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을 살리자 삶을 바꾸자] (35) 함안 강지마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 강지마을에는 최근 몇 해 동안 새집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마을 어귀에서 바라보면, 예쁜(?) 집들이 한 집 걸러 하나씩 눈에 띈다. 어떤 집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쌓아 올리면서 한창 공사 중이기도 하다.

도시나 인근 고장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이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다. 쇠덤산(420m) 자락이 품은 강지마을에서 그만큼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진 셈이다. 마을 들머리에는 보호수와 작은 공원이 있는데, 여기는 캠핑장으로도 활용된다.

지난해 이곳에서 벌어진 도랑 살리기 운동 또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새집이 늘어 이웃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마을과 도랑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중요한 것은 집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랐다는 점이다. 70여 가구 가운데 한 집은 분리배출을 철저히 하지만, 다른 한 집은 쓰레기를 도랑가나 담벼락 주변에 버리기 일쑤다. 이처럼 생활 습관에서부터 차이가 컸기에 도랑 살리기를 통한 '교육'이 절실했다.

지난해 도랑 살리기 운동이 벌어진 함안군 함안면 강지마을 도랑. /박일호 기자

◇"올해도 이어가야" = 강지마을 도랑은 길고 높다. 최상류에서부터 마을 입구까지 4㎞ 안팎이라고 한다. 길이뿐만 아니라 폭과 깊이도 하천 규모와 맞먹을 정도다.

도랑이 너무 커 정화 활동에 어려움도 있다. 주민들은 벼와 감 농사를 짓는데, 농약병이나 비료 포대 등이 바람에 날려 도랑에 들어가더라도 주울 엄두가 안 난다.

더구나 도랑 둔치에는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갈대도 자라고 있어 쓰레기를 거둬들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갈대는 자랄 만큼 자랐고, 쓰레기는 수년 동안 자꾸 쌓여만 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 강지마을 도랑 살리기도 초반에는 갈대를 잘라내는 작업에 치중했다. 이후 집이 한 채밖에 없는 상류 지역을 뺀 도랑 2㎞ 남짓 구간에서 둔치에 박혀 있던 비닐로 된 비료 포대 등 각종 쓰레기를 줍고, 흩어져 있던 물길도 가운데 하나로 다듬었다.

지난해 활동을 통해 주민들 사이 분위기도 달라졌다. 지난 15일 오후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강지마을 추판용(67) 이장은 EM(유용 미생물군) 비누와 세제를 오토바이에 싣고 있었다. 마을 회의에 참석 못 한 주민들에게 이것들을 나눠줄 참이었다. 각 가정에서 내보내는 물도 깨끗이 하려는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다.

추 이장은 "함안군과 함께 도랑 살리기를 계속 이어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는 차원에서도 도랑 살리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며 "비닐 포대 등이 도랑에 떨어지면, 갈대가 높아 주우러 못 내려간다. 마을에 6개 반이 있는데, 앞으로 도랑을 구역별로 나눠 1년에 세 번 정도 작업해 갈대 일부를 자르고 쓰레기도 치우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퇴치용 바람개비를 설명하고 있는 조정래 씨. /박일호 기자

◇"유기농 교육 필요" = 조정래(58·창원시 의창구 봉곡동) 씨 고향은 강지마을이다. 전자 관련 직장에 다니다 4년 전 고향에서 농사를 시작한 그는 지난해에도 배추, 고구마, 콩, 파 따위를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재배했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농자재를 판매하는 '흙사랑 영농조합 법인'도 만들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고향에 대한 애착은 도랑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는 일로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어릴 적 도랑에는 잔풀이 없었고 미꾸라지, 논두렁에 구멍을 내는 드렁허리, 새우, 뱀장어, 게 등이 많았단다. 지금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아직 개선해야 할 마을의 문제점이 있다. 조 대표의 이야기다. "마을이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외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가까우면, 관공서에서 쓰레기 처리에 신경을 쓸 수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주민 대부분이 쓰레기 처리 방법을 모르고, 홍보나 교육이 덜 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조 대표는 "도랑 살리기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앞으로 유기농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친환경 농사를 짓다 보니 경험을 토대로 지식이 늘었다. "밤이나 참외 껍질, 조개껍데기와 같이 도시에서 먹고 남은 찌꺼기와 음식물 쓰레기가 농촌에서는 퇴비가 된다.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도랑에도 마구 버린다. 논밭에 유기질 퇴비로 버릴 수 있다. 심지어 연탄재, 말라죽은 작물 나뭇가지, 왕겨, 볏짚, 갈대, 나락 등도 고추 같은 작물의 탄저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시에서는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를 중심으로 단체로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운동을 벌여도 좋을 것이다. 냄새 문제는 EM으로 처리하면 된다. 결국에는 튼실하고 맛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고라니, 두더지, 멧돼지 등을 쫓아내는 도구도 만들어냈다. 밭에 어른 무릎 높이로 막대를 세워 일회용 옷걸이를 연결하고, 여기에 옆면을 잘라 바람개비 모양으로 만들어 형광 물질을 바르거나 알루미늄 박을 붙인 페트병을 끼운 장치다. 어두우면 빛을 내고 페트병이 돌면서 소리를 낸다. 논밭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는 동물들이 소리와 빛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고안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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