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소진 심해 유의해야…나홀로 설산 등반 삼가길

절집에 있는 동안 주변 산들을 둘러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계속 눈이 내리는 바람에 미루고 미루다가 지난 토요일에는 큰마음을 먹고 3~4시간 코스의 산을 타기로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래 가기로 했던 코스는 가지도 못하고 무려 8시간의 산행을 하면서 죽도록 고생을 하였습니다. 고생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먼저 산 아래서 보는 산의 눈과 산에 올라 보는 눈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산 아래서 보면 나무에 가려 눈이 없어 보이는데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눈의 깊이는 깊어집니다. 그 까닭은 고지대일수록 기온이 낮아 눈이 녹지 않으므로 그해 내린 눈이 차곡차곡 그대로 쌓여 있는 것입니다.

본래 계획은 홍감마을에서 단지봉을 올랐다가 내촌마을로 가기로 하였는데, 산 능선에 오르고 보니 내촌쪽으로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용바위를 거쳐 용암마을로 내려오기로 하였습니다.

산 능선에서 바라보니 단지봉과 용바위의 거리가 비슷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착시현상이었습니다. 맑고 맑은 공기에서의 1~2킬로미터의 거리는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중간에서 만난 이정표를 보고야 알았습니다. 다음으로는 눈길에서의 보행동작과 아이젠의 무게입니다. 무릎 깊이의 눈길을 걷는 발걸음은 무릎이 가슴에 닿도록 걸어야 합니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착용한 아이젠에는 눈이 얼어붙어 점점 부피가 커져 신발의 무게가 매우 무거워집니다.

몇 시간 동안 아이젠을 차고 걷다가 하도 지쳐 아이젠을 벗어버렸습니다. 눈이 녹지 않은 음지에서는 아이젠을 벗어도 괜찮은데 눈이 녹아 땅과 낙엽이 보이는 양지에서는 오히려 아이젠을 신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흙과 낙엽 아래의 땅은 얼어있는 빙판이기 때문입니다.

고지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아예 눈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한과 대여섯 개 먹고서는 저녁 6시까지 걸었으니 배는 고프고, 체력은 바닥나고,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찬바람은 불어오고, 핸드폰 신호는 잡히지 않고, 그나마 눈길을 8시간 동안 걸을 수 있었던 것은 108배 덕분 아닌가 싶습니다. 부처님이 도와줬다는 뜻이 아닙니다. 108배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동작이 전신운동에다가 여간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요즘 절집에 있으면서 눈 때문에 산행도 할 수 없으므로 이 108배를 새벽에 3번, 저녁에 1번, 그러니까 432배를 하는 셈이니까 꽤 운동이 된 셈이지요.

아무튼, 마을에 도착하여 절집에 가려니 아침에 밥솥을 다 긁어먹었기에 새로 밥을 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염치불고하고 그냥 노인정에 가서 할머니들께 밥을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할머니들은 참으로 큰일 날 뻔했다며 과거 약초 캐러 다니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자신들의 이야기며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줄줄이 풀어놓았습니다.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마을 사람들도 까딱 잘 못하면 그러한데 길도 모르는 사람이 해지기 전에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 해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부처님 덕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눈 내린 산을 등산하는 분들에게 알립니다. 나 홀로 산행은 가급적 삼가고, 휴대폰 예비 배터리와 조난 신호탄 준비, 하루분의 식량과 여벌 방한복과 침낭 준비, 아이젠과 지팡이를 반드시 챙겨 가시기 바랍니다.

/선비(선비의 오늘·http://sunbe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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