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포럼…'패전' 역사 진해 웅천·안골왜성 '고증' 엉망

왜성(倭城)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축조된 일본식 성곽으로 우리 조상을 동원해 만들었다. 진해 웅천왜성과 안골왜성, 부산 죽성리왜성 등 남해안 일대에만 30여 개가 있다. 하지만 현재 이들은 거의 방치돼 있는 형편이다. 많은 사람이 왜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임진왜란의 실상, 특히 수많은 포로에 대한 기억장치가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사학과)는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창원대 경남학연구센터에서 주최한 '경남의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심포지엄에서 실패한 '이순신 프로젝트'를 꼬집으며 "전쟁과 패배의 유적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 교수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적인 웅천왜성과 안골왜성, 세스페데스 기념공원 등이 소홀히 관리되고 있다며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최적의 장소로 꼽기도 했다. 이날 도 교수의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경남의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심포지엄 모습. 맨 왼쪽이 도진순 창원대 교수./김민지 기자

◇오류 투성이 안내판 = 다크 투어리즘은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며 시대적 의미 등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이다. 과거 문화 답사는 국가의 명승지와 전승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전쟁 피해와 희생의 유적들을 같이 답사하는 이런 방식이 대세이다.

하지만 도내 임진왜란 관련 유적은 기본조차 안되어 있는 상황이다. 웅천왜성과 안골왜성 등 문화재 안내판 내용이 오류투성이며, 더 큰 문제는 수정이 시급한데도 공무원들은 늑장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 교수는 "안내판의 오류를 가능한 한 빨리 고쳐야 하는데, 담당 공무원은 바꿀 낌새가 전혀 없는 것 같다"며 "현재의 안내판은 오류가 많고 부실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가 주장하는 오류는 이렇다. 웅천왜성 안내판에는 축성자가 왜장 가토 기요마사로 소개돼 있는데, 역사학계에서는 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에서 퇴각한 후 쌓았다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

안골왜성은 웅천왜성보다 더 심각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해 성의 둘레가 '56m(171.4尺)'라고 돼 있는데, 도 교수는 "171.4척이 어떻게 56m가 됐는지도 문제지만 둘레가 56m밖에 되지 않는 성이 어디에 있냐"며 "171.4척은 1714척의 오류로 10배 축소돼 있다"고 어이없어했다.

웅천 왜성./문화재청

안골왜성을 쌓은 '왜장 와키사카 야스나오'(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이름도 잘못 표기되는 등 다른 고증도 엉망이다.

도 교수는 울산 서생포왜성을 예로 들며 "최소한 사진과 그림이 포함된 입체적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안내판과 안내서에는 일본어 번역을 포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라고 제안했다.

현재 진해 사도마을에 있는 세르페데스 공원에도 기념비만 덩그러니 세워졌을 뿐 아무런 안내판도 없다.

◇임진왜란과 평화박물관 설치 = 앞서 말했듯, 우리는 임진왜란의 '승전'만을 강조하려 할 뿐 패배의 뼈아픈 기억은 될수록 잊으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을 추앙하는 행사는 수두룩하지만 웅천왜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조선인 포로들을 추모하는 행사나 비석은 없다.

반면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때 부모를 잃고 왜장 고니시의 양녀가 된 '오타 줄리아'를 추모하는 줄리아제가 1970년부터 열리고 있다. 오타 줄리아는 당시 국법으로 금지한 천주교를 버리지 않고 유배생활을 하다 고오즈시마에서 사망했다.

도 교수는 전쟁·침략·식민 유적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왜성 유적지, 러일전쟁 유적지, 식민 유적지 등을 포괄해 동북아 국제평화와 교류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해양 역사공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임진왜란의 피해와 상처를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로 활용하자는 이야기다.

안골 왜성./문화재청

그는 1차적으로 △안골왜성에 무너진 성벽을 복원하고 △성을 일목요연하게 답사할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며 △남해안 일대 왜성에 대한 총괄적인 안내를 할 수 있는 모형도 등을 설치하자고 말했다. 그 다음 과제는 '임진왜란과 평화박물관'(가칭) 설립이다.

당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의 현황과 대표적인 사람을 알 수 있는 '피로인관(被虜人館)', 일본 장수들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매화·동백 등 식물과 호랑이·매·까치 등 동물의 모형 등을 전시한 '자연관',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분포 지도와 그 후예들이 만든 도자기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도공 및 도자기관' 등으로 구성된 박물관이 그것이다.

<요새 중에 요새, 안골 왜성>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산 27번지 일대에 있는 안골왜성은 도지정 문화재 자료 제275호다. 일제시대에 '안골리성'으로 불렀다.

한산·안골해전에 참전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등이 이끄는 일본수군연합군은 1593년경 안골왜성을 쌓았으며 세 장수가 1년씩 번갈아 교대로 수비했다. 축성법은 대형의 면석(面石)을 상하로 고르게 쌓고 그 사이에 잡석을 채우는 방식이다.

안골왜성은 안골마을 북동편 배후 야산에 위치하면서도 가덕도와 수도를 바라보는 조망권이 일품이다. 깊숙한 안골만은 수백 척의 함선을 품을 수 있는 천연의 요새였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가장 중요한 근거지였다.

본성을 중심으로 둘레 약 300m 내외의 3중 내성 석루가 남아 있고 왜성 특유의 성벽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규모는 남북 400m, 동서 1000m며 높이는 4~5m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