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에 진학했던 1992년도는 음반시장의 큰 전환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보편화된 CD가 등장하여 이전 음반시장의 중심이던 카세트 테이프나 LP레코드를 대신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LP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게 디지털화된 소리에 귀가 익숙해져가던 즈음, 옛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연주하는 원전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때가 있다. 관련 음반이 전세계적으로 열풍이 불었다. 아마 90년대 말 즈음이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음반으로 성베넥딕토 수도회 수사들이 직접 부른 〈칸토 그레고리아노〉를 들 수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복잡하고 잘 꾸며진 음악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음식으로 비교하면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천연재료로만 맛을 냈다고나 할까? 요즘 표현을 빌리면 '힐링음악'이라고 하면 딱 맞을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에 흔하게 등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힐링 열풍이다.

자기 치유란 뜻의 힐링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은 아마 우리 시대에 그만큼 심리적인 내적 상처를 받은 이들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오늘날뿐만 아니라 각 시대마다 힐링은 존재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90년대 말 세기의 불안 속에서 원전연주가 선풍적 인기를 누린 것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교의 명상이나 그와 관련된 서적이 관심을 모았던 것이 한 예다. 인간은 그때그때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며 에너지를 축적하고, 또 그 에너지를 활용해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악을 비롯한 여러 예술 활동이 정신적 치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음악·미술·연극 등 많은 예술 관련 프로그램들이 힐링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전에는 감상 중심의 수동적인 예술 활동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오늘날에는 예술 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참여형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남자의 자격-패밀리합창단'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단원들은 합창 활동을 통해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고 힘을 모으며 시청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지난해 12월 15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는 일반 도민들이 만드는 참여형 공연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 전곡 연주회가 있었다. 일반 도민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합창단과 전문 합창단, 그리고 전문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공연으로, 직접 공연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도민을 위해 마련되었다. 많은 우려 속에서 필자가 직접 도민합창단을 지도했는데, 70대 어르신부터 20대 대학생까지 다양한 계층이 모여 함께 준비하고 공연하는 감동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느낄 수 있었다.

   

관 주도형 프로그램들은 이제까지 많이 제공되어 왔고, 수준도 어느 정도 올라왔다고 생각된다. 이제 좀 더 나아가 힐링의 시대에 어울리는 시민참여형 프로그램이 더 다양하게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욱용(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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