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31) 박경제 산청 시골농장 대표

드라마 <대장금>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대표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어린 장금이가 홍시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다. 어린 장금이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는데…"라고 또박또박 앙증맞게 읊어대는 장면은 드라마가 끝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설탕 대신 홍시로 단맛을 충분히 낼 수 있을까.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730m 자락에서 '시골농장'이라는 곶감 농장을 운영하는 박경제(53) 대표는 "우리 곶감이 너무 달아 혹시 설탕물에 재워 놓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우리 곶감은 당도가 63브릭스까지 나옵니다. 설탕물은 보통 30브릭스 이하이므로 곶감이 더 달아요"라며 '설탕물보다 훨씬 달콤한 곶감'을 소개했다.

박경제 산청 시골농장 대표가 곶감을 포장하고 있다.

박 대표와 동갑내기 부인 심재순 씨는 곶감 농사를 30년가량 지어 왔다. 양봉과 한우 사육 등 축산업을 하던 박 대표는 1980년대 초 산청군 덕산에서 주로 하던 곶감 농사가 주위로 확대되던 시기 곶감 농사에 참여하게 됐다.

소규모 개별 농가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에 시천면 전체에 1개의 대규모 작목회를 구성해 활동했다. '산청곶감작목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곶감은 재미있는 사업입니다.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품목입니다. 물론 다른 시설 채소 등에 비해 힘이 많이 듭니다. 곶감은 겨울 농사가 아닙니다. 1년 농사지요."

좋은 곶감을 만들려면 우선 좋은 감이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 곶감용으로 사용하는 품종은 '고종시'. 이 '고종시'에 대한 박 대표의 자부심은 높았다. "2000년대 말 문화재청에서 150년 이상 된 고종시 나무를 경복궁에 심어 달라고 요청이 왔었습니다. 알고 보니 조선의 임금이었던 고종이 감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에서 곶감을 진상했는데, 고종이 참 맛있다며 무슨 감이냐고 물었답니다. 그냥 감이라고 대답했더니 고종이 '고종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역사 문헌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봄이 오면 감나무 비료 관리부터 전정 등 나무 관리를 한다. 10월 23일 삼강이 지나고 서리가 오기 시작하면 28~30일부터 감 따기를 한다. 박 대표는 감을 저온창고에 넣지 않고 그대로 광주리에 담아 1주일가량 숙성시킨다. 감을 갓 따면 꼭지 부분이 약간 녹색을 띠는데, 완전히 익혀야 곶감을 만들었을 때 선명한 색깔이 나오기 때문이다.

11월 5일쯤부터 껍질 벗기기를 한다. 감 따기부터 껍질을 모두 벗기기까지 올해는 29일이 걸렸다.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감은 건조장에서 최하 40일 이상 숙성된다. 수분이 빠져 감이 작아지면 내려서 '잠박'이라고 부르는 건조 선반에서 다시 말린다. 이때 모양을 잡아주는데, 처음에는 꼭지가 아래로 가도록 해서 살짝 눌러 피라미드형으로 만들고, 그다음에는 도넛 형으로 모양을 내고, 최종적으로 상자에 포장하면서 모양을 가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최소 1주일은 말려야 한다.

박 대표가 2차 건조를 하는 실내 건조장에서 말리고 있는 곶감을 살펴보고 있다.

모양을 잡아주는데 3단계 이상을 거치는 만큼 손이 많이 가지만, 맛은 더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감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곶감은 뒷맛에 떫은맛이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넛 형은 만질수록 알갱이가 파괴돼서 더 달아지고, 쫄깃하며 부드러워집니다. 훨씬 맛이 좋아요. 또 고종시 곶감은 만질수록 색깔이 더 좋아집니다."

감을 1차 건조할 때 색깔을 좋게 하려고 '향'을 쓰는 곳이 많다. 이 '향'의 성분은 주로 유황. 하지만, 이곳에서는 향 대신 벌에서 추출한 프로폴리스를 물에 희석해 분무한다. "검사를 해보면 유황 성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유황 오리도 있잖습니까. 하지만, 일부 불안해하는 소비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 신뢰를 위해 천연 항생제인 벌 추출물을 사용합니다."

박 대표 부부의 소비자 신뢰를 위한 노력은 다양하다. 산청곶감은 곶감으로는 첫 번째, 전 품목 따져서는 보성 녹차, 양양 송이버섯에 이어 3번째로 지리적 표시제 등록을 했다.

껍질을 벗긴 감을 1차로 말리는 실내건조장을 둘러보는 박 대표. /김구연 기자

"산청곶감작목회 사무국장을 할 때였는데, 우연히 교육받다 지리적 표시제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지리적 표시제로 국가적·세계적으로 보호 해주는 상품을 만들어보자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게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이들을 설득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1년 7개월 3일 만에 등록하게 됐습니다."

생산이력제를 4년째 시행하고 있으며, 올해 GAP(우수농산물) 등록을 위해 준비 중이다.

또 곶감 포장 상자에 박 대표 부부의 사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모두 표기한 것도 오래됐다. 상자 옆면에는 지리적 특산품 표시와 경상남도 추천상품 표시, 경상남도 유기농 매장인 '나비의 땅' 표시 등을 인쇄했다. 포장 상자도 여러 종류이다. 1㎏, 1.5㎏, 2㎏, 2.5㎏, 3㎏으로 무게별 포장, 또 A~D 등급까지 등급별 포장, 고급 선물용 포장 등 소비자 기호와 필요에 맞는 다양한 포장으로 제품을 다양화했다.

"농업도 이제는 서비스 산업입니다.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었다고 그냥 소비자에게 들이밀면 안 됩니다. 실명제를 하니까 처음에 주위 사람들이 저보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욕이라도 얻어먹으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했죠. 하지만, 소비자가 욕할 만큼 안 좋은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지구촌 먹을거리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력한 만큼 자부심을 품고 고객에게 마케팅을 할 수가 있죠."

시골농장의 곶감은 경매장에 나가지 않는다. 모두 직거래로 판매한다. 주로 우체국쇼핑이나 전화주문으로 판매한다. 그래서 시세 영향을 덜 받는 편이다. 경매장만 이용하는 농가는 설 이후는 수요가 없기 때문에 판매가 어려워 제값을 못 받더라도 명절 전에 출하하려고 한다. 그러면 물량이 몰려 가격은 더 내려가게 마련이다.

박 대표는 오로지 직접 발품을 팔아 '몸으로' 마케팅을 한다.

처음부터 판매가 잘 됐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꿀을 많이 산 고객에게 덤으로 곶감을 보냈다. 그것이 엄청난 입소문 효과가 있었다. 또, 여름에는 벌꿀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맛을 보인다. 겨울에는 곶감을 싣고 다닌다. 명함이라도 받으면 끝까지 연락해서 정성을 쏟는다. 직접 찾아다니며 마케팅 한 열정이 통해 부산상공회의소 등 대기업·단체에서 박 대표의 곶감을 명절 선물용으로 꾸준히 대량 주문한다.

지난해 건조한 곶감은 모두 13동 1300접. 1접에 100개이다. 하지만, 이미 입소문으로 유명해져 물량이 모자란다.

곶감은 낮밤 기온 차이가 커야 더욱 맛있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중요 요소로 꼽았다. '시골농장'이 지리산 730m에 있는 이유다. 집은 도로변에 있지만, 차량 소통으로 매연이 들어올까 우려해 농장을 높은 곳에 만들었다.

좋은 곶감은 색깔이 곱고 마치 살짝 서리가 앉은 듯 하얀 분이 배어난 것이라고 한다.

"곰팡이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곶감의 당 성분이 건조 과정에서 살포시 배어 나온 결정체입니다. 하동 대봉으로 반건시를 만들면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분이 없는 곶감이 깨끗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든 고객들은 '꼭 분이 난 것을 보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간혹 시장에서 분이 덩어리져 있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이것은 여름에 저온창고에 넣지 않고 보관을 잘못한 것입니다."

시골농장은 양봉과 곶감 판매로 연 매출이 5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그만큼 시설 투자를 많이 해 빚 역시 많다고 한다.

"자식이 3명 있지만, 모두 외지에 나가 있습니다. 뒤를 이을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하느냐고 하지만, 수월하게 일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시설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돈을 들여 보온 기능이 높은 이 하우스를 지었는데, 짓기 전에는 아내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온종일, 명절에는 새벽 2~3시까지 하우스에서 작업해야 하는데, 너무 추우면 능률도 안 오르고 사람도 고생이잖아요. 이걸 지었더니 그렇게 반대하던 아내가 더 좋아합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양봉과 곶감 농사를 하겠다'는 박 대표는 친환경 고품질 산청 곶감을 올해 미국으로 수출하려고 준비 중이다.

<추천 이유>

△장은실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소득생활자원담당 = 시골농장 박경제·심재순 대표 부부는 양봉과 밤농사도 겸하면서 '강소농'으로서 내실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곶감 품질 향상에 쉼 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우체국쇼핑몰과 부산상공회의소 등에 납품 계약을 따내는가 하면 포장 개발과 고급화를 통해 제품의 인지도를 한층 높여가고 있습니다. 특히 산청군생활개선회원이면서 2012년도 '강소농'에 선정되기도 한 심재순 씨는 친환경재배를 통해 수확한 감으로 고품질 곶감을 생산하는 열혈 농촌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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