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때문에 두 달간의 일정으로 일본 규슈에 머물고 있다. 일본에 장기 체류하면서 가장 반가운 음식은 두부와 두유다. 한국은 대형 식품업체 3곳이 두부시장의 80.9%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에는 지역과 마을 단위로 약 1만 4000개의 두부공장이 있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항상 신선한 두부와 두유를 먹을 수 있다.

근대 이전 일본문화의 많은 부분이 한반도와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자존심 때문인지 두루뭉술하게 대륙으로부터 전해졌다고 할 뿐, 한반도에서 전해진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도자기와 두부만큼은 예외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왔고 그들 대부분이 규슈에 정착했다. 덕분에 규슈에는 아리타야키, 이마리야키, 가고시마야키 등 유명 도자기가 많다. 가고시마에 정착한 심수관의 후예들은 아직도 그 명맥을 잇고 있으며, 아리타에는 도공 이삼평을 모신 신사가 있을 정도다.

두부는 갓 만든 것이 가장 맛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떨어진다. 김해 장유면 한 두부전문점의 갓 만든 두부.

육당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에 따르면, 일본의 두부는 임진왜란 중에 왜군의 식량 담당관이 조선에서 배워 갔다는 설과 일본으로 끌려간 경주 성장 박호인이 제조법을 전했다는 설이 있다. 이는 일본도 인정하는 부분이며, 현재도 고치(高知) 지방에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박호인이 두부를 만들었다는 자료와 일화가 남아 있다.

전통적인 두부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한나절 혹은 그 이상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간다. 이렇게 간 콩을 광목천에 올리고 주걱으로 저어가며 콩물을 뽑는다.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한참을 끓인다. 이것이 곧 두유다. 끓인 콩물은 적당히 식힌 다음 간수를 넣어 응고시키면 순두부가 만들어진다. 이를 다시 하얀 베 보자기로 싸서 눌러주면 물은 빠져나가고 하얀 덩어리만 남으니 비로소 두부가 완성된다.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얻어진 두부건만, 하루가 지나면 맛이 빠져나가고 변질되기 시작해 이틀을 넘기지 못한다.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왕릉 근처에 '조포사'라는 절을 두고 제사에 올릴 두부를 만들게 했다. 사찰이 두부 제조의 중심이 된 건 신선도가 생명인 두부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먹는 포장두부는 무려 보름씩이나 건재하다. 플라스틱 용기에 두부와 물을 함께 넣고 밀봉한 다음 80도 이상의 열탕에서 30분 이상 살균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변질은 막을 수 있지만 두부의 고유한 맛은 보존하지 못한다. 두유의 경우에는 약간의 콩물에 각종 감미료와 첨가물로 단맛과 인공적인 향을 낸 것이 대부분이다.

일본에서는 동네마다 있는 두부공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편의점에서도 당일 만든 두부를 구입할 수 있다. 두유는 콩을 그대로 갈아 만든 무조정두유, 감미료와 첨가물을 넣은 조정두유와 가공두유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런 두부와 무조정두유에서는 콩이 가진 고유한 맛과 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일본에서 두부와 두유의 참맛을 흔히 만날 수 있다는 게 반갑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대기업이 두부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 나라와 동네마다 두부공장이 있는 나라. 설탕물과 다름 없는 두유를 마시는 나라와 콩즙 그대로를 진짜 두유로 여기는 나라. 둘 중 어느 나라가 두부 제조법을 전해 준 나라인지 요즘은 가끔 혼란스럽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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