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환생 등 상징 신앙적 존재로…집과 재물 지키는 '수호신' 구실도

2013년은 뱀의 해다. 혐오스런 외모와 달리 뱀은 지혜와 풍요, 불사를 상징한다. 뱀은 집과 재물을 지켜주는 업구렁이로, 영생불사의 수호신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두려운 동물로 표현됐는데, 그럼 회화 속 뱀은 어떤 모습일까?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뱀>(이어령 외 지음)을 통해 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람들은 날 싫어한다. 징그럽고 흉측하다고 피한다. 외모 때문인지 공포와 교활, 음흉과 불신, 유혹과 타락 등 부정적인 의미를 앞세운다. 하지만, 매년 허물을 벗는 특징 덕분에 재생, 불사, 다산, 풍요 등을 상징한다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난 그림에도 종종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아니다. 조연 정도다. 고분과 사찰의 벽화, 사경의 변상도 등 불화 등을 보면 조그맣게 그려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날 미적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주술과 신앙, 신화 등의 대상으로 봤던 것 같다.

세 칸 무덤에 그려진 '역사'.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 난 재물을 관장하며 복을 주는 일종의 가신(家神) 역할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을 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옛날에는 집마다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있다고 믿었는데,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구렁이가 건물 밖 마당에 나와도 잡지 않았다.

내가 가장 주목받았던 벽화고분은 세 칸 무덤이다. 5세기 후반 축조한 것으로 보는 이 고분은 만주 통구 우산 남록 끝 들판에 위치한다. 매사냥, 여러 복색이 등장하는 행렬, 궁성과 건축 등의 그림 소재로 잘 알려졌다. 내가 등장하는 건 3번째 방 동쪽 입구. 상투를 튼 역사(力士)가 나를 목에 감고 있는데 큰 눈을 부라린 모습이 매우 위협적이다. 또한, 서북벽 역사의 위에 두 뱀이 합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두고 우주의 탄생이나 창조로 해석하기도 한다.

1985년 대구대학교가 발견해 사적 313호로 지정된 경북 영주시 순흥 벽화에도 내가 등장한다. 서벽의 남쪽에 나의 목과 꼬리를 쥔 역사가 앞을 향해 막 달려나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역시 무덤 수호의 의미로 해석된다.

위협적인 뱀 모습은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풀이된다.

◇죄에 따른 응징과 고통 = 불교 경전 <수타니파타>를 보면 "수행을 하는 자는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렇듯 불교에선 나를 윤회에 빗대어 교육적인 의미로 봤다.

불화에 내가 등장한 것은 '수월관음도', '불열반도', '감로탱', '시왕도' 등인데, 대부분 나한테 물리거나 다가오는 것을 피하는 모습, 내가 똬리를 튼 모습, 나와 호랑이에게 쫓기고 물리는 모습 등으로 표현됐다.

예를 들어 '수월관음도'에서 주인공 관음보살은 암굴 속 바위에 한쪽 발만 늘어뜨린 반가부좌 형태로 앉아있고, '해인사 감로탱'(1723)은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의 오른쪽 다리를 굵은 구렁이가 물고 있다. 약이 없던 시절, 뱀에 물리는 고통이야말로 사람이 살면서 당하는 어려움 중 하나였을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내가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제6변성대왕〉 중 뱀이 악인을 응징하는 '독사지옥' 장면.

시왕도는 시왕이 주인공으로 크게 등장하나 중생들이 사후 열 차례 재판을 받는 각 과정에서 받는 고통이 담겨 있다. 그 중 '제6변성대왕'에는 지옥 가운데 뱀에게 잡아먹히는 독사지옥 장면이 묘사됐는데, 내가 좀 잔인하게 나왔다. 여러 뱀에게 감겨 물리고 먹히는 처절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상에서 살펴봤듯 난 고대에는 고분벽화에, 중세 이후부터 조선말까지는 불화에 등장했다. 무덤을 지키는 수호와 죄에 따른 벌 등의 의미가 컸다.

비록 징그러운 외모를 가졌지만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는 증거라고 풀이되며 나의 활력과 강한 생동감이 언젠가 회화에 큰 힘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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