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우편물을 이메일로 신청해 놓았기 때문에 관리비 영수증이나 광고물 외에 우리 집 우편함은 거의 비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뜻밖에 우편함에 낯선 봉투가 하나 있었다. 봉투 겉면에 김해중부경찰서라고 되어 있길래, 신호위반 고지서인가 하며 별 생각 없이 뜯어보다가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만 같았다.

"출석 요구서/저작권법 위반으로 조사할 사항이 있으니 ○○일 ○○시까지 출석을 요구합니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최근 몇 가지 종류의 글을 쓰고는 있지만 남의 글을 베껴 쓸 만큼 분량이 아니었기에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 출석 요구서에는 내 이름 석 자가 또박또박 인쇄되어 있었다.

난생처음 경찰서에 출두하라는 명령서를 받아들고는, 아직 취조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내가 얼마나 결백한 인간인가 수많은 변론을 떠올렸다. 당당한 표정도 연습했다. 그러다 담당 경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담당자가 전화를 받자 주눅이 들더니 목소리까지 떨렸다. 지은 죄도 없는데.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자 담당자는 신분을 확인하더니, '파일독'이라는 사이트에서 소설을 다운받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런 사실이 전혀 없는 나는 자신 있게 주민번호가 도용된 것 같다며, 나는 그런 웹 사이트를 이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 뒷이야기는 뻔할 뻔자였다.

고작 13살짜리 딸 아이가 주민번호 도용의 범인이었던 것이다. 즉, 내 딸이 나의 주민번호로 파일 공유 사이트에 가입을 해서 인터넷 소설들을 다운받아 보았고, 그 가운데 인기 있는 소설을 또 다른 웹사이트에 올려서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읽다가 고소당했다는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였다.

결국 나와 딸은 경찰서에 가서 취조를 받아야 했고, 딸은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경사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반성문을 제출했다. 딸 아이도 이런 일로 경찰서까지 출입하게 되어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처음엔 어린 녀석이 별짓을 다 하는구나 싶어 괘씸하고 어이가 없더니, 소설을 무료로 다운받아 읽는 걸 알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둔 내 잘못이 더 크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딸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양의 정보와 스마트한 기계에 노출되어 자란 아이들이 저절로 정보 이용 예절을 알아가길 바라는 거야말로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조금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런 일을 일찍 겪게 된 것이 오히려 잘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작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딸 아이에게 전했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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