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박근혜의 '준비된 여성대통령'도 아니요,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도 아니었다. NLL, 후보 단일화, 국정원 댓글 알바, 신천지, 십알단, 굿판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손학규(상임고문)가 제시한 '저녁이 있는 삶'이 그것이다.

그간 우리 선거를 지배해온 화두는 '개발'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균형발전 등 나름의 명분이 있긴 했으나 4대강, 신공항,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혁신도시 모두 환경 파괴와 땅값 상승, 지역 이기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유세 현장에서 손학규(왼쪽) 고문이 문재인 후보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증정하는 모습. /뉴시스

저녁이 있는 삶은 달랐다. 구체적 내용이 뭔가 궁금해 하기도 전에 이미 그 '구호' 자체로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 이기와 탐욕보다는 공동체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누구나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밤낮 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온종일 가게를 지키고 있어봐야 생존이 막막한 자영업자들, 스펙을 위해서라면 잠시의 여유도 포기해야 하는 젊은이들 모두 좀 더 나은 삶을 꿈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단 한 번도 대선 본선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문재인은 경선 당시 "빌려 쓰고 싶다" 말했지만 빌려 쓰지 않았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 유세 현장에서 손학규가 문재인에게 직접 〈저녁이 있는 삶〉 책을 증정하기도 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거나 괜히 빚지기 싫어서였을 수 있다. 아니면 정치공학적으로 선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판단했을 수 있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고작 몰입했던 게 네거티브 공세였나. 문재인 측은 박근혜를 '네거티브의 여왕'으로 몰아붙이며 자신들은 이와 무관한 것처럼 주장했지만, 신천지부터 아이패드, 굿판까지 막상막하였다. 확실한 근거라도 있으면 모를까, 뭐 하나 제대로 입증도 못하면서 오히려 역풍만 맞았다.

마침 민생과 경제민주화, 사회복지가 최대 화두였던 상황이다. 이걸 재벌개혁, 규제강화, 재정 확대 등으로 건조하게 표현하는 것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과 구체적으로 연관시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저녁 5∼6시만 되면 '마음껏' 퇴근해 가족·친구와 여유롭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하루 종일 직장이나 학교·학원에서 시달리는 게 아니라 틈나는 대로 위대한 예술을 감상하고 여행·산책·운동 등을 할 시간이 있다면. 물론 다수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불가피하게 '저녁을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영업자나 서비스 노동자 등에 대한 보상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저녁이 있는 삶이 야권의 핵심 슬로건이었다면 대선 판도가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민생을 들고나온 박근혜와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주며 그의 허구와 한계를 낱낱이 벗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참여정부 책임론이나 친노·운동권 이미지를 뛰어넘어 진정한 민생 정당으로 인식되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설사 대선에 패배한다 하더라도, 복지사회를 실현하고 새 정부와 자본의 '반동'을 견제하는 탄탄한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대선에 패배한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스스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볼 게 어디 한두 개일까 마는 그 주요한 단초로 저녁이 있는 삶을 다시 꺼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부디 모두 '저녁이 있는' 행복한 연말연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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