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맛집] 창원시 합성동 '라멘당'

한국에 일본식 라면집이 들어 온 것은 꽤 오래 된 일이다. 하지만, 대체로 일본식 라면을 흉내내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발달해 제대로 된 일본식 라면 맛을 보기 어려웠다. 세월이 지나 한일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한류 열풍으로 말미암은 일본인 관광객 급증으로 정통 일본식 라멘을 배워 가게를 차리는 집이 하나 둘씩 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 전통 일본식 라면을 손쉽게 찾아 먹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경남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다행히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에는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집이 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 뒤편에 자리잡은 '라멘당'. 도내에서 몇 안되는 '정통 일본식 라면'집이다. 정통 일본식을 표방하는 만큼 당연히 자가제면이 기본이다. 이 집은 자가제면한 면을 바탕으로 '하카타 돈코츠 라멘'과 '매운 라면'을 판다.

하카타 돈코츠 라면./김두천 기자

하카타는 일본 내 지명이다. 쉽게 후쿠오카로 생각하면 된다. '라면 왕국' 일본에서는 미소(된장), 쇼유(간장), 시오(소금) 라면과 함께 돈코츠(돼지사골) 라면이 4대 라면으로 통하는데, 이 중 하카다는 '돈코츠 라면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요리 경력만 15년인 '라멘당' 주인장 정철민(38) 씨. 그는 일급 호텔 주방장 출신이다. 스물 한 살에 서울 잠실 롯데호텔 주방에 들어간 후 장충동 신라호텔을 거쳐 거제 삼성호텔에서 주방장으로 일했다. 거제 삼성호텔에서는 전반적인 요리를 관리하는 책임주방장을 맡기도 했다.

돈코츠 매운 라면./김두천 기자

하지만, 삼성호텔 주방을 맡게 되면서부터 직장생활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고민했다.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이 더 발전할 수 있는 지위 한계라는 것을 느끼기 마련이잖습니까. 이때부터 그런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내가 이런 고민없이 앞으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지 말이죠."

생각은 자연스럽게 자영업에 대한 꿈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우연히 마주하게 된 것이 '하카타 돈코츠 라멘'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아이템이다' 싶어 하던 일을 그만두고 2년 동안 개업 준비에 나섰다.

개업 준비 과정에서 일급 호텔 주방장 특유의 깐깐함은 버리지 못했다. 전통적인 일본식 라면을 구현하고자 자가제면을 결심한 것. 라면 제면기를 구하려고 일본을 여러차례 오갔다. 원하는 가격대에 맞는 제면기는 도통 구하기 어려웠다. 어렵사리 제면기를 구함과 동시에 제면 기술을 배우느라 일본에 오랫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이렇게 체재비와 기계가격을 모두 합쳐 3000만 원을 들인 끝에 제면기를 한국으로 들여왔다.

'라멘당'에서 자가제면으로 만드는 면은 '저가수면'이다. 면을 만들 때 물을 적게 쓴다는 말이다. 면을 반죽할 때 물을 30%이하만 넣는다. 반죽에는 밀가루와 약간 쫄깃한 감을 내기 위한 글루텐, 달걀 흰자가 들어간다. 여기에 간수가 들어가는데, 이는 간을 맞추는 것은 물론, 단단한 식감을 내는데 주요하게 쓰인다. 반죽은 짧은 시간에 빠르게 해 낸다. 다음에는 압연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압력 조절을 잘 하지 않으면 반죽이 끊어지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처음 면을 뽑을 때는 이를 잘 지키지 못해 반죽이 끊어져 버리기 일쑤였단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은 먹었을 때 딱딱하고 뚝뚝 끊어지는 맛이 있다. 이는 하카타 지방 라면이 가진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때문에 한국 사람 입맛에 맞지 않아 손님들로부터 항의 아닌 항의를 받는다.

일본에서 직접 사들인 제면기로 뽑은 면./김두천 기자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스턴트 라면은 어려운 시절 한끼 식사 대용으로 널리 이용됐잖아요. 때문에 어른들은 어떻게든 배부르게 먹으려고 면을 불려 먹었던 기억이 많죠. 아마 이런 문화적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과 다르게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일본 사람들은 더욱 단단한 면을 주문하기도 한단다.

돈코츠 라면 핵심인 육수는 일주일에 세 번 끓여낸다. 돼지 사골을 센불에 9시간 이상 푹 고아내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일본식 천연 수프인 다레(タレ)를 첨가하면 '하카타 돈코츠 라멘' 육수가 완성된다. 일본식 라면 육수는 농도별로 천차만별인데, '라멘당' 육수는 맑은 것이 특징이다. 이 육수에 붉은 양념이 든 다레를 넣으면 '매운 라면'이 된다.

먼저 '하카타 돈코츠 라멘'을 맛봤다. 우윳빛 투명한 육수에 사골 국물 특유의 기름기가 몽글몽글 떠 있는 것이 침샘을 자극한다. 여기에 신선한 숙주나물과 차슈(일본식 수육) 그리고 노른자 반숙 삶은 달걀이 함께 들었다. 보기만 해도 먹고나면 든든할 것 같은 푸짐함에 마음이 설렌다. 국물을 떠 한 입 삼키니 시원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속을 확 깨운다. 돼지 잡내는 전혀 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이 인상적이다. 비밀은 다레에 있었다. "저희 집은 해물을 사용해 다레를 만들거든요. 그래서 손님들이 개운한 맛이 난다고들 많이 말씀하시죠."

마늘이 좋으면 도구로 직접 다져서 라면에 첨가하면 된다./김두천 기자

국물에 검은 깨가 많이 떠 있지만, 라면의 풍미를 해치지는 않는 선에서 은은하게 고소한 맛을 잘 살려낸다. 함께 올려진 차슈 역시 돼지가 가진 구수한 풍미를 한층 북돋운다. 신선한 숙주나물은 사각사각 씹히는 맛에 청량감을 더한다. '매운 라면'은 맵싹한 기운을 은은히 흘러내린다. 입에 처음 넣었을 때 묵직한 매운 맛에 흠칫 놀라지만, 이내 개운한 육수가 화기를 가라앉혀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전날 지독한 과음으로 속을 해쳤다면, 일부러 찾아 먹어볼만 하다.

라면에 올라가는 차슈는 삼겹살을 비법 간장 양념 넣어 1시간 반 이상 푹 삶아내 만들어진다. 삼겹살이 가진 고소한 지방질에 짭쪼름한 간장 양념이 잘 배어들어 씹을수록 맛이 난다. 따로 주문도 가능해 부족하다면 한두 점 더 시켜 곁들이면 된다. 반숙 달걀도 부족하다면 더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단, 추가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 위에는 손님들이 기호에 맞게 간을 더할 수 있도록 소금과 깨소금 등이 놓여 있다./김두천 기자

음식 맛을 떠나 일급 호텔 주방장 출신답게 부엌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먹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음식을 내고자 식기는 모두 마산 내서에 위치한 도예공방에서 주문 제작을 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손님 테이블에는 기호에 맞게 간을 더할 수 있도록 소금과 깨소금 등이 늘 준비돼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춰 마늘 한 두 개와 마늘을 직접 빻아 먹을 수 있는 기구도 준비돼 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문을 닫고 부족한 면을 새로 뽑거나 음식을 다시 다듬는다. 이렇게 손님에게 최상의 음식을 내놓겠다는 세심한 배려도 곳곳에 배어 있어 믿고 찾을 수 있다.

   

<메뉴 및 위치>

◇메뉴: △하카타 돈코츠 라멘 6000원 △돈코츠 매운라멘 7000원 △차슈 추가 2500원 △사리 추가 1000원 △계란 추가 500원 △공기밥 1000원 △생맥주 점심 1000원·저녁 2500원.

◇위치 :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266-17번지 롯데시네마 주차장 맞은편. 010-8788-8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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