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김치봉·김슬기 부부

2008년이 경상대학교 개교 60주년이었던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60주년에 맞춰서 경상대 의류학과에서 더 규모를 키운 패션쇼를 준비한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김치봉(35)·김슬기(27) 씨에게 2008년은 서로 존재를 남다르게 인식한 해이다.

"의류학과 학생들이 행사를 거창하게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때 학생들이 홍보 영상이 필요했는데 저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학생들에게 무슨 돈이 있어서 밖에 일을 맡길 수도 없고 도와준다는 생각에 참여했습니다."

치봉 씨는 영상·촬영·편집 작업을 하며 일을 거들 사람이 필요했다. 의류학과에는 컴퓨터 작업을 능숙하게 잘해 '퀵 마우스'로 통하는 슬기 씨가 있었다. 그렇게 둘은 작업에 몰두하며 큰 행사를 잘 치러낸다.

주변에서 '사람 사귀는 게 취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붙임성 있고 배려가 많은 치봉 씨에게 슬기 씨는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둘은 선·후배 사이로 가까워진다.

   

"제가 생각해도 연인 관계가 되기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잘 지내기는 했는데…. 선뜻 마음을 열기가 어렵더라고요."

망설이던 남자와는 달리 슬기 씨는 치봉 씨 옆자리를 묵묵하게 지킨다. 일할 때는 똑소리 나고 늘 경우 바르다고 인정받는 슬기 씨는 재촉도 않고, 강요도 않았다. 치봉 씨가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었고, 있어줬으면 할 때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치봉 씨는 고마우면서도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 둘 사이를 묻는 사람들에게 내놓은 공식 답변은 '사촌 사이'였다.

"실제 마음이 그렇기도 했고 사귄다고 말하기가 민망했어요. 어디를 가나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는데 설명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사촌 동생이라고 했지요. 성도 같고 쓰고 다니던 안경도 같고, 그때는 연애하는 티도 별로 나지 않았고…."

   

마침 슬기 씨 사촌 오빠가 같은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슬기 씨는 나이 많은 남자친구와 다니는 것을 영 달가워하지 않던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사촌 오빠도 오빠고 오빠도 오빠였으니….

밀어내기 아닌 밀어내기를 했던 치봉 씨는 지난해 12월 슬기 씨와 연애를 선언한다. 내 사람이 될 수 없으리라 여겼던 동생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연인이 돼 있었다. 사촌 사이인 줄 알았던 사람들, 그래서 슬기 씨를 소개해달라 했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치봉 씨에게 남은 큰 벽은 슬기 씨 부모님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저에게 딸을 맡기기 어려우리라 생각했어요. 만남을 반대한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부담이 컸지요."

당당한 쪽은 오히려 슬기 씨였다. 치봉 씨가 공개적으로 연애를 선언하자 부모님께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집에 들고오는 선물을 누구에게서 받은 것인지를 숨기지 않았다.

슬기 씨 어머니는 결국 치봉 씨 전화번호를 내놓으라고 한다.

"제가 뵙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만 만날 줄 알았는데 아버지까지 나오셨어요. 그날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너무 얼어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지난 3~4년 동안 슬기와 지냈던 얘기를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어요. 술 한 잔 하면서요."

슬기 씨 어머니는 허락하려고 나온 자리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보러 나왔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아버지는 슬기 씨에게 술을 한 잔 한 치봉 씨 차를 대신 운전하라고 했다. 치봉 씨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슬기 씨 부모님은 치봉 씨 부모님을 만나자고 했다. 이왕 할 결혼이면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하자고 했다.

"짧지 않은 시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났기에 오히려 서로에게 더 믿음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나이쯤 되면 결혼할 때가 돼서가 아니라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결혼하는 것 아닌가요. 슬기 씨가 저에게 그런 사람이지요."

부부는 지난 8일 결혼했다. 경상대 기초교육원에서 일하는 치봉 씨와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일하는 슬기 씨는 사천에 집을 구했다. 주변에서는 '사촌이 사천에서 사네'라고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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