한국인들처럼 차가운 반응이 돌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간 친구는 달랐다. 반가운 마음에 나이가 좀 드신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분은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하며 물어보셨다. 반가워해 주는 아저씨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아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오스에 태권도 사범으로 왔다고 했다. 아저씨는 연락처를 주며 지금은 시간이 안 되니 나중에 집으로 초대해 밥 한 끼 해주겠다고 말했다. 물론 인사치레로 생각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오더니, 이렇게 길거리에 앉아 있는 게 마음에 걸린다며 함께 밥을 먹자고 하는 것 아닌가? 씻지도 못했을 텐데 샤워도 하고 한숨 자다가 버스 타고 가라며, 아는 후배까지 불러 댁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아저씨는 가는 도중에 시장에도 들러 카레용 고기도 샀다.

요리를 하는 동안 아저씨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우리나라 외국 태권도 사범 1호라고 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아저씨 이름만 대면 모르는 경찰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아저씨 방에는 수 년 간 받아온 표창장이 가득했다.

아저씨는 그동안 여행한 곳과 일화를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특히 아무하고나 공유할 수 없었던 아프리카의 생활을, 한국도 아프리카도 아닌 제3국 라오스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 또한 더 없이 반가웠다. 아저씨는 언젠가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갈 거라며, 꼭 자기를 찾으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술을 마시면 안 됐지만 나와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었는지 집 앞에 나가 양손 가득히 맥주도 사왔다. 친구는 피곤해서 잠이 들었고 아저씨는 버스 시간이 다 될 때까지 나와 수다를 떨었다. 버스 시간이 되자 우리를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 주며 버스표까지 끊어주었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가 이별하는 것처럼 아쉬워하며 몇 시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 돌아와 아저씨가 부탁했던 지인의 연락처를 알려주고자 아저씨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아저씨는 꼭 다시 아프리카에서 만나자며 신신당부를 했다.

괜스레 가슴이 찡해졌다. 언제 어디서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타지에서 한국인의 정을 느끼게 해준 아저씨께 정말 감사드리며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김신형(김해시 장유면)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