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폭설 후 풍경

지난 12월 28일 아침 우포늪 근처에 있는 펜션에서 맞은 창녕 풍경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TV 뉴스 속보는 창녕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숨 가쁘게 경남 곳곳으로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 나타난 모든 지역이 눈밭이었고 곳곳에서 사고 소식이 이어졌다.

펜션 마당에 있는 탁자 덕에 쌓인 눈높이를 가늠하기는 수월했다. 탁자 위에 쌓인 눈은 12~13㎝ 정도 됐다. 펜션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마당을 쓸었다. 나이 지긋한 주인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얗게 변했다. 그나마 주변보다 얕은 눈높이가 주인이 쓸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아니, 내가 창녕에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눈이 온 적이 없었는데…."

주인 말에는 신기함 반, 꼼짝없이 발이 묶인 손님들에 대한 안타까움 반이 섞였다. 그는 외진 곳이라 길이 열리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후가 되자 눈은 그쳤다. 하지만, 펜션 근처에 주차해놓은 차들은 눈 속에서 일부만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도 차를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개만 넘으면 읍까지는 어떻게든 갈 텐데…."

펜션 주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문제는 고개를 넘는 일이었다. 펜션 앞 도로는 다른 흔적 하나 없이 그저 하얗기만 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고요한 동네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트랙터가 도로를 왔다갔다하며 눈을 길가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깊게 묻혔던 회색빛 도로가 조금씩 드러났다. 펜션에 갇힌 손님들이 밖을 기웃거렸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목적은 모두 뚜렷했으나 나갈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은 아무도 가늠하지 못했다.

"아까 한 번 나가봤는데 고개를 못 넘었어요."

펜션 주인이 소형차 한 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소형차보다 성능이 더 나을 리 없는 소형차가 일단 펜션에서 나선다.

트랙터가 한 번 지나간 흔적은 있었지만, 도로는 온통 눈밭이었다. 조심스럽게 전진했지만 차는 오르막 중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바퀴는 헛돌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제멋대로 차는 방향을 틀었다. 차는 결국 전진보다 더 버거운 후진을 택했다.

차가 멈추고 재시도와 후퇴(?)를 고민할 즈음 멀리서 눈을 치우는 트랙터가 다가온다. 소형차는 트랙터 뒤를 쫓아가기로 한다. 눈을 길가로 밀어붙이는 트랙터를 따라 소형차가 쫓아간다. 처음 멈췄던 고비는 지났지만, 더 가파른 길에 접어들자 이내 차는 전진하지 못한다. 앞에서 트랙터를 운전하던 어르신이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핀다.

"어디 묶을 데 있소? 묶어서 한번 가 봅시다."

어르신이 내린 판단은 빠르고 적확했다. 어르신은 차에 있는 고리에 줄을 묶어 트랙터와 이었다. 트랙터가 앞으로 나가자 차가 서서히 끌려간다. 진행 방향이 틀어져 길을 벗어났다가도 곧 트랙터에 끌려 제 길을 찾는다. 그리고 어느덧 고갯마루에 닿는다.

기어 1~2단을 오가며 차는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고속도로까지 4~5㎞ 거리를 그렇게 천천히 진행한다. 간혹 길에서 만나는 차들은 서로 경계하며 넉넉하게 거리를 벌려둔다. 그 와중에도 앞지르기를 하는 차는 있다. 위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운전자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길은 평소와 다름없다. 길가에 높게 쌓인 눈이 한동안 버거웠을 도로 상태에 대한 흔적이었다. 그래도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얼음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대부분 차는 80~100㎞ 정도를 유지했다. 안전속도는 운전자가 진정 두려워할 때 제대로 지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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