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을 찾아서] (30) 허주 고성 생명농원 대표

지난해 말 농촌진흥청이 마련한 농촌진흥사업 종합보고회에서 '2012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모두 4명. 많은 농업 분야를 아울러 전국에서 단 4명만이 뽑힌 농업인 최고 영광의 자리였다. 이중 도내에서는 2명이나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바로 고성군 생명농원 허주 씨와 사천시 영길참다래농장 장영길 씨.

허주 대표가 지금까지 만든 쌀 시료병을 소개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식량작물(벼) 분야에서 최고 명인으로 선정된 허주(67) 씨는 43년 동안 농사를 지어오며 각종 시험 재배로 친환경 고품질 쌀 재배 노하우를 터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주위에 전파해 '다 함께 잘 사는 농촌'을 만들고 있다.

8남매 중 넷째였던 허 대표는 젊은 시절 1년 정도 객지 생활을 하다가 같이 농사를 짓자는 부모의 요청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허 대표는 장남 아닌 장남 역할을 하며 부모를 모시고 살며 동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1970년대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 통일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갈색역반병'이 생겨 벼 재배에 치명적이었습니다. 수확이 안 됐죠. 대처법을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을 찾아내 물었는데 답을 안 하더군요. 혼자만의 노하우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다 진주에 있는 농업기술원에서 1주일 교육을 받고 방법을 겨우 알았습니다. 그걸 주위에 파급시켰습니다. 그다음부터 교육이란 교육은 다 다니고 독학도 많이 했습니다."

각종 자료를 모으고 기후·재배특성에 대한 평가회를 매년 했다. 품종 특성이나 투명도, 완전미 비율 등을 알 수 있도록 쌀 시료를 넣은 시료병도 매년 만들었다.

"쌀 농사도 관행 농업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적 차별화로 소득 증가를 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한때 농약이나 비료를 많이 뿌리고 수확량을 늘리는 증산시책을 시행했는데, 환경 친화적 생태농업으로 안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 무렵, '친환경'이라는 말이 생소했다. 고품질 쌀을 생산하자던 시기. 허 대표는 '고품질 쌀'을 넘어 '친환경'을 목표로 했다. 첫해는 실패했다. 벼멸구가 덮쳐 농사를 망쳤다. 연구 끝에 부직포를 깔아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멀칭 재배' 기술을 도입했다. 이후 우렁이 농법으로 물속 잡초를 모두 우렁이가 먹도록 하고 있다.

허 대표는 매년 다른 지역에서 시료를 채집하여 지역에 맞는 신품종을 찾고 있다. 지역·품종별로 분류한 시료를 소개하는 허 대표.

허 대표는 2004년 저농약 인증, 2007년 무농약 인증을 받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유기농 인증을 지속하고 있다.

허 대표는 각종 유기 자재를 직접 만든다. 천연 농약과 천연 비료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산업 모든 분야에서 비용 절감이 아주 중요합니다. 농업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유기 농약 300cc에 3만~4만 원에 이를 정도로 고비용입니다. 친환경 농업도 고비용 소수확이 아니라, 저비용 다수확을 추구했습니다."

봄이 되면 미생물을 확보해 당귀·계피·감초·생강·마늘 등으로 한방 영양제를 만든다. 천연 재료에 미생물을 섞은 것을 항아리나 통에 담아 꼭 황토 위에서 발효시킨다. 신기하게도 시멘트 위에 통을 두면 미생물이 까맣게 되지만, 황토 위에서는 하얗게 된다고 한다.

비료의 주성분 중 질소는 설탕을 이용한 멸치 액젓으로, 인산은 굴 껍데기를 현미 식초에 담가 사용하며, 가리는 참깨 대를 숯으로 만들어 보충한다. 또, 모를 심고 나면 유인등을 달아 병해충을 1차 방제하고, 기준에 따라 비료와 유기 농약을 준다. 예전, 갓난아기의 젖을 뗄 때 사용하던 '고삼'도 병해충 방제를 위해 사용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던 허 대표는 유기 농약 포장지에 적힌 중요 성분을 자세히 읽었다. 제일 마지막에 적힌 성분이 바로 '고삼'이었다. 친환경 자재 성분을 알고 싶었던 허 대표는 부산의 한 한의원에 가서 문의했다. 고삼이 바로 '느삼대'라고 했다.

'느삼대'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었다. 허 대표는 바로 고삼을 채취해 실험했다. 고삼의 쓴맛을 곤충이 싫어해 병해충 방제 효과가 뛰어났다.

허 대표가 만든 친환경 약제는 강력 방제기로 주위 생명농업을 하는 논에 한꺼번에 뿌린다. 9 농가 10㏊가 송정생명환경단지로 뜻을 같이하고 있다. 한 번에 일시 방제하므로 따로 농약을 치거나 할 수가 없다. 소비자 신뢰를 위한 방법이다.

"주위 농가들을 설득하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특히 쌀에서 관행 농업을 탈피하도록 의식을 전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관의 마인드 전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학렬 군수가 생명환경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농업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한 것이 친환경 벼농사가 정착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기르는 농업'에 관심을 둔 허 대표는 육묘를 해 주위에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고 있다. 허 대표는 기존 '산파식(흩어 뿌림)'에서 '포트식'으로 육묘 방식을 전환했다. 즉 육묘판의 작은 구멍에 볍씨를 1~2개 심어 키운다. 기존 육묘는 15일 모나 20일 모를 옮겨심기 하는데, 허 대표의 생명환경 농업은 35일이 돼야 성모가 된다.

"관행 농업은 3.3㎡당 70포기 이상 심는데, 우리는 50포기가량 심습니다. 또, 한 곳에 1~2개만 심으므로 '개장형'으로 자랍니다. 즉, 벼가 부채 모양으로 쫙 벌어지며 자라죠. 그만큼 뿌리도 튼튼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와도 쓰러지는 현상이 적습니다. 자연을 이기려면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허 대표는 논둑을 높게 만든다.

"친환경 농업은 제초가 제일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우렁이로 제초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물을 많이 채워도 포트식 방법으로 키운 벼는 대가 여물어 우렁이가 먹지 못하죠. 대신 물에 잠겨 있는 잡초는 우렁이가 다 먹습니다."

여러 가지 품종 연구는 지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한 필지에 한 가지 품종을 심어 생육 상태와 수확 후 품질 등을 시험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혼입 방지. 수정 시기가 비슷하면 인접한 논에서는 품종이 섞이는 혼입 현상이 생긴다. 이러면 품종별 시험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앙 시기를 잘 따져 혼입이 되지 않도록 해 고성군 지역에 잘 맞는 좋은 품종을 찾고 있다.

"10가지 정도를 시험하면 3~5가지는 실패합니다. 지역에 안 맞는 품종이거나 돌발 해충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산청 등지에서 키우는 추청벼는 이곳 남부에서는 맞지 않아 호농벼를 키우고 있습니다. 좋은 품종을 지역에 파급해 흉작 없는 농사를 짓도록 하고 싶습니다. 농촌진흥청의 시험장에서 이름을 채 정하기도 전의 신품종을 가져와 시험재배 하기도 합니다. 농민들이 가마 수에 너무 매달리기보다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으로 가야 합니다."

허 대표가 미생물을 넣어 발효 중인 천연 농약·비료를 선보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허 대표는 노하우 전파에 전혀 인색하지 않다. 기술이란 파급시켜 전체가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정말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전부 답을 해줍니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해서 지역 전체의 기술이 업그레이드되면 그 혜택은 내게도 돌아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무리 벼를 잘 키워도 인접한 논에 기술이 없어 해충이 많거나 하면 그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죠. 요즘은 다른 지역 농민들에게서도 전화가 많이 오고, 전남 등 친환경 기술이 앞선 곳에서도 기술을 배우러 옵니다."

미래 농업의 성공 여부는 기후 변화 대응 방안을 찾는 데 있다는 허 대표는 매년 쌀 시료를 만들고, 다른 지역에서 시료를 채집하며 지역에 맞는 신품종 찾기를 하고 있다.

차별화를 위해 여러 가지 기능성 쌀 생산과 여러 가지 색깔의 오색미 생산에도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미는 소포장 판매한다. 고객이 친환경 쌀을 주문하면 특수미를 샘플로 보내 특별한 홍보 없이도 자연스레 주문이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또한, 쌀 가공품 개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쌀과 보리도 수입 밀을 대체할 수 있도록 가공품으로 만들어 소비를 늘려야 합니다. 고성군에는 향토 사업으로 보리로 라면을 만든 사례가 있는데, 우리는 식혜를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내년쯤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추천 이유>

△백봉현 고성군농업기술센터 식량작물담당 = 허주 대표는 1970년대 식량증산시대에서부터 현재 고품질,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 이르기까지 43년간 오직 식량작물분야 발전을 위해 선구자적 역할을 해 왔습니다.

특히 2008년부터 고성군에서 역점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농업의 일환인 생명환경농업을 적극 추진하고 관내 주민의 참여 유도와 재배 면적확대에 기여, 600㏊의 생명환경단지를 추진하는데 앞장섰습니다. 특히 생명환경농업에 필요한 화학비료와 농약 대신 천연영양제, 천연자재를 직접 만들어 단지 농업인에게 공급하고 기술을 습득하는 한편 친환경 생명환경쌀을 생산, 학교급식·공룡쇼핑몰 등을 통해 소비자 패턴에 맞게 공급함으로써 소비자 반응도 아주 좋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