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도내 문화예술공간 말뿐인 아이돌봄 서비스

#1 23일 창원 성산아트홀 전시실을 찾은 전유미(가명) 씨. 4살 난 아들과 8개월 된 딸과 함께 '마티스와 춤추는 색종이'전을 보러 왔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 배가 고픈지 칭얼댔고 유미 씨는 모유수유실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모유 수유실을 찾지 못해 안내대에 물었고 관계자는 "모유 수유실이 없으니 휴게실에서 해라"고 했다. 휴게실은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로 돼 있었다.

#2 24일 오후 7시 30분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경남 CBS 소년소녀합창단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공연은 만 7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다. 만약 미취학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객이라면 공연장 옆에 있는 유아놀이방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 공연 시작 20분 전. 유아놀이방에는 어린이 두 명이 놀고 있었지만,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은 없었다.

   

3 26일 오후 2시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어린이 뮤지컬 <아기돼지 삼형제>가 열렸다. 5살 된 딸과 10개월 된 딸을 데리고 온 이미은(가명) 씨는 모유 수유실을 찾았다. 홈페이지에서 미취학 아동을 위한 '도담도담 놀이터'를 운영 중이라는 공지를 보고 당연히 모유 수유실도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안내표지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찾다가 도저히 안 돼 안내대에 물었고, 관계자는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조금만 기다리라 했다. 몇 분 후, 열쇠를 들고 온 한 여자를 따라 모유 수유실로 향했는데, 공연장 옆 깊숙한 곳에 있었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과 함께, 태아·산모 건강을 위한 모유 수유 촉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각 지자체도 공공기관을 비롯해 백화점과 대형상점 등에 대해 모유 수유를 위한 수유실과 착유실 설치 권장구역을 지정, 운영할 것을 권고한다. 그렇다면 도내 문화예술 전시장·공연장 등은 상황이 어떨까? 〈경남도민일보〉가 확인한 결과, 도내 각 지자체가 운영 중인 전체 15곳 중 1월 현재 모유 수유실을 운영하는 곳은 5곳에 불과했다.

◇모유 수유 권장만 = 경남도립미술관과 창원 성산아트홀, 3·15 아트센터, 김해문화의전당, 창녕문화예술회관 등 5곳에는 독립된 공간을 갖춘 모유 수유실이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유아용 침대와 물을 끓일 수 있는 커피포트, 소파만 있었고 모유 수유에 필요한 유축기와 소독기구, 세면시설을 갖춘 곳은 드물었다. 한마디로 열악했다.

해당 기관의 설명은 이랬다. 의무 시설은 아니라는 것.

경남도립미술관에 있는 모유수유실.

경남도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문화예술회관의 설립 주체는 각 시·군이기 때문에 설치 조례에 따라 모유수유실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도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창원 성산아트홀 관계자도 "'모유 수유시설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는 있지만 권장사항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라며 "시설을 관리, 운영하는 주체의 의지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이용자의 불만이 잇따르자 서둘러 모유 수유실을 만든 곳도 있다. 김해문화의전당 관계자는 "원래 모유 수유실과 놀이방 시설이 없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기획공연이 늘어남에 따라 24개월 미만의 아이를 둔 관객들이 설치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3・15센터 2층에 있는 모유수유실.

◇놀이방 시설도 미약 = 대부분 공연장은 8세 미만 미취학아동과 유아의 경우 어린이 공연 외에 입장이 불가하다. 그래서 관람을 포기하는 부모도 많다.

진주에 사는 주부 김은영 씨는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공연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꼭 보고 싶은 음악회나 뮤지컬이 있다면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도내 미술관과 문화예술회관 15곳 중 놀이방을 운영 중인 곳은 창원 성산아트홀과 3·15아트센터, 김해문화의전당, 거제문화예술회관, 통영시민문화회관, 창녕문화예술회관 6군데다. 하지만 모두 제대로 운영되는지는 미지수다.

3・15 센터에 있는 놀이방.

홈페이지에는 보육도우미나 전문교육과정을 이수한 선생님 등이 공연 30분 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돌봐준다고 게재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연장 도우미나 직원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심지어 관리자가 없는 경우도 있다.

놀이방 시설을 이용한 적이 있는 회사원 김나영 씨는 "공간만 있고 아이를 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무슨 사고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냐"며 불안하다고 했다.

대극장과 소극장이 분리돼 있는 성산아트홀은 대극장을 이용하는 관객만 모유 수유실과 놀이방을 이용할 수 있다. 이유인즉 대극장 옆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김해 문화의 전당에 마련된 놀이방.

주부 최소라 씨는 "성산아트홀에 놀이방 시설이 있다는 말을 지인에게 듣고 5살 난 아들과 함께 왔지만, 대극장 이용객만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성산아트홀은 대극장 공연이 없으면 모유 수유실과 놀이방 문을 닫아놓고 있다.

◇홍보 제대로 해야 = 대다수 문화예술회관은 아무런 표시 없이 모유 수유실과 놀이방 앞에만 표지판을 세워놓았다. 그래서 이용자가 적거나 시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김해문화의전당에서 만난 주부 이민영 씨는 "그런 시설이 있는지도 몰랐다. 홍보 포스터나 표지판에도 없던데…. 있긴 있나요?"라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결혼을 앞둔 회사원 황희영 씨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모유 수유실이나 놀이방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미술관과 문화예술회관은 잘 몰랐다. 홍보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최근에 만들어진 문화공간은 보통 모유 수유실과 놀이방이 있지만, 오래된 곳은 시설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출산 장려와 모유 수유 촉진 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좀 더 적극적인 자세와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해 문화의 전당에 마련된 모유수유실.

<관련정보>

모유 수유실 있는 곳: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성산아트홀, 3·15아트센터, 김해문화의전당, 창녕문화예술회관.

놀이방 있는 곳: 창원 성산아트홀, 3·15아트센터, 김해문화의전당, 거제문화예술회관, 통영시민문화회관, 창녕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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