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경남서 영화 만드는 김재한 감독·설미정 제작자

경남에서 첫 장편독립영화를 만든 김재한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에프 투 원〉(가제)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촬영에 들어가 이달 22일이면 모두 끝이 나게 된다. 〈에프 투 원〉은 도내에서 처음으로 '억 대' 제작비가 드는 작품이라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도내 시민사회와 정치, 금융계 후원으로 '2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투입돼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촬영비'에만 한정될 뿐이다. 앞으로 있을 후반 작업 및 배급망 확보에 따른 추가 비용까지 감안하면 3000만 원 이상 더 투입돼야 한다. 막대한 제작비, 집중되는 관심에 감독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한데 감독 못지않게 피가 마르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제작자다. 공동 제작자로 지역 시민단체 인사들인 설미정 '꽃들에게 희망을' 희망지기, 이철승 경남이주민복지센터 소장, 문광조 경남정보사회 연구소장이 나섰다. 이 중 사비를 털어 지원한 설미정 희망지기와 김재한 감독을 만나 고충을 들어봤다.

"신인 감독 한계 뼈저리게 느낀다"

김재한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지난 2010년 〈조용한 남자〉 이후 두 번째 장편영화다. 〈조용한 남자〉에서는 실패를 맛봤다. 곳곳에 자신의 손때가 묻은 영화지만, 퀄리티(질)는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절치부심 끝에 촬영감독으로 김성태 감독을 '모셨다'. 독립영화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 영화를 다수 촬영한 알아주는 감독이다. 워낙 베테랑이다 보니 촬영이 빠르고 쉽게 진행된다. 하지만 김재한 감독으로선 고민이 없지 않다.

〈에프 투 원〉 촬영현장. 카메라 모니터 뒤로 김성태 촬영감독의 모습이 보인다./메이드 인 필름

"보는 시각에 따라 사소한 차이가 생길 때가 있죠. 저는 막 이것저것 염두에 두고 다방면으로 고민을 많이하는데, 경험 많은 촬영감독 입장에서는 좋은 장면에 대한 판단이 빠르죠. 이때 나는 '다르게 더 찍고 싶다' 생각하지만, 제 의견대로 진행하기는 어렵죠."

연출면에서도 김성태 감독 의중이 많이 반영된다. 김재한 감독으로서는 아쉽지만 영상의 질이 워낙 높아 믿음직하다. "영화 엔딩을 '해피'에서 '새드'로 바꿔 상업적 부분을 많이 걷어냈어요. 작품이 추구하는 장르적 주제(이주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성이 더욱 선명해졌죠. 이를 통해 영화가 예술영화적 면모를 갖추게 됐고, 목표를 영화제로 하게 됐어요. 영화제 이후 개봉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된 거죠. 사실 아마추어인 제가 모르던 부분을 프로들을 통해 알게 된 거죠."

결국 지역에 전문 스태프가 없다는 아쉬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촬영, 음향, 조명 등을 빼면 스태프는 다 처음하는 친구들이에요. 지역에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으니 힘들죠."

그나마 방안이 있다면 지역 영화인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반목이 빈번한 게 현실이다. 기자가 봐도 지역 영화계는 모래알 수준이다. 김재한 감독은 이런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내 영화 관련 단체나 영상인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어요.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지원을 받고도 왜 우리에게 손을 벌리냐는 의식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이런 의식은 결국 우리 스스로 '생각의 파이'를 키우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전문성 있는 기술스태프와 작업을 하면 더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을텐데 말이죠."

지난해 12월 27일 창원시 '팔용 민속5일장'에서 열린 무사촬영 기원 고사에 참석한 제작자 설미정 씨./메이드 인 필름

"영화제작 참여, 냇가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

설미정 제작자는 매일 아침 특별한 모닝콜(?)을 받는다. "오늘 돈 들어가는 곳은 여기, 저기, 거기, 어디고요. 오후에는 천장이 높은 창고가 하나 필요하다는데, 섭외 가능하겠어요?"

순간 버럭 화를 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 역시 자신이 스스로 짊어진 짐이기 때문이다. "창원 성산구 제1호 영화제작사인 '메이드 인 필름'(madeinFILM)을 만들어 창원에서 처음으로 영화산업에 뛰어든 제 역할이니까요."

메이드 인 필름은 지역에 영화를 산업으로 체계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냇가에 징검다리를 놓는 셈이죠. 수심도 물살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를 건널 수 있는 채비를 차리고 틀을 만드는 작업이죠."

하지만, 이번 일은 힘들어도 '너~무~' 힘들다. 먼저 미처 알지 못한 영화 작업환경이 버겁다. "창조의 현장과 제 본업인 시민단체 활동이 너무나도 달라 고민이 많았죠. 영화 현장은 '계급적 분업화'(도제 구조)가 너무도 철저해, 지시나 명령이 어떠한 설명과 해설없이 떨어지죠. 민주주의 기본인 대화와 설득을 통한 합의점 도출을 생활화한 시민단체 활동가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죠."

김재한 감독과 자주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근 10년을 절친으로 지내오며 언성을 높인 적이 없는 둘 사이에 심한 고성도 오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치열하게 분투하는 이들을 보며 설미정 씨는 영화판 구조를 수용하기로 했다.

흔히 영화계에서 '제작자'는 '투자자'로 통한다. 돈을 투자한 뒤 행여 영화에 흥행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투자를 중단할 수도 있는 막강한 권력자다. 하지만 〈에프 투 원〉은 그럴 만한 구조가 아니다. 지역 각계각층에서 너무도 많은 후원을 받은 터라 제작 중단은 곧 지역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설미정 씨는 지금처럼 특별한 제작자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설미정 씨는 예정에도 없던 빚을 1200만 원이나 졌다. 하지만 이번 작업이 지역사회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하고, 영상영화 발전 동력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자부심은 변함이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지역 정치인이 다양한 후원을 했어요. 일반 시민들도 함께하고 싶다며 한푼 한푼 모아 후원금을 보내주시고 있고요. 말 그대로 모두가 함께 만드는 영화가 〈에프 투 원〉이에요. 제작 지원을 한 분들이 훗날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사는 지역이, 내가 전한 물품이, 내가 카메오로 나온 신(Scene)을 함께 보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영화를 잘 만들고 싶어요."

김재한(오른쪽) 감독이 출연배우와 촬영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메이드 인 필름

설미정 씨는 '특별한' 영화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협동조합'을 만들 꿈도 꾸고 있다. "경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영화협동조합 컨설팅'을 의뢰했어요. 이렇게 영화 한 편으로 지역 공동체가 들썩이잖아요. 또 제작자 참여, 창작자의 작업, 배급망 확보 등 지역 영화산업 체계가 잡히고 있잖아요. 경험과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작업이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이번 영화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지 않도록 지역사회의 격려와 응원, 채찍질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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