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에 먼 데서 온 우편물 하나가 꽂혀 있다. 발신지는 아프리카의 모잠비크. 나의 후원아동 켈소바도의 연례 발달보고서이다. 이 아이를 후원하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주 작고 야위었던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사진 속 아이는 제법 늠름한 모습으로 제 몸만큼 큰 곡괭이를 들고 서 있다. 눈빛이 야무져 보인다.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작년에 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이야기, 가장 기다리는 날이 크리스마스라는 이야기도 적혀 있다. 후원자인 나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적어 놓았다. 보고서 뒷면에는 나를 위해 그린 그림 하나가 있다. 학교 앞에 나무 한 그루와 자전거 한 대, 화분 두 개가 서 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보긴 했을까? 아이에겐 아마 자신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우리 애들이 자란 뒤 주인의 외면을 받아 녹슬고 있는 자전거에 생각이 미친다. 보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는 맨발로 무거운 곡괭이를 들고 무언가를 파고 있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만큼 자랐다고, 이제 혼자의 힘으로 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 속의 아이는 작년에도, 올해도 맨발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보다 보이기 싫은 모습이 내겐 더 잘 보인다. 작년 사진 속에서는 맨발만이 아니라 아이의 옷도 마음에 걸렸다. 어디선가 후원받은 듯한 커다란 어른의 와이셔츠가 최고의 옷이었는지 그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초라한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작아진 옷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려진 그 옷들이 너무 절실해진다.

아이들을 후원하면서 생긴 변화 가운데 하나는 아프리카의 기아나 가뭄 등의 뉴스를 유심히 보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그래서 이런 이야기만 보면 나는 주책없이 눈물부터 철철 흐른다. .

아이를 위해, 또 다른 굶주림 속의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 아이의 사진과 이야기를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다. 사실 무슨 큰 선행을 한 것도 아니고 자랑할 일도 못되어 망설이긴 했다. 하지만 혹시 누군가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으로 올렸다. 기대대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여주었고, 생각은 있었는데 실천을 못했다며 한 친구가 당장 후원을 하고 싶다 했다. 얼른 구호단체로 전화를 했고 곧이어 라오스의 아이를 후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또 한 아이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이 심어졌다. 한 인생을 바꿀 프로젝트가 작은 관심과 그 관심에 응답한 사람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요 며칠 자주 자괴감에 빠졌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과 스트레스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참 고약했다. 하지만 이 작은 삶의 기적 앞에서 다시 기운을 차리고 힘을 내본다. 가끔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하고 패배감에 시달리기도 하는 내가 아이에겐 얼마나 소중한 사람일 것인가.

무미건조하던 나의 일상에도 머지않아 아프리카의 모잠비크로 아이를 만나러 갈 꿈이 생겼다. 그 때는 켈소바도의 발에 꼭 맞는 예쁘고 튼튼한 운동화를 선물하고 싶다.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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