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잔혹한 고문의 육체·정신적 고통 고스란히 전해

1985년은 제가 대학교 1학년이 된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데모하는 대학생이 나라를 망치는 줄 알았던 고등학생이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로 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제의 영화 <남영동 1985>는 1985년 9월 4일부터 스무이틀 동안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 실에서 일어난 치 떨리는 잔혹한 고문 현장을 증언하는 영화입니다.

<남영동 1985>,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1985년 사건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외부로 알려졌고, 잔혹한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말과 글로 전해 듣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또 다른 공포와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와 연민이 번갈아 일어났고, 우리 시대 학생운동, 재야운동, 사회운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영화에서 김종태가 당했던 그런 고문의 공포를 안고 살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물고문, 전기고문 등 잔혹한 고문을 자행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재현한 영화 〈남영동 1985〉의 장면들.

고문을 자행한 이두한을 비롯한 고문 경찰관들의 배후에 있던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반독재 운동가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을 통해 '용공 사건'을 조작하고 고문당한 사람들의 영혼만 파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잔혹한 고문을 통해 김종태를 비롯한 수많은 운동권 학생들과 재야운동가들을 굴복시킨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당한 잔혹한 고문 사실을 통해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운동, 재야운동, 사회운동가들에게 고문의 공포를 심어주는 이중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잔혹한 고문을 당한 사람 중에는 이른바 '변절자'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잔인한 고문을 통해 무고한 친구와 동료를 고발하게 하고, 그 약점을 이용하여 '프락치 활동'을 하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지요.

가까이 지내는 선배나 친구가 경찰에 잡혀가면 일단 무조건 숨거나 도망을 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집시법을 위반하거나 국가보안법을 실제로 위반하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친구나 선배를 잡아간 그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지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피해 다니는 것이 상책이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한 번도 직책을 맡는 학생운동의 핵심에 있지 않았지만, 늘 집회와 시위현장을 지키면서 보냈습니다. 대학 3학년 때, 같은 과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친구가 어느 날 새벽 집에서 잠을 자다 경찰에 연행된 이후 그 친구가 기소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두 달 넘게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김종태와 같은 거물(?) 운동권 인사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잡아들이면 '용공 조작 사건'의 희생자가 만들어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날 때, 극중 김종태와 같은 잔혹한 고문을 당했던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영화에서 김종태가 연기하였던 고 김근태 선생은 자신이 직접 쓴 수기에서 고문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문을 할 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다음에 고문대에 뉘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되게 하려고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했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노래를 뇌까리면서 과연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

영화 속 김종태도 차라리 죽여달라고 절규합니다. 처절한 고문을 당한 많은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차라리 죽음을 통해서라도 고문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이지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잔혹한 고문의 기억,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이 잔혹한 장면을 기억에 담아 두어야 고문 없는 세상을 지켜나갈 수 있고, 그를 가두었던 독재의 망령 같은 국가보안법을 폐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남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문을 자행한 이근안을 비롯한 치안본부 대공분실 형사들의 배후에 있는 쿠데타 권력의 실체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이근안 경감의 배후에는 당시 표현으로 '광주학살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살인마 전두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와 함께 전두환의 광주학살과 군사 쿠데타 범죄를 고발하는 강풀 원작 영화 <26년>이 함께 개봉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번 겨울은 영화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한국 현대사를 기억에 새기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윤기(세상 읽기, 책 읽기, 사람 살이·http://www.ymca.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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