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 인원으로 운영중…사실상 영업 포기하다시피

현재 58년째 2대째 한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학문당서점. 창동거리는 수없이 변했지만, 빛바랜 흑백사진에서도 학문당서점만이 우뚝 서 있었다고 한다. 지난 무수한 세월의 흔적 이야기를 권화현 사장님으로부터 들어본다.

-부친이 서점을 시작하게 된 시점은 언제였으며, 어떻게 서점과 인연이 닿았습니꺼?

"왜정시절, 먼 길 마다않고 진주까지 가서 서점에서 교과서를 받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고 좋았다고 하데예. 그리고 해방될 때 마산으로 내려와 처음 취직한 곳이 서점이었다고 합니더."

-그러면 부친이 직접 창업을 한 시점은 언제입니꺼?

"학문당 간판 건 때는 1955년입니다. 우리어르신이 학문당 앞에서 저 뒤 골목까지 넓히는데 무려 30년이 걸렸습니더. 이곳이 원래 한양여관(박소선 할머니가 운영)터 였습니더. 앞에는 원래 명신당 땅이었고. 10여 평 정도 되었는데 그 건물로 3층을 지어서 학문당이 제일 처음 지었지예. 당시 주변이 모두 기와집, 양철집, 초가집이었습니더. 바다가 훤히 다 보였고 이 좁은 길 앞으로 버스도 다녔습니더."

-그러면 학문당 상호의 의미는 무엇이지예?

"우리 어르신 호가 '문당'입니다. 그 호 앞에 배울 학(學)자를 붙여 학문당이 된 겁니다."

-그라모 사장님은 어떻게 가업을 이어가게 됐습니꺼?

"(웃으면서)공부를 못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아버지 일을 물려받았지. 초중고를 마산에서 나왔으니 얼마나 친구가 많겠습니꺼. 하지만, 친구들이랑 제대로 놀지도 못했어. 그 당시는 얼마나 쉴 틈 없이 워낙 바빠서 나가지도 못했던 시절이었지. 그리고 아버지가 놀아가면서 하면 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늘 강조했기에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는 기라. 1년에 딱 두어 번, 크리스마스이브 날과 1월 1일에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나눌 수 있었습니더."

   
학문당서점 개업당시 모습(위)과 이광수 특집전 행사 모습.

-여태 서점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나는 22살 때부터 서점을 어른에게 물려받으면서 업무를 배웠는데,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한 번씩 찾아왔어요. 사연인즉 '학문당에서 책을 사서 공부를 해서 성공을 했다고, 책도 좀 훔쳤다'면서 정식으로 사과하면서요.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고백을 하는데, 참으로 뭉클한 느낌이었지."

-가장 오래된 직원은 얼마나 되었나요?

"강 부장. 30년입니다. 나이 들어 갈 데가 없는 거죠. 종사자가 10여 명이 넘었죠. 지금은 8명입니다."

-이렇게 어려운데도 직원들이 거의 함께하고 있네예.

"그렇잖아도 늘 문을 닫아야 되나 해야 되나 싶습니다. 오프라인은 이제 안 됩니다. 마산시내서점이 80년대 번성기 때는 60~70개 있었는데 지금은 6개 남았습니다. 신마산 세화당서점, 자산동 동남서적, 학문당, 중리 회왕서점, 합성동 대신서점, 홈플러스 내 가고파서점. 2007년 문화문고 접었을 때, 학문당이라도 문화문고 매상의 반이라도 따라와 줘야 하는데. 없어요. 그 고객은 다 오데로 가삤습니꺼. 인터넷으로 다 갔습니다. 이제는 별 의욕이 안납니더. 이제 내 혼자밖에 없습니더. 넘겨줄 데가 없습니다. 마산시내 책을 공급해주는 도매상이 있지만, 이젠 도매상도 문 닫는 실정입니더. 책을 공급해주니 자꾸만 부도가 나니까. 출판사도 서점에 책 공급을 안 해줍니다. 그게 큰 애로사항입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이 함께 살아남으려면 도서 정가제를 해야합니다. 출판사는 이 책을 만들면서 '아~ 이 책은 온라인에 팔아먹어야지' 하는 것은 1만원 짜리를 1만 5000원으로 가격을 매깁니더. 온라인에서 10~30% 할인해 주는 건, 전부 다 출판사가 다 마진 챙기고 준 것이지. 고객이 다 손해를 보고 있는 겁니더. 오데, 저거가 논 팔아가지고 싸게 해주는 것 아닙니더. 창원에 교보문고가 손님이 무지무지하이 많습니더. 근데, 흑자가 안 난답니더. 왜냐? 종업원이 많은께, 또 집세가 비쌉니더. 어지간히 팔아서는 흑자내기는 어렵습니더."

마산사람이라면 누구나 학문당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있으리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 흑백필름의 기억들을 상기하면서, 창동 주변의 지난 삶의 모습들을 잠시나마 되새겨봄을 감사히 생각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김경년(창동 아지매 김경년·http://changdongsud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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