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 졸업 기념여행을 떠났다. 공식적인 학교 행사가 아니라 친한 친구 몇이 함께 서울로 떠난 여행이다. 몇 주 전부터 부산히 계획을 세우고 달력에 'D-day' 표시까지 하며 간절히 기다린 날이 바로 오늘이다. 새벽 첫 고속버스로 떠나기로 되어 있어서 덩달아 나까지 잠을 설치고 일어나 딸을 챙겨야 했다.

연일 한파가 계속되더니 오늘은 날씨가 크게 도왔다. 새벽 다섯 시 무렵의 공기가 춥지 않고 오히려 상쾌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와서 새벽의 공기보다 더 신선한 설렘을 안고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똑같이 안경을 낀 단발머리의, 갓 열일곱 살이 된 딸 아이 여섯 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속에 뜨거운 무엇이 가득 찬다. 버스를 기다리다 또 괜한 걱정에 몇 마디 잔소리를 하려니 설레는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딸과 친구들은 조잘대며 버스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나는 홀로 남아서 이제는 순서가 뒤바뀐 보내는 이와 맞는 이의 자리를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유난히 낯을 가리고 예민했던 딸 때문에 일하는 엄마인 나는 출근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엄마보다 더 잘 돌봐주는 외할머니가 있어도 딸 아이는 막무가내로 나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몰래 쫓기듯 집을 나오면, 뒤늦게 알아차린 딸이 우는 소리가 아파트 입구까지 따라와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그런 날은 엄마인 나도 울면서 출근하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아마도 네 살 때, 유치원에 간 두 번째 날부터인가 보다. 딸은 세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걸어 들어가더니, 이제는 누구도 두렵지 않은 듯 씩씩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걷고 있다. 호기심으로 가득찬 눈을 빛내며 세상보다 앞서 걷는다. 그 풋풋한 청춘의 성장 앞에 우울과 슬픔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엄마가 자기랑 함께 있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던 아이는 오히려 일하는 엄마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이제 아이는 자주 나를 두고 자기의 세계로 떠나고, 나는 보내고 기다리고 맞이하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

이렇게 바뀐 자리에 서성거리며 생각한다. 지금쯤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이 겨울의 이틀은 아이의 마음에 어떤 자람의 흔적으로 남을까. 보냄과 만남의 잦은 반복 속에서 아이는 자라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가지를 뻗어 갈 것이다. 엄마를 일터로 보내는 조그만 아이에겐 이별이 두려움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겐 이별이 설렘이요, 기대이다.

   

부모가 된 뒤 얼마나 많이 마음을 졸이고 그리움에 가슴을 앓았던가.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모여서 아이의 성장을 이뤄낸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 아이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격려하고 바라봐 주는 일, 바뀐 나의 자리에서 추운 손 녹여줄 난로처럼 기다리고 있는 일 뿐.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