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개잎으로 감싼 떡, 3대 이으며 만난다

"망개~떠억~, 망개~떠억."

망개떡 장수 외침이 귓가를 때린다. 사각 유리상자 두 개를 긴 나무막대에 연결해 어깨에 메고 다니던 모습이 기억 속에서 흐리지 않다.

망개떡은 행상을 통해 골목골목 혹은 유원지 같은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20~30년 사이 그러한 모습도 사그라졌다.

오늘날 '망개떡' 앞에는 '의령'이 입에 달라붙는다. 그 차진 맛처럼 말이다.

망개잎과 떡./박민국 기자

'의령 망개떡' 유래에는 몇 가지 얘기들이 있다. 먼저 그 오래전 가야왕국이 관계를 맺은 백제에 혼인 음식으로 보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보관하기 좋던 이 떡을 산속에서 전쟁음식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시와모찌'라는 일본음식과 형태가 흡사하다 하여 일제강점기에 들어왔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랬든 저랬든 망개떡은 해방 이후 여러 지역에서 행상을 통해 유통됐다. 의령에서는 60여 년 전 어느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녔던 얘기가 전해진다. 이 할머니 팔던 것이 사람들 입에 유독 달라붙었나 보다.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할머니는 조그만 가게를 차렸고,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입소문이 불어나자 의령 곳곳에 다른 가게도 들어섰다.

손으로 빚는 망개떡 방앗간. 아주머니들이 탁자 주위에 둘러 앉아 수작업을 하고 있다./박민국 기자

자취를 감춘 다른 지역과 달리 의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번성한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떠돌던 망개떡이 의령에 착 달라붙은 셈이다. 지금은 여러 집에서 가업을 잇는 것과 같이 의령에 완전히 토착화됐다. 지금도 읍내에는 손으로 빚는 망개떡 방앗간이 있다. 탁자 주위로 7~8명 되는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수작업을 한다. 팥소를 넣어 떡을 접고, 망개잎에 싸는 것을 반복한다. 할머니에서 시작해 3대째 가업을 잇는 손자는 손님들이 망개떡에 대해 물어보면 정신없는 와중에도 친절한 설명을 잊지 않는다.

떡에 망개잎을 싸는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입안에 그 향이 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떡을 덜 굳게 하고, 방부제 역할까지 한다. 새들도 많이 쪼아 먹고 망개잎은 사람과 잘 맞는 약초라 한다. 원래 '청미래덩굴'인 것을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라, 충청도 같은 곳에서는 '멍가나무'라 한다. 경남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다. 그 잎을 딸 수 있는 기간은 여름 한 달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이후가 되면 썩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 딴 것을 소금물에 재워 보관한다. 여러 장을 끈으로 묶은 모습에서는 깻잎을 떠올리게 한다.

소고기국밥집들은 식당 앞을 오가는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커다란 마가솥을 두고 있다./박민국 기자

의령읍에는 저마다 40~50년 된 소고기국밥집이 몇몇 있다. 1950년대 의령 오일장에서 맛본 떠돌이 장사꾼들이 입소문 내며 유명해졌다. 어느 집은 197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맛을 보면서 '대통령 국밥'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경호원들이 먼저 찾아 주방을 샅샅이 조사하자, 거칠기로 소문난 주인 할머니가 혼쭐을 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또 진주에서 온 누군가는 이 집 할머니가 워낙 욕을 해대자 "두 번 다시 발걸음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그런데 그 국밥은 계속 생각나더란다. 결국, 1년 후 다시 찾은 이후부터는 할머니 욕에서도 정감을 느끼는 단골이 됐다고 한다.

이 지역 소고기국밥집들은 식당 앞을 오가는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커다란 가마솥을 두고 있다. 옛 장터 국밥 느낌이다. 국을 퍼올릴 때도 국물·기름·건더기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의령에서 '소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소바'는 메밀로 만든 일본 면 요리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이들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의령 신반마을 어느 할머니가 일본서 보고 배운 대로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내놓자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장사를 부추겼다.

그렇게 장터서 시작한 것이 '의령소바'다. 면을 적셔 먹는 일본식 메밀소바와 다르게 멸치로 우려낸 국물에 고명을 얹어 먹기에 장터국수식이다. 일본에서 들여오기는 했지만, '의령 토착 음식'이라 부르기에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읍내에는 소바집이 밀집해 있다. 면만으로는 뭔가 허전한 사람들은 소바집을 나와 방앗간으로 발걸음 옮겨 망개떡으로 나머지 배를 채운다.

의령 소바./박민국 기자

의령은 '한과'로도 뒤처지지 않는다. '가야 수로왕조 때 과일 없는 계절에 제수로 쓰기 위해서 곡물과 꿀로 만들고 여기에 과수를 꽂아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한과 기원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령 한과'는 지난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때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선보여 그 유명세를 더하기도 했다.

이 고장을 다니다 보면 '비닐하우스 은빛 물결'을 접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겨울수박 재배를 위함이다. 강가에 자리한 토양에다 일조량도 풍부해 당도에서 뒤지지 않는다. 재배기간은 4개월 정도라서, 많게는 1년에 세 번씩 생산하는 농가도 있다 한다. 의령은 겨울수박 전국 생산량 가운데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메밀가루로 만든 면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걸어놓은 소바 전문점./박민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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