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실내 스케이트장

실내 스케이트장 입구에서 직원이 한 가족을 막는다. 그는 6~7세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꼼꼼하게 살핀다. 조금 애매했던지 약간 시간을 끌던 직원은 '입장 불가' 판정을 내린다. 키 110㎝가 안 되는 어린이는 스케이트장에 들어갈 수 없다. 아이 키가 약간 모자랐나 보다. 주말에 시간을 내 아이와 함께 즐기려던 부모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선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아이와 비교할 게 못 된다. 상황을 파악한 아이는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직원은 이런 일이 드물지 않은 듯 담담한 표정으로 다음 가족을 살핀다. 봐주고 말고 할 수 없는 게, 신나게 얼음판 위를 달리는 사람들과 아이 안전 문제가 걸려서다.

넓은 얼음판 위에서 사람들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돌았다. 트랙과 가까운 곳은 제법 스케이트가 익숙한 사람들이 끼고 돌았다. 스케이트가 낯선 사람들은 얼음판 가에 둘러친 펜스에 기대며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미끄러지지 못한다면 스케이트는 걷기에 매우 불편한 신발이다. 펜스 근처에서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비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빠! 나 좀 잡아줘! 아빠!"

다급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아이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린다. 아이가 손짓을 하는 곳을 보니 어른 한 명이 펜스에 바짝 붙어 발을 떼지 못한다. 아들을 지키겠다고 들어갔을 아빠는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어른이 돼 있었다. '알겠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발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아이를 향해 가는 어른은 아빠가 아니라 안전요원이다.

엄마와 아이는 양손을 마주 잡았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뒤로 미끄러진다. 아이는 엄마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진다. 몸을 잔뜩 움츠린 아이를 이끄는 엄마는 마치 아이가 처음 걸을 때 도왔던 것처럼 한 걸음씩 속도를 죽이며 끌고나간다. 조금씩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 한 무리가 거침없이 트랙을 돈다. 6~7명씩 뭉친 아이들은 속도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용케 서로 겹치지도 않는다. 그런 무리가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다. 무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트랙 가장 안쪽을 점령한다.

좁지 않은 스케이트 장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스케이트 타는 게 제법 익숙하더라도 마음 놓고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 어른들이 괜히 기분을 냈다가는 아이들이 움직일 곳은 확 줄어든다. 다행히 그런 이기적인 어른은 없기에 어른과 아이들이 섞인 스케이트장은 그냥 아이들 공간이 된다.

잘 미끄러지던 학생 한 명이 넘어지면서 뒤에 바짝 붙어 달리던 아이들 4~5명이 한꺼번에 겹쳐 넘어진다. 보호장비를 잘 갖췄기에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넘어진 아이들도 달리는 아이들만큼이나 신난 비명을 질러댄다. 안전요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이서 상태를 살핀다.

한 방향으로 계속 도는 게 지겨운 사람들은 지겨움을 덜어낼 꾀를 모으기 시작한다. 서로 어깨를 잡으며 기차가 됐다가 손을 나란히 잡으며 가로로 긴 줄을 만들어 트랙을 돌기도 한다. 손을 잡은 그 작은 공간 사이를 앉은 채로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다. 미끄러지는 것까지는 익숙해졌지만 제때 멈추는 것은 아직 낯선 아이들은 가끔 속도를 이기지 못해 진행 방향을 벗어나 트랙 바깥쪽으로 쏠려 나갔다.

아이들 키만 단속하던 입구에서는 이제 사람 수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스케이트장 크기는 한정돼 있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끝이 없다. 정해진 공간에서 안전하게 놀 수 있으려면 들어가는 사람 수도 한계가 있어야 했다.

"내가 일찍 오자고 했잖아!"

울음 가득 섞인 서러운 목소리가 엄마·아빠를 질책한다. 언제 나올지 모를 사람들을 기다리며 가족은 스케이트장 밖에서 신난 사람들을 지켜본다. 그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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