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 ‘가락’전설 깊은 추억의 산길

무척산(702m) 오르는 길에는 몇 가지 즐거움이 함께한다.
먼저 멀리서 보는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부터 눈길에 잡히는 산세가 만만치 않다.
그만그만한 높이에다 흙이 잔뜩 오른 위에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여느 산과는 다른 폼새다. 중턱에서 꼭대기까지 멋있게 깎아지른 바위봉우리가 좌우로 넓게 퍼져 있는 것이, 마치 옛날 갑옷 입은 장수들이 출전을 앞두고 창칼을 비껴 든 채 벌려 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앞길을 차지한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산세가 아름답다는 감탄이 나온 모양인지, “이걸 보고 뭐 그러냐, 가을에 오면 엄청 더 좋다”는 핀잔을 담은 추어올림이 귓가를 스친다. 하지만 겨울에도 산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법, 산마루 가까운 데 있는 폭포 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폭포바위에는 흘러내리던 물이 내리꽂히던 그대로 빙폭으로 얼어붙어 있다. 15m는 됨직한 낭떠러지 따라, 웬만한 어른 허리만하거나 아이 팔뚝만한 고드름이 곳곳에 주렁주렁 매달려 아래로 자라고 있다. 바닥에는 흐르던 모양대로 물결무늬를 새긴 채 멈춰 있다.
아이들은 이제 사람 사는 데서는 보기 드물어진 고드름을 만지면서 입에 두어 개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고 눈도 즐거운 모양이다.
또 다른 즐거움은 산세가 가파른 데 견주어 산길 걷기가 그리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산길이 곧바로 나 있지 않고 지그재그로 굽어 있다. 걷는 길이는 늘어나지만, 오밀조밀 구경도 하게 해주는 한편 아이들 손잡고 온 식구가 손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세 번째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오르는 길이 크게 힘겹지 않으니까 위아래 둘레의 풍경을 더욱더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오른쪽 왼쪽으로 둘러선 바위봉우리들은 오르기 전에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아까는 장수들을 우러러보는 모양이었다면 이제는 장수를 손아래 거느린 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애기소나무가 바위 위에 자리잡은 모양도 눈에 잡힌다. 보기야 좋다지만, 메마른 바위에 뿌리내려야 하는 애처로움도 한편으로 느껴진다.
멀리서는 낙동강이 크게 휘감아 흐른다. 산꼭대기를 향해 오르다 돌아서면 오른쪽으로 삼랑진이 보인다. 알다시피 삼랑진이란 세(三) 물(浪) 머리(津)라는 뜻. 낙동강이 밀양강과 둔탁하게 만나면서 일으키는 물결은 안 보여도, 흐름의 유장한 맛은 웬만하면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왼쪽에는 강폭 안에 작은 섬을 만들면서 샛강으로 흐르는 낙동강까지 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여기 산중턱인 것이다.
무척산의 가파르기는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천지에서 멈춘다. 이름이 너무 거창하다 싶은 천지는 골짜기가 막 시작되는 데에다 둑을 쳐 만든 조그만 연못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허가가 났는지, 왼쪽에 십자가를 매단 기도원이 눈에 거슬리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많은 이들에게 시원함을 크게 베풀었겠다.
지금은 꽁꽁 얼어 있어 조금은 삭막해 보인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그저 즐겁고 신기한지 발을 꽝꽝 구르기도 하고 돌들을 집어던지기도 한다. 어른들은 말로는 하지 말라면서도 크게 말리지 않는 대신 솔숲 아래 언덕에다 자리를 깔고 가져온 먹을거리를 꺼내어 식구를 모은다.
천지서 산마루까지는 평평한 길이다. 오르내림이 없지는 않지만 흙길인데다 크게 가파르지도 않다. 예까지 온 김에 숨결을 다잡아 내처 오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천지에서 발길을 되돌려도 좋겠다. 가슴만 뻐근하면 되었지 굳이 욕심대로 정상 표지석을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볼만한 곳 - 주남저수지

창원.마산에서는 무척산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6시간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다. 이를테면 여유가 있는 편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한때 동양에서 으뜸가는 철새도래지로 이름을 날린 주남저수지에 들르는 것도 좋겠다. 무척산 들머리에서 동읍 삼거리까지는 40분밖에 걸리지 않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10여 분 들어가면 주남이 나온다.
저녁 무렵 떼지어 하늘을 오르내리는 철새들을 구경한 뒤에는 어떻게 할까. 집으로 곧장 돌아와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먹어도 좋겠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주남 저수지에서 오른쪽 길 따라 20분 거리에 있는 북면 마금산온천에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온천개발을 둘러싼 비리의혹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 북면 마금산이지만 어디 사람이 ‘비리비리하지’ 온천까지 ‘비리비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에 앞서 하산길에는 낭떠러지 바로 아래 앉아 있는 모은암을 찾는 것도 괜찮다. 2000년 전 김수로왕이 어머니를 생각해 지은 암자라는데 옛 자취는 찾을 수 없다. 김해에는 김수로왕이나 가야가 아니면 말이 안되는 곳이 많다. 알에서 나온 김수로왕에게 무슨 어머니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모든 백성들의 어머니 또는 부처님 어머니를 김수로왕이 생각했다고 하면 그만이니 크게 시비할 거리는 못된다.
산마루 바로 아래 천지도 그렇다. 김수로왕이 붕어(崩御)한 뒤에 쓴 무덤에 자꾸 물이 차는 바람에 수맥을 끊으려고 산꼭대기에 연못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가서 보니 옴폭한 골짜기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둔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김해답기는 쇠가 난다는 뜻의 동네 이름 생철(生鐵)리다.
여기서 난 쇠는 가야를 지탱하는 군사.경제적 밑바탕이 돼 주었다. 철기는 전투력뿐 아니라 농업 생산력도 높여주었고 그 자체로도 화폐 노릇을 할만큼 훌륭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찾아가는 길

진주.마산.창원에서 국도14호선을 따라 부산 쪽으로 가면 된다. 마산을 지나 창원 39사단 앞을 질러 동읍과 대산면을 거친 다음 진영에서 오른쪽으로 국도 25호선을 떠나보내도록까지 계속 달린다.
이 때부터 오른쪽으로 진영이나 부산으로 빠진다는 지방도 표지판이 잇달아 나타나지만 여기에 혹하면 안된다. 반듯하게 난 길 따라 10여km 달리면 삼계네거리가 나타난다.
여기서 신호를 받아 기다렸다가 오른쪽 지방도 1022호선으로 꺾어든다.
꼬불꼬불 길 따라 달리다 보면 고개를 넘기도 하고 공단을 지나기도 한다. 하지만 삼랑진 가는 이 지방도로가 상.하사촌을 지나 한림정 가는 길과 갈라지는 생림면 사무소 소재지까지는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겠다.
여기서 한림정 가는 길을 버리고 삼랑진으로 줄곧 내달린다. 생림초등학교가 나온 다음 언덕빼기를 두엇 넘으면 뜬금없이 공장지대 비슷한 데가 나오는데 사실은 여기가 무척산 들머리다.
주변 풍경이 좀 황당하기는 하지만, 무척산 등산로 입구라는 표지판도 달려 있고 조계종 모은암과 태고종 석굴암을 알리는 간판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머리에 붙인 기도원 표지까지 함께 서 있어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대중교통편으로는 김해까지 가서 다시 밀양이나 삼랑진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기차여행을 즐기려면 경전선을 타고 삼랑진역으로 가서 김해행 버스를 갈아 탄다. 생림면 생철리 무척산 들머리에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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