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후보 탈락 고배에도 정치적 입지 굳히며 대세론 입증

19일 새누리당 박근혜(60) 후보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자녀로서 처음 대통령 당선이자 첫 여성 대통령의 등장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 1998년 정치를 시작할 당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이 정치적 자산의 주요 부분이었지만, '원칙과 신뢰'·'위기에 강한 리더십'이라는 이미지를 쌓으며 정치인으로서 기본을 키워갔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재기에 성공한 박 당선인은 이번 대선 승리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부녀 대통령의 기록을 쓰게 됐다. 지난 1952년 2월 대구에서 태어난 박 당선인은 1961년 아버지가 5·16 쿠데타에 성공해 1963년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통령 딸이 됐다. 이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서거하는 비운을 겪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박 당선인은 귀국해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지만, 5년 만인 1979년 아버지의 서거라는 충격을 받게 된다. 18년 간 머물렀던 청와대를 떠난 박 당선인은 18년 동안 칩거하며 후일을 준비했다. 그는 육영재단 이사장과 영남대 이사 등을 거쳐 46세가 된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공천으로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을 본격 시작했다.

   

박 당선인의 정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재선에 성공한 뒤인 2000년 당 총재 경선에 출마해 이회창 총재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여의도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고, 2001년에는 당권·대권 분리 등을 담은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 대표직을 맡기도 했다.

대선 도전의 꿈을 접고 2002년 복당한 후에는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등으로 위기에 처했던 당을 구하기 위한 천막 당사 이전으로 배수진을 치는 등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이후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낸 박 당선인은 이어지는 선거에서 완승을 이끌어내 '선거의 여왕'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박 당선인은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면서 정치인으로서 가슴 아픈 경험을 더하기도 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도 30~40% 안팎 지지율로 대세론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 패배 이후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명을 바꾸는 등 개혁 조치를 단행한 것도 유명하다. 결국 2012년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예상을 넘은 과반 의석(152석)을 차지하며 승리한 것은 박 당선인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결과를 낳았다.

박 당선인의 오늘이 있게 한 아버지는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면서도 역사관 논란에도 민감한 사안이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던 5년 동안 아버지 곁에서 간접적으로 접했던 국정 운영 경험과 5선 의원을 지내며 당의 수장까지 맡았던 박 당선인이 앞으로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심도 모아지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 주요 약력

△1952년 대구 출생 △성심여중·고 졸업 △서강대 전자공학과(70학번) 졸업△퍼스트레이디 대리 △정수장학회·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 이사 △15~19대 국회의원 △미혼, 동생 근령·지만 씨

<박근혜 당선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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