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태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인터뷰…"밀양 수많은 투사 재조명 필요"

밀양은 김원봉과 윤세주 말고도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적게 잡아서 100여 명이라는데, 이런 고장도 드물다. 독립운동기념관이 충남 천안시 말고 지방자치단체로는 밀양과 경북 안동에 있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밀양 출신으로 지금까지 정부 서훈을 받은 사람만 65명. 여기에 김원봉은 빠져 있다.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은 밀양시립박물관 옆에서 2008년 문을 연다. 이후 중국 항일 유적지 등에서 유물과 자료 수집 운동이 작게나마 이뤄진 점은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아직 업적을 정리하거나 발굴해야 할 이가 많다고 한다. "밀양 출신 선열들의 행적을 몇 년 동안 조사해보니 우리 역사에 끼친 업적이 정말 컸다. 그럼에도, 밀양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 현창하고 선양할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사단법인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손정태(66) 소장은 2008년 12월 연구소 창립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25명 회원이 매달 한 차례 모여 활동 계획을 잡고 있다.

   

손 소장은 "약산과 석정은 밀양 독립운동의 전부다"라고 말한다. "약산 김원봉은 당대 백범(白凡) 김구(1876~1949)와 비교될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전 과정에 변절하지 않고,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을 했다. 약산이 조선의용대를 만들자 백범은 광복군을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경쟁관계를 형성했었다. 백범이 정치적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폈다면, 약산은 실력과 무력으로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다.", "석정 윤세주와 함께 있었던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 김학철(1916~2001) 인터뷰를 통해 들은 사실이다. 1941년 조선의용대가 북상했을 때 석정은 정치적, 정신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제복이 달랐고, 말을 탈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절대 과시하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손 소장은 계속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재조명에 나설 생각이다. "동화중학교에서 김원봉과 윤세주 등 여러 의열단원을 교육하고 이들에게 민족주의 정신을 투입한 전홍표 선생 등은 재조명해야 한다. 대종교 교주였던 단애(檀崖) 윤세복(1881~1960), 약산의 고모부로 임시정부 재정부장과 신간회 중앙간부를 지낸 황상규(1890~1930), 임시정부 교통차장 김대지(1891~1942), 기정 손일민(1884∼1940) 등 일부만 봐도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궤적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연구소는 올 상반기 밀양 독립운동사에 관한 시민 강좌를 열고, 하반기 청소년 어울마당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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