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재발견] 가난한 땅에 뿌리 내린 양파, 절망서 틔운 '희망의 싹'

대지면 석리에는 우쭐함이 엿보이는 조형물이 있다. 주황색 양파를 두 손이 떠받치고 있다. 창녕이 양파 시배지임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1909년 이곳 대지면 석리에 살던 성찬영 선생이 양파 재배에 성공했다. 그렇다고 당장 보급되었던 것은 아니다. 수십 년 지나 손자인 성재경(1916~1981) 선생이 본격적으로 나섰다.

성재경 선생은 한때 이곳 논밭을 모두 소작농들에게 나눠주고 서울에서 출판사를 했다고 한다. 1951년 1·4후퇴 때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말이 아니었던가 보다. 마을 사람들은 보리농사를 짓는다지만, 대부분 배 곯는 생활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때부터 성재경 선생은 양파 종자 채취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농법을 전수하고, 신식유통체계도 들여왔다. 이곳 사람들도 보리농사와 비교해 수익이 10배 이상 날 수 있는 양파재배에 부지런함을 잃지 않았다. 그 덕에 마을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사용되는 양파망 역시 성재경 선생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성재경 선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63년에 뜻있는 12명과 함께 '경화회(耕和會)'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 농민자생단체다.

'참되고 올바른 마음으로 알뜰히 배우고 익혀 어리석음에서 벗어납시다.'

설립 이념이 잘 담겨있는 문구다. 재래식농법에 그치지 말고 함께 연구하고 정보도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양파를 보급한 성씨 문중 고가. 당시 찾아보기 어려운 서양 문화가 접목된 한옥이다./박민국 기자

이 단체에서 만든 1969년 소식지에는 '짓기보다 팔기를 잘해야 한다' '뚱덩이 같이 가꿔서 금덩이 같이 팔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1971년 11월 사단법인 인가도 받았다. 그즈음 창녕 양파는 전국생산량 가운데 35%를 차지했다. 창녕지역 전체가 보릿고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할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 양파재배, 혹은 창녕농업 발전에 큰 보탬을 한 성재경 선생은 떠날 때도 남달랐다. 1968년 우리나라 최초로 양파냉장회사를 설립했는데, 1981년 작고할 때 본인 주식을 경화회 회원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경화회는 오늘날 읍·면 지회를 두며 50년 세월을 잇고 있다.

어렵던 시절 다른 지역도 그랬듯이 창녕도 '비단 홀치기'가 여자들 부업거리였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양파재배가 이 지역 곳곳에 퍼졌지만, 이 역시 여자들도 손 보탤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딸 아이 많은 집이 오히려 생활에 큰 보탬이 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아이 낳아봐야 아무 짝에 쓸모없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창녕농업 발전에 큰 보탬을 한 양파.

양파는 먹을거리 없던 시절 간식으로도 쓰였다. 양파를 삶아 초고추장에 비벼 먹는 식이었던 듯하다.

가을 파종 시기에는 일손이 달려 '죽은 송장 손'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 오늘날 전국 생산량에서는 전남 무안이 우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전국적으로는 '무안 양파'라는 말도 제법 입에 달라붙는 듯하다. 그래도 창녕 사람들은 '양파 첫 재배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며 간간이 신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양파 시배지 조형물 뒤로는 창녕 석리 성씨 고가(昌寧 石里 成氏 古家)가 자리하고 있다. 1929년 지어진 것으로 양파를 보급한 성씨 문중 주택이다. 전국에 손꼽히는 부자였다고 전해지듯 당시 찾아보기 어려운 서양 문화가 접목된 한옥이다. 사람들 관심은 딴 데 있다. 이곳에 대해 물으면 마을 사람들은 "북한 김정일 처 성혜림(1937~2002) 생가"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생모가 이 집안 허락을 얻지 못해 성혜림은 이곳에서 나지 않았다는 얘기도 함께 들려온다.

이곳 사람들에게 먹을거리에 대한 옛 기억을 물으면 퍼뜩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생선에 소금·고춧가루를 넣어 삭힌 '식해'를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흔치 않아 보인다.

한편으로는 뻘이 많아 붕어·잉어 같은 생선이 흔했다고 한다. 무 넣어 고아서는 특이하게도 말려서 반찬으로 이용했다고도 한다. 가물치 같은 것은 양파망에 넣어 푹 고아 그 안에 으깨진 살은 따로 빼 먹기도 했단다.

대지면에는 도축장이 자리하고 있어 인근에 고깃집이 많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주말이면 차들이 많이 밀려든다. 차 세우기 좋은 입구 쪽 식당은 몰리고, 안쪽은 욕을 본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창녕에는 장날 수구레국밥이 유명하다. 수구레는 소가죽 안쪽 지방살을 뗀 것으로 쫄깃쫄깃해 씹는 맛이 있다. 여기에 선지·우거지·콩나물을 섞어 내놓는 수구레국밥은 창녕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낯설지 않은 음식이다. 한 방송에 소개되면서 유명세가 커졌다. 이 방송에 나왔던 집은 3·8일 장날에만 하는 노점이다. 대구 달성군 현풍면에 별도 식당이 있다.

도천면에는 이름난 순댓집이 있다. 1996년 허름한 가게에서 시작한 것이 입소문 퍼지면서 10년 만에 번듯한 가게를 마련했다. 옛 가게는 손님 대기실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김해·마산·진해·양산·대구 같은 곳에 프랜차이즈까지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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