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백일을 갓 지난 딸을 엄마한테 맡겨두고 출근을 서둘렀다.

큰딸도 어린이집 갈 준비에 정신이 없다. 누구보다 분주한 사람은 애들을 도맡아 키우는 아이들의 할머니이다.

식구들의 아침 식사를 차리는 건 기본이다. 어린이집 가는 큰애를 옷부터 가방까지 하나하나 챙겨야 하고, 작은애도 등에 업고 다니며 달래야 한다. 손발이 몇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런 엄마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나서는 나의 출근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엄마는 자식들을 다 키우고, 생활에서 좀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워질 때쯤 내 아이들을 맡으셨다. 애초부터 그런 삶을 각오하셨을까. 손녀들 키우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지난 1년 새 더 늙어버린 것 같다.

나처럼 애를 낳자마자 친정이나 시댁에 맡기고, 아이가 좀 크면 어린이집에 보내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 결혼 전부터 직장생활을 해왔고, 둘이 벌어서 넉넉하게 생활했으니 바꾸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까지 키워야 하는 판에, 혼자 벌어 먹고 사는 건 아무래도 생활이 팍팍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 아이들을 맡겨두고 휴가가 끝나자마자 직장에 나온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자기 몫을 제대로 하기를 바라셨다.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에 나간 뒤부터는 사회생활에서 틈을 보이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딸이 좋은 데 시집 가기만 바라는 많은 다른 어머니들과는 좀 다르셨던 것 같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내게 아이를 맡아서 키워주겠다고 하신 건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첫째가 5개월을 갓 넘겼을 때 나는 고3 담임을 할 수 있었고, 둘째를 낳고도 별 무리없이 학교에 나와 일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그런 나에게 '행운'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그런데 요즘 지친 엄마의 얼굴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무릎에 무리가 와서 수술을 하고, 허리디스크까지 호소하고 계시다. 어찌해야 할까.

이런 몸 상태에서도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엄마를 대할 때면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겐 행운일지 몰라도 엄마에겐 견디기 힘든 불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엄마가 내년에는 남동생의 아이까지 키워주시겠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보니까, 올케 친정에 키워달라는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친정에 부담을 주겠느냐"고 하시는데, 마음이 아팠다. 손자 안 키워주면, 행주로 얼굴 닦이고 수돗물에 분유 탄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는데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엄마에게 휴가를 드려야겠다. '숨 좀 쉬고 살자'고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심옥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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